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강형진 교수팀은 지난해 국내 병원 중 처음으로 자체 생산한 개인별 맞춤형 항암제 'CAR-T 치료제'를 10대 백혈병 환자에게 첫 투여해 치료에 성공했다. 1회 투여에 약 5억 원이 들어가는 CAR-T 치료제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국내 환자를 위해 2018년부터 개발을 시작한 지 약 4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하지만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국내에서 연구자 주도 임상은 상업용 임상 수준의 규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CAR-T 치료제 개발 시스템'을 구축한 강형진 교수를 만나 국내 연구자 주도 임상 과정과 고충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강 교수는 2009년 미국 Baylor College of Medicine에서 연수를 하던 시절 CAR-T 치료제 개발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이후 국내로 돌아와 CAR-T 치료제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미국은 연구자 임상 80% 인데 우리나라는 20% 불과"
이후 2017년 소위 '원샷 치료제'로 불리는 노바티스 킴리아가 출시됐지만 국내에 들어오지 못했다. 미국서 치료를 받으려면 약제비 5억 원, 치료비 5억 원 총 10억 원의 비용이 필요한 실정이다.
강 교수는 "환자들에게 '조금 지나면 좋은 약이 나오니까 치료할 수 있을 거다'라고 말했는데 약이 들어올 생각을 안 했다. 그러던 차에 독일 생명공학 기업 '밀테니 바이오테크'가 개발한 CAR-T 치료제 자동화 생산 기기를 알게 됐는데 적은 인력으로도 CAR-T 치료제를 만들 수 있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직접 독일 본사에 찾아가 서울대병원에 기계를 공급해달라고 요청했다. 밀테니 측은 기기는 물론 재료까지 공급하기로 했다.
강 교수는 "당시 서울대병원 김효수 교수가 이끄는 연구중심병원 '유전자-세포-장기 융합 바이오 치료 플랫폼 구축' 과제가 딱 시작할 때였는데 운 좋게 합류를 하게 되면서 지원을 받아 임상을 준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연구자 주도 임상도 상업용 임상과 동일한 규제 적용 필요"
소아백혈병 대상 병원 생산 CAR-T 치료 연구는 2021년 12월 국내 처음으로 고위험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로 승인을 받았다.
전임상 동물시험 및 GMP 생산 시설, 임상시험 시설을 통해 CAR-T를 개발하고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서울대병원에 구축한 것이다.
강 교수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며 "2019년 첨단재생바이오법이 제정됐는데, 그 전에는 모든 임상이 식약처를 통과해야 했는데 복지부를 통하는 거로 바뀌었다. 시스템이 바뀌자마자 복지부 승인은 받았지만, 식약처가 추가로 요청한 게 있어 2021년 12월말 승인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이러한 옥상옥 규제가 연구자 주도 임상 활성화를 막는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위험, 중위험은 복지부 심의로 끝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활성화가 되고 있는데 CAR-T, 줄기세포 등 고위험 치료제는 복지부 다음에 식약처 승인을 또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식약처의 경우 상업화 목적의 임상시험에 대해 심사할 때 굉장히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는데, 연구자 주도 임상에도 기준을 똑같이 적용하고 있다. 상업화 직전 가장 높은 수준의 레벨을 요구한다"며 "물론 그게 안전하기는 하지만 연구자가 할 정도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연구가 시작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 FDA는 연구자 주도 임상과 회사 임상을 나눠 평가 기준을 정한다. CAR-T 치료제의 경우 동물실험을 하지 않기도 한다.
강 교수는 "미국은 1980년대 말부터 세포치료제 연구를 시작했기 때문에 오랜기간 협의를 통해 세부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역사가 없기 때문에 기존 가이드라인에서 새로운 걸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식약처 승인, 복지부로 이관할 시기 된 것 같다"
강 교수는 연구자 주도 임상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킴리아, 예스카타 등 많은 치료제가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개발된 만큼 연구자 주도 임상이 활성화돼야 한다"며 "미국의 경우 연구자 주도 임상이 80%를 차지하는데 우리나라는 20%에 그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원천기술 개발이 많지만 규제로 인해 임상으로 연결이 안 된다"며 "공익적, 학문적 목적의 연구에 대해서는 규제 유연성이 있어야 개발에 속도가 나고 환자에게 빠르게 적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연구자 주도 임상을 활성화하기 위해 복지부와 식약처 역할이 분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복지부는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만들어진 만큼 학문적, 공익적 목적이 강한 기관이고, 식약처는 규제 기관이다. 그런데 규제 기관인 식약처에 학문적, 공익적인 역할을 맡기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첨단재생바이오법 시행 3년이 지나 안정화된 현 시점에서 식약처 승인을 복지부로 이관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복지부가 심사할 역량을 갖춘 만큼 복지부 승인 및 식약처 검토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