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국민들도 의료계도 정부도 누구나 걱정했던 추석 명절 연휴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그러고 보니 추석 보름달도 못 보고 지나쳤다. 조그만 마음의 여유도 시간도 없었던 모양이다.
벌써 7개월째를 넘겨 지속되는 의료 현안은 언제 어떻게 해결될지, 이제는 짐작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 명절이 다가왔다.
전국 기차역과 버스터미널, 고속도로는 고향을 찾아, 부모님을 찾아, 자녀를 찾아 귀성과 역귀성, 귀경과 역 귀경 흐름으로 변함없었고, 갑작스러운 급성 질환이나 외상으로 인해 응급실을 찾는 응급환자들도 역시 예년과 다르지 않았다.
예년과 다른 전공의·인턴 없이 응급의학과 전문의만 응급실 24시간 지킨 추석 명절
예년과 다른 풍경이라면 대학병원(수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지역응급의료센터나 전공의(레지던트), 수련의(인턴) 없이 응급의학과 전문의 선생님들 한두 명만이 응급실을 24시간 지켰다.
그나마 경증, 비응급 환자들은 대학병원 응급실 내원을 자제했고 내원한 경증, 비응급 환자들께 당직 의원급 의료기관이나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안내해도 정부가 때맞춰 발표한 관련 지침에 의거 응급진료 거부 시비를 피할 수 있었다.
먼저 응급의료 이용에 불편을 기꺼이 감내해 주신 국민 여러분들, 그리고 환자와 보호자들께 고개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인력 부족으로 도저히 24시간 응급진료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지역민들을 위해 자신과 가족을 희생하며 추석 연휴에 24시간 응급 진료를 기꺼이 감당해 주었던 강원대병원, 세종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전문의)님들을 포함한 전국 400여 응급의료기관에서 수고하신 모든 응급의학과 전문의 선생님들께도 경의를 표하며 감사 인사를 전한다.
추석 연휴 5일 동안, 필자 역시 3일을 응급실 당직 진료를 하면서 학회 공보이사로서 틈틈이 언론에 보도는 응급의료 관련 뉴스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사실(fact)에 근거한 기사나 방송 보도도 있었지만, 너무 과도하게 소위 ‘응급실 뺑뺑이’라며 왜곡된 보도를 볼 때는 참으로 안타깝고 허탈함마저 느꼈다.
과도하게 소위 ‘응급실 뺑뺑이’라며 왜곡된 언론 보도 참으로 허탈
정상적인 수용 능력 확인과 이송을 어떻게 ‘응급실 뺑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추석 연휴에 안과 응급 수술을 15시간 만에 받았다고 ‘응급실 뺑뺑이’라는데 전공의 선생들이 정상 진료하고 있었던 설이나 추석 연휴, 아니 주말 공휴일에도 안과 응급 수술을 15시간 만에 받기 쉽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어느 종편 뉴스 리포트는 임신부 50분 응급실 대기까지 보도됐는데 KTAS 1, 2등급에 해당하는 환자가 아니라면 활력징후 정상인 임신부가 50분 응급실 진료를 기다렸다는 것이 무슨 뉴스거리가 되는지 정말 의문스럽다.
손가락 절단 환자 사례는 해당 지역 국립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가 페이스북에 관련 내용을 상세히 올렸을 뿐 아니라 소방청에서도 보도자료 배포해 ‘응급실 뺑뺑이’가 아니란 것을 자세히 설명했다. 진짜 재론의 여지가 없고, 복부 자해 자상 환자 역시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응급실 뺑뺑이’로 보도하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응급실서 진료 받고 타 병원으로 전원되거나, 119구급대가 수용 능력 확인을 위해 사전에 응급의료기관에 확인 전화를 한 사례까지 모두 ‘응급실 뺑뺑이’로 보도하고 있었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어떤 응급 환자든지 첫 방문 또는 이송되는 응급실에서 모든 응급처치와 입원, 수술, 중환자실 입원과 같은 최종 치료를 받아야 ‘응급실 뺑뺑이’라는 보도가 사라질까?
우리나라, 아니 이 지구상에서 그럴 수 있는 병원이나, 지역,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환자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응급의료체계 및 전원, 이송 체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권역응급의료센터-지역응급의료센터-지역응급의료기관의 단계별 응급의료기관들과 기관 외 응급의료시설들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정 및 평가, 관리되고 있다. 응급의료 선도국들도 비슷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현재 언론 보도 가운데 상당수는 정상적 응급의료체계가 작동하고 환자 생명과 안전에 아무런 위해(危害)가 없는 사례, 심지어 적정한 이송 사례까지 의학적 사실 확인 없이 ‘응급실 뺑뺑이’라며 몰아가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국민들과 환자들, 보호자들은 점점 불안해하고, 심지어 119 신고가 필요 없는 경증 및 비응급 환자까지 119구급대 도움을 받아야만 응급실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지레짐작이 확산되면서 119구급대 활동에 필요 없는 부담마저 더하는 실정이다.
이제는 그만했으면 한다. 추석 연휴 전에 대한응급의학회도 대한소아응급의학회도 정부도 지자체도 국민 여러분께 당부드렸다. 그 결과 경증 및 비응급 환자가 줄어든 것도 사실이지만, 중증응급환자들은 일정하게 내원했고 한두 명의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밥도 못 먹고 물 한 모금 못 마시며 중증응급환자를 진료하느라 정말 고생하는데 대다수 언론 보도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응급실 뺑뺑이’라니….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다.
사실 확인 안되고 연일 보도되는 '응급실 뺑뺑이' 표현 이제 그만
언론에서 사실 확인 없이 보도하는 ‘응급실 뺑뺑이’가 아니라, 정말 환자 생명과 안전에 위해가 발생한 사례는 철저하게 조사하고 원인을 규명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언론에서 고장 난 녹음기처럼 반복되는 ‘응급실 뺑뺑이’ 타령은 이제 자제해 주셨으면 한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도 내일도 변함없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까지 희생하며 연휴는 물론 24시간 365일 전국의 응급실을 지키고 있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간호사, 응급구조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등 셀 수 없는 응급의료인들의 사기를 꺾고, ‘정말 내가 이제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하나’라는 회의가 들게 만드는 사실이 아닌 보도는 그만해 주시기를 바란다.
2주간의 ‘추석 명절 비상응급 대응 주간’까지 설정하고 정부는 다양한 대책을 발표하고 수가를 한시적으로 인상하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아직 대략 1주간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추석 명절 5일 연휴가 이렇게 끝나가니 벌써 언론 보도를 통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일각에서 제기된 추석 응급 의료 대란은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필자를 비롯해 많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선생님들은 의료계 일각에서 제기한 추석 응급의료 붕괴설, 심지어 “추석에 1만명의 환자가 진료를 못 받을 것이다,” “환자가 죽어 나간다”와 같은 과도한 주장에 동의하기 어려웠고, 묵묵히 각자 근무하는 응급실에서 최선을 다해 응급진료에 임했다.
그렇지만 경증 비응급 환자들의 진료 대기나 진료 불편은 명확하게 예상되는 바였고 사실도 그러했다. 정부 대책이 효과가 없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정부의 대책만으로 추석 명절 연휴 응급의료 대란이 없었다고 한다면 어불성설이다.
"정부가 추석 명절 연휴 응급의료 대란이 없었다고 발표한다면 어불성설"
오히려 과도한 추석 응급의료 위기설로 인해, 이후 마치 ‘응급의료는 위기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국민과 정부, 언론에서 생기지나 않을까 정말 걱정스럽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선생님들도 사람이고 7개월이 넘어가는 오랜 격무로 인해 허리 디스크가 터져 수술을 받기도 하고 골절이 발생하여 불가피하게 병가를 내기도 했다. 점점 힘들어지는 응급의료 현장 어려움은 연말로 갈수록 더욱 심해지지 않을까 정말 걱정이다.
한시적 수가 대책 가운데 제도화 및 상시화를 통해 응급의료에 대한 실질적 보상을 높이고 민•형사상 법적 처벌과 손해 배상 최고액을 제한하는 것과 같은 법률, 제도적 개선이 속도감 있게 정부와 국회에서 이뤄져야 빈사 상태에 놓인 응급의료 분야에 생기가 돌게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