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로서는 의료계와 정부가 접점을 찾을 확률이 너무 낮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양측의 신뢰 회복인데, 그에 대한 정부 의지가 없으니 의료계도 협의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13일 의대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는 단식 농성을 마친 박평재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료원 교수 비상대책위원장은 여·야·의·정 협의체 무산에 대해 이 같이 진단했다.
그는 "의사들이 계속 위기를 외치지만 가장 위기를 원치 않는 이들 또한 의사들"이라며 "추석연휴는 의료진이 총력을 다해 고비를 넘겼지만, 실제 위기는 겨울에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회복 의지 못느껴지는 바닥 찍은 신뢰…"의사들 목소리 외면하는 정부 야속"
박평재 위원장은 채희복 충북의대‧충북대병원 교수 비대위원장, 김충효 강원의대‧강원대병원 교수 비대위원장과 지난 9일 의대 증원 취소를 외치며 '삭발식'을 감행했다.
이들은 의대 수시모집 마지막 날인 지난 13일을 의대 증원을 되돌릴 마지노선으로 보고 단식 농성까지 벌였지만 의대 증원 취소도, 국회가 강하게 추진한 협의체도 성사되지 않았다.
그는 "현 상황을 풀어보려는 국회의원들 노력이 고맙긴 하지만 결국 협의체 핵심은 양극단에 서 있는 의-정"이라며 "꿈쩍하지 않는 정부에 대한 우려가 깊다"라고 토로했다.
여기에 최근 빅5 병원 전공의 대표들의 참고인 조사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지난달 21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을 시작으로 이달 빅5 병원 전공의 대표들이 집단 사직 공모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참고인 조사를 위해 경찰에 줄소환됐다.
박 위원장은 "말도 안 되는 조사"라며 "참고인이 언제라도 피의자로 전환될 수 있기에 이번 조사는 굉장히 치졸한 행위였다. 또 빅5 병원만 콕 찍어 조사한 이유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공들인 의료개혁안도 신뢰 얻지 못해"
이 가운데 정부가 최근 작심하고 의료개혁 1차 실행방안과 의학교육 여건 개선을 위한 투자방안을 발표했지만, 의정 간 신뢰 회복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박평재 위원장은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정책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며 "진정성을 갖고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의대교육에 대한 내용들이 어떻게든 현재의 위기를 넘기려는 식이다. 의료개혁특위에도 의사 집단이 포함되지 않아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 개혁안 도출이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 예로 국립의대 교수 1000명 증원안에 대해 "거짓말"이라며 "아직 자리가 나지 않은 임상교수를 전임교수로 채용하는 등 기존 인력의 모양새만 바꾸는 형식일 뿐"이라고 혹평했다.
또 국립의대에만 직접 재정 지원을 하는 것에 "결국 사립의대는 살아남기 위해 병원 내 비보험 분야를 더 요구하는 등 왜곡이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겨울 되면 응급실 뺑뺑이 아닌 병원 뺑뺑이"
의정 간 불신이 깊어지며 지난 추석 연휴 중 응급의료 대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으나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8일 SNS를 통해 "우려처럼 의료가 붕괴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박평재 위원장은 "예상했던 자화자찬"이라며 "병원들이 정부가 아닌 환자들을 위해 대비한 결과였다. 우리 병원만 해도 추석을 대비해 모든 시스템을 재정비했다"고 전했다.
이어 "실제 위기는 겨울"이라며 "호흡기, 심뇌혈관 환자가 늘어남과 동시에 검진을 통해 암 환자까지 늘면 중환자실이 포화 상태가 된다. 그때는 응급실 뺑뺑이가 아닌 병원 뺑뺑이가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의료진은 환자들의 피해가 최소화 되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정부가 의사들의 읍소를 듣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정부가 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