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이었다. 내로라하는 대형병원이 즐비한 서울에서 한 중소병원의 당찬 결단에 병원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더욱이 당시는 ‘갑상선’이란 질환이 주목받지 않았던 시절인 만큼 만류도 적잖았다. 그럼에도 대림성모병원은 종합병원 중 전국 최초로 ‘갑상선센터’를 개소했다. 이후 진단기술 발전 등으로 ‘갑상선 질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대림성모병원은 단숨에 ‘갑상선의 메카’로 부상했다. ‘무모한 선택’이 아닌 ‘신의 한 수’였음을 스스로 증명해 낸 셈이다. 특히 지난 십 수년 동안 중소병원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일찍이 특성화, 전문화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했던 대림성모병원의 결단은 더욱 빛을 발했다. 때문에 개소 직후인 2008년부터 갑상선센터를 이끌고 있는 성진용 센터장(영상의학과)의 감회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국내 갑상선 분야 새로운 이정표
1969년 서울 영등포에서 의사 2명, 20병상 규모로 개원한 대림성모병원은 오랜 세월 지역 거점병원 역할을 수행하며 성장했다.
1986년 종합병원 인가, 1988년 수련병원 지정은 물론 4차례에 걸친 증축을 통해 208병상, 15개 진료과, 40여 명의 전문의가 포진한 종합병원으로 도약했다.
하지만 날로 급변하는 병원환경은 탄탄대로를 달리던 대림성모병원에도 위기로 다가왔다. 타개책 마련이 절실했다. 고심 끝에 ‘특성화’에서 답을 찾기로 했다.
여러 진료과를 운영하며 전반적인 질환을 다루는 종합병원이지만 생존을 위해 특정 분야의 경쟁력을 키우기로 했고, 그 귀착점이 ‘갑상선’이었다.
혜안(慧眼)은 적중했다. 센터 개소와 함께 갑상선 진단 및 치료 붐이 일었고, 대림성모병원은 ‘갑상선의 성지’로 불릴 정도로 독보적인 위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위상은 여러 수치로도 방증된다. 지난 19년 세월 동안 3만건 이상의 갑상선 조직검사가 이뤄졌고, 수술 1만건, 고주파절제술 5000건 등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성과를 냈다.
이 외에도 갑상선 초음파 검사 10만건, 방사선 요오드 치료 1500례 등 여느 대학병원과 견줘도 뒤지지 않는, 아니 그 이상의 실적을 쌓아가는 중이다.
이러한 성과는 단순히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낸 덕분이 아니다. 여러 진료과 의료진의 유기적인 협진과 원스톱 진료 시스템 도입 등 환자 만족도 제고를 위한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실제 대림성모병원 갑상선센터는 개소 초기부터 갑상선외과, 내분비내과, 영상의학과, 핵의학과, 병리과 전문의들이 협업 진료를 통해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법을 제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병원 방문 횟수 최소화’를 기치로 내원환자가 진료, 검사, 진단, 수술, 입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절차를 한 번에 해결하는 원스톱 진료 시스템을 고수 중이다.
성진용 센터장은 “우려와 기대 속에 갑상선센터를 개소했고, 이후 영욕의 세월을 보내며 오늘에 이르렀다”며 “국내 갑상선의 이정표를 세웠다는 점에서 보람이 크다”고 술회했다.
이어 “의료진의 열정과 환자들의 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갑상선 질환 진단과 치료 발전을 위해 사력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갑상선 조직검사 채취 분야 발전 선도
대림성모병원 갑상선센터는 풍부한 진료경험에 기반한 술기 발전에도 굵직한 성과를 냈다.
△세침흡인생검과 중심부생검의 진단 정확도 비교 △에탄올절제술과 고주파절제술 비교 연구 △고주파절제술 장기추적 결과 △에탄올절제술 장기추적 결과 등 발표된 논문이 부지기수다.
무엇보다 대림성모병원은 갑상선암 진단을 위한 세포 채취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그동안 갑상선 결정의 암 여부 판단을 위해 세포검사를 시행했지만 대림성모병원이 자체 개발한 총생검기구를 이용해 큰 어려움 없이 많은 양의 조직을 채취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조직검사의 유용성 규명을 통해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검사를 수행할 수 있는 여러 노하우를 축적했다.
양성 갑상선 결절이나 재발 갑상선암을 비수술적으로 치료하는 고주파절제술에도 많은 발전을 이끌었다.
최근 가장 획기적인 변화 중 하나가 ‘수력분리술(Hydrodissection)’이다. 이는 치료할 병변과 주변 주요기관과의 거리가 가까운 경우 액체를 주입해 거리를 넓히는 고급 술기다.
현재 대림성모병원에서는 갑상선 고주파절제술 시행시 대부분 수력분리술을 사용해 치료 효과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센터를 이끌어 온 성진용 센터장의 경우 국내외 갑상선 관련 학술대회에 초청강사로 나서 전공의, 전임의, 전문의 대상으로 교육을 이어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갑상선 결절 진단 및 치료의 핵심적인 내용을 다루는 진료 권고안 제정 작업에 지속적으로 참여해 국내 갑상선 치료 발전에 이바지 하고 있다.
성진용 센터장은 “검체를 얻어내는 기술, 검체를 판독하는 능력 모두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한다”며 “수술과 비수술 치료 부분도 선도하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지난 20년의 노하우를 토대로 갑상선 진단, 치료 발전에 일조하고자 한다”며 “각종 학술대회는 물론 증례 보고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소통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녹록잖은 경영환경, 적정보상 절실
종합병원의 특성화 성공모델로서 국내 갑상선 분야에서 독보적 위상을 자랑하지만 고민은 늘 상존한다.
가장 큰 고충은 단연 ‘수가’다. 개원가와 대학병원 사이에 끼인 정체성 탓에 늘 정책적으로 소외되고 홀대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부 정책이 개원가와 상급종합병원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정작 지역의료의 중추를 맡고 있는 종합병원들은 소외되고 어려움이 가중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그나마 대림성모병원은 특성화를 통해 나름의 타개책을 마련했음에도 종합병원의 정책적인 소외와 고질적인 저수가로 걱정이 크다.
대림성모병원 부원장도 겸하고 있는 성진용 센터장은 “최근 인건비와 물류비가 급증하며 종합병원들이 고사 위기에 놓여 있다”며 “수가 현실화를 통한 적정보상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경영환경은 녹록지 않지만 대림성모병원 갑상선센터의 진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 세월 갑상선 질환 특성화 센터의 기틀을 다지고 성장을 도모했다면 이제는 리더의 품격을 발휘해 국내 갑상선 질환 진단 및 치료의 격(格)을 높이는데 기여하겠다는 복안이다.
대학병원 의료진과 꾸준한 교류를 통한 진단 및 술기 발전을 도모함과 동시에 갑상선 분야에 몸 담을 후배 의료진 교육과 노하우 전수 등에 적극 나설 예정이다.
성진용 센터장은 “대학병원이 아닌 종합병원 내에 개설된 갑상선전문센터의 역할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 중”이라며 “보다 다양한 영역에서 그 역할을 찾아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아울러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빠르고 정확한 진단 시스템, 환자별 맞춤형 치료전략 수립 등 진료 영역의 진화도 계속 지향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성진용 센터장은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영상의학과 전문의로, 갑상선 종양 진료, 갑상선 고주파절제술, 갑상선 에탄올절제술 분야 권위자다.
저서로는 ‘갑상선 영상진단과 중재시술’이 있고, 대한갑상선영상의학회 총무이사를 거쳐 올해부터 회장으로 취임해 학회를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