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1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경만호 대한의사협회장
[사진]이 사퇴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일련의 상황을 집행부 흔들기로 규정하고 "무릎을 꿇을 수 없다"고 했다.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지 않았고 양심에 비춰 꺼릴 게 없다는 표현으로 회장직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경만호 회장은 17일 대회원 서신문을 통해 거취 논란에 대한 입장을 이같이 전달했다. 유죄 판결로 확산된 사퇴 의견을 정공법으로 맞서겠다는 것이다. 이는 대외사업비 조성이 의료계를 위한 행동일 뿐 개인적인 이익을 취득하지 않았다는 정서가 반영된 결과다. 명예회복을 겨냥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판결에 승복할 수 없어"경 회장은 서신문에서 "유죄를 받은 것을 송구하게 생각하지만 법원의 판결에 승복할 수 없다"며 "거듭 말하지만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거나 그럴 의사가 전혀 없었다. 오로지 회원 권익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경 회장은 "사퇴는 무책임한 현실도피로서 10만 회원과 의협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일"이라면서 "당장 자연인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의료계 많은 지도자가 사퇴를 만류했다. 1심 판결에 흔들리지 않고 회무에 전념키로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선택의원제과 의료분쟁조정법 하위법령 등 산적한 현안사업의 성공적 마무리를 위해선 회장직 유지가 불기피하다는 주장도 폈다.
그러면서 "회무를 추진하면서 양심과 도덕에 반하는 어떤 일도 일절 하지 않았다"며 "누구보다 1심 판결을 기다렸고 무죄를 확신했다"고 했다.
검찰이 기소한 6개 혐의 중 유죄로 판결된 대외사업비 1억 원 조성과 의학회장 기사 월급 및 유류대 지원 건에 대해선 "참으로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라고 재차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1심 공판 과정에서 수차례 언급한 감사단과 대의원회 의장의 동의 사실을 재차 강조했다.
경 회장은 "법원이 대외사업비 조성을 유죄로 판단한 근거는 로비자금인 것으로 보이는 자금을 조성한 것은 의협의 단체 의사에 반하는 행위라는 게 핵심"이라며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정상적인 절차를 거쳤을 뿐 아니라 2010년도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은 사안"이라고 했다.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대의원총회 추인은 곧 의협의 단체 의사이므로 법원의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투명성을 요구하는 시대에 대외사업비를 조성한 것이 타당하냐는 반론을 의식한 듯 "당위성과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현실을 너무 모르는 얘기"라며 "대외사업비가 절실한 게 냉정한 현실"이라고 해명했다.
의학회장 기사월급과 유류대 지원에 대해서도 "이런 식이라면 의협의 여러 기구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며 "의협은 산하기구에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한다. 의학회장 지원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말했다.
"단일 건보공단 헌재 판결 나올 것"경만호 회장은 단일 건강보험에 대해 "조만간 헌법재판소에서 지역조합과 직장조합 통합에 대한 위헌 여부가 나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경 회장 개인이 제기한 헌법소원 결과에 따라 의료계 환경이 크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설사 위헌결정이 난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정부는 필시 임시방편적인 땜질로 현 체제를 유지하려 들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의료제도 개혁은 물 건너가고 만다. 어떤 식으로든 의료제도 개선의 물꼬를 트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경 회장은 "사퇴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고질화한 집행부 흔들기에 무릎을 꿇을 수 없다는 점"이라며 "역대 어느 집행부도 집행부 흔들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의료계의 이와 같은 자해행위가 회원들에게 얼마나 큰 불이익을 가져다주었는지를 생각하면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한다"고 했다.
경 회장은 "소명감 하나로 의협 회장에 취임할 때의 초심을 잃지 않고 있다. 오히려 소명감은 더욱 커졌다"며 "그 소명감으로 남은 임기 동안 그간 추진해온 일을 마무리하겠다. 대변인을 통하거나 직접 주요 회무를 보고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 일환 청년위원회와 전공의특별위원회 활성화를 제안하기도 했다.
선거 국면 맞물려 의료계 미묘한 정서 변화경 회장이 회장직 유지 카드를 던진 것은 현 의료계 리더그룹의 정서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차기 의협 회장 선거라는 최대 이벤트와 맞물리면서 사퇴 요구가 수그러들었다는 것이다.
유죄 판결이 나오면 제도권과 비제도권 모두에서 사퇴 요구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은 보기 좋게 엇나갔다.
경 회장을 법정에 세운 전의총은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노환규 전의총 대표는 "사퇴 요구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등 일부 단체를 제외한 대다수가 침묵을 지켰다. 대전협 역시 사퇴 요구를 하면서도 유죄에 따른 책임보다는 직선제 선거에 집중했다.
의료계 한 핵심 관계자는 "경 회장의 임기가 막바지에 이르렀고 사퇴가 오히려 차기 선거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시각이 존재한다"며 "의협 수장자리를 노리는 그룹들 간의 다양한 셈법이 작용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의학회장을 지원한 것이 유죄로 나온 것은 현 간선제 구도에서 동정표를 받을 만한 사안"이라며 "경 회장 개인의 거취를 떠나 현재 의료계의 모든 회무는 차기 선거와 분리해 생각하기 어렵게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