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새해 벽두부터 절망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국내 최고의 알코올 의존증 전문병원인 성안드레아병원이 ‘30년’이란 영욕의 세월을 뒤로하고 문을 닫았다.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가 1990년 개원한 성안드레아병원은 기존의 정신병원 이미지를 타파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며 ‘최고’로 칭송 받았던 곳이다. 입원을 위해 수 개월 대기해야 할 정도로 환자들이 몰렸다. 그렇게 잘 나가던 병원이었기에 갑작스런 ‘폐업’ 소식은 의료계에 충격파를 던졌다. 결정적 원인은 ‘경영난’이었다. 할수록 적자인 알코올 중독치료의 현실이 문제였다. 병원은 ‘힘든 상황으로 더 이상 운영할 수 없게 됐다’는 짤막한 안내문과 함께 폐업했다. 문제는 알코올 중독치료를 수행하고 있는 다른 병원들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해국 이사장은 특단의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제2, 제3의 성안드레아병원 사례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생존 고민 알코올 전문병원, 중독환자 치료기회 상실 속출"
연간 4000명 수준을 유지하던 알코올 관련 사망자가 최근 5500명으로 15% 가까이 급증했다. 10만명 당 사망률이 사상 처음으로 10명을 넘어섰다.
코로나19 사태에 알코올 중독환자들이 치료기회를 상실한 탓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최근 전개되는 상황이 심상찮다.
성안드레아병원처럼 누적되는 적자에 신음하는 병원들이 늘면서 치료 사각지대에 놓이는 알코올 중독환자들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해국 이사장은 작금의 상황이 음주폐해 및 알코올 중독치료에 대한 국가의 인색함에 기인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에 대한 제도적 지원과 서비스 제공이 여타 질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각종 규제만 강화되다보니 병원들이 버티기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실제 20만명 이상 지방자치단체에 지역기반 서비스인 중독통합관리센터를 설치토록 하고 있지만 10년째 50개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그나마 직원이 4명 이하인 센터도 적잖다.
병원들 사정은 더 심각하다. 현재 알코올 중독치료 전문병원 9곳이 운영 중이기는 하지만 비현실적인 수가에 신음하고 있다.
특히 알코올 중독의 경우 저소득층인 의료급여 환자 비중이 높지만 전문병원관리료와 의료질평가지원금이 적용되지 않아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전체 전문병원들의 평균 의료급여 환자 비율이 10%대인데 반해 알코올 전문병원은 30~70%에 달한다.
이해국 이사장은 “가뜩이나 힘겨운 알코올 전문병원들이 그나마 혜택이라고 할 수 있는 전문병원관리료와 의료질평가지원금도 받을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 전문병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알코올 중독치료에 적극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병원들이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천착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알코올 중독의 경우 초기 제독치료 이후 간질환 치료, 심리 상담 등 다학제적 접근이 이뤄져야 하지만 현행 정액제 수가에는 이러한 부분이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
때문에 병원들로서는 알코올 중독환자에 대해 상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다른 병원들의 경우 여러 비급여 항목을 통해 수익을 보전할 여지가 있지만 정액제로 묶여 있는 알코올 중독치료는 소극적 진료에 머물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주류업계, 음주폐해 책임분담금 부과하고 국가 차원 치료지원 시스템 구축 필요"
작금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알코올 중독치료 지원을 위한 별도의 기금 조성이 필요하다고 이해국 이사장은 제언했다.
알코올 중독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 가정폭력과 각종 사회적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공공의 안녕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기금을 마련해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해국 이사장은 “별도의 기금을 마련해 알코올 중독환자 조기치료를 활성화할 경우 2차, 3차 피해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박중독의 경우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라는 공공조직도 개설돼 있고, 복권 수익금 일부가 기금으로 조성돼 각종 예방사업 및 환자 치료 지원에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의 경우 한국주류산업협회에서 공익재단인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카프재단)에 출연금을 지원해오다 2010년 지원을 중단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이해국 이사장은 “국가가 허용한 음주산업으로 주류업계가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그로 인한 피해자인 알코올 중독환자에 대한 지원은 전무한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주류업계는 마케팅 비용으로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부으면서 음주 피해자 지원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며 “우리 사회가 짚어봐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담배와 비교해서 술 광고는 규제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
이제라도 국가가 나서 주세의 일부를 기금으로 조성해 알코올 중독환자 치료나 음주폐해 예방사업 등에 투입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담배와 함께 대표적인 죄악산업(Sin Stock)에 해당하는 음주 역시 관련 업계에 중독 폐해에 따른 책임분담금을 부과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이어 “이대로 알코올 중독환자 치료기회 상실을 방치하는 것은 정부나 주류업계 모두 책임 방기나 다름없다”며 “알코올 중독치료에 국가가 보다 적극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류업계의 과도한 마케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던졌다.
그는 “담배와 비교해서 술 광고는 규제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아이돌이 나와 음주를 조장하는 광고는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이라고 힐난했다.
이어 “무분별한 주류 마케팅을 제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며 “주류업계도 음주 피해자 치료 지원에 전향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