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40개 의과대학 학장을 비롯한 집행부가 민감한 현안을 잇따라 마주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역대급’이란 자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통상 새학년, 새학기를 앞두고 업무가 집중되는 시기이기는 하지만 최근 의과대학을 둘러싼 제도 변화와 이슈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예년과는 비교 불가하다는 평(評)이 지배적이다.
우선 예과(2년), 본과(4년)으로 운영되던 의과대학 교육체계가 100여 년 만에 통합이 가능해지면서 각 의대별로 새로운 커리큘럼 구축에 나서고 있다.
앞서 교육부는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의학계열 예과, 본과 운영 원칙을 각 대학에 자율적으로 맡기도록 했다.
오는 대학 선택에 따라 △1년(예과)+5년(본과) △3년(예과)+3년(본과) △통합 6년 등으로 다양하게 운영이 가능해진다.
이에 서울의대, 고대의대 등 상당수 대학들이 지난해부터 TFT를 꾸리는 등 6년제 통합 교육과정 준비에 나선 상태다.
각 전공과목 교수들 의견을 토대로 새 교육과정 방향성을 정립하고 효율적인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 커리큘럼 구축을 위해 회의를 거듭하는 중이다.
여기에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까지 겹치면서 집행부 고충이 심화되는 모습이다.
지난해 연말 각 의대별 증원 수요조사를 시작으로 2~3개월 동안 의대 입학정원 문제는 사회적 관심사로 부상한 상태다.
이미 정부가 증원을 확정한 만큼 의대 학장단은 차질없는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교수진, 강의실, 기숙사 등 여러 제반사항 준비에 골몰하고 있다.
지방 의대의 경우 지자체와 함께 정원 확대 준비 상황은 물론 졸업생의 지역 거주를 위한 정주 여건 조성 등을 논의 중이다.
의대별 증원 규모는 이르면 늦어도 내달 중으로 결정될 전망인 만큼 각 의대 학장단은 교육부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연장선상에서 정부의 증원 결정에 반발한 의대생들의 집단행동은 가장 큰 고민거리다. 오는 20일 전국 의대생들의 동맹휴학이 예고되면서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주무부처인 교육부는 의대생들의 동맹휴학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16일 의대를 보유한 전국 대학 40개교 교무처장과 긴급 회의를 개최했다.
아울러 각 의대에 공문을 보내 의대생 휴학 현황을 제출해달라고 요구하는 한편 학사 관리에 만전을 기할 것을 요청했다.
또 의대생들이 휴학 신청서를 내면 학칙·규정에 따른 절차와 요건을 충족했는지 따져보고,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설득에 나서 집단행동 분위기 확산을 막아달라고 당부했다.
실제 의대생들은 예고한 대로 지난 20일을 기해 일제히 동맹휴학 투쟁에 돌입했다. 각 대학에 휴학 신청서를 제출하며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저지를 위한 집단행동을 본격화 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40개 대학 중 총 27개교에서 7620명이 휴학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는 지난 19일 기준 7개 의대, 1133명 대비 7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의대 학장단 입장에서는 정부의 요청에 불응할 수도, 그렇다고 제자들 동맹휴학을 만류할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
한 의과대학 교무부학장은 “가뜩이나 교과과정 개편, 증원에 따른 인력충원, 시설 확충 등으로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의대생 동맹휴학 사태까지 예고돼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제자들의 심정을 너무나 잘 알기에 마음이 아프다”며 “특히 정부와 학교 방침을 간과할 수 없는 집행부 현실이 애석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의과대학 학장들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는 지난해 교육부 수요조사 당시 실제 교육여건 대비 무리한 희망 증원 규모를 제출했던 점을 인정하고 유감을 표했다.
‘의대정원 수요조사’는 정부가 2000명 증원을 추진하는 주요 근거였지만 수요조사에 응했던 의대학장들이 스스로 과오를 인정한 셈이다.
협회는 “수요조사 당시 대규모 증원이 초래할 결과 보다 대학의 미래나 위상이 우선적으로 고려됐다”며 “의대가 아닌 대학본부 입장이 반영돼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자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