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공화당 도날드 트럼프(Donald John Trump)가 제4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막말 발언으로 워낙에 유명하지만 특히 “소아자폐와 백신이 연관성이 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소아 백신을 적당량만 투여하도록 밀어붙일 것”이라는 등 의료분야에서 대표적 막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는 오마바케어(Affordable Care Act)의 실패를 등에 업고 중산층들 지지를 얻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향후 미국의 보건의료체계는 어떤 형태로 변화할지, 또 우리나라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진단해본다. [편집자주]
美 보건의료체계 ‘오바마케어’ 추락 예견 속 추이 촉각
도날드 트럼프는 선거당일에도 오바마케어의 날선 비판을 서슴치 않았다. 그는 8일(현지시간)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오바마케어를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발언이 통했다.
이는 미국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점이 드러났고 새로운 방향으로 재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투표를 통해 명확히 전달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오바마케어를 살펴보겠다. 오바마케어는 지난 2010년 모든 미국인들이 건강보험을 갖고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출발, 법제화기 이뤄졌으며 2014년 시행됐다.
오바마케어는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브론즈, 실버, 골드, 플래티넘 4가지의 보상품을 비교해 선택할 수 있게 했다. 가입하지 않을 경우 벌금을 부과해 전국민 보험제도로의 변화를 모색했다.
젊은층이 내는 보험료로 고령자에게 나가는 의료비가 충당되면서 장기적으로 보험료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지만, 시행 후에는 악재(惡材)로 변했다.
들어오는 보험료에 비해 나가는 보험금이 훨씬 커 큰 손해를 본 거대 보험업체 ‘유나이티드 헬스케어’는 13억원의 손해를, ‘애트나’는 4억3000만 달러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가입자 역시 보험료 대비 혜택을 보기가 어려운 구조인데다가 내년에는 월 평균 25%의 보험료가 오른다는 분석에 오마바케어를 당장 폐지하겠다는 트럼프의 주장이 공감대를 넓히면서 이번 대선 승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주장하는 보건의료제도 운영 방식은 무엇일까. 그는 "의료비 지출이 과다한 상태이기 때문에 보험료 인하를 통해 의료비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대표적인 보건의료 정책은 공공보건제도인 메디케어(미국 노인 의료보험제도),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험), 국민연금제도를 유지하고 전국민 건강보험가입을 의무화하는 개혁법안인 오바마케어는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오바마케어를 대신해 메디케이드를 주별 정액교부금 형태로 지급한다는 것이 그가 주장하는 방안이다. 제도적 규제보다는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의료비 지출을 줄여나가는 방식을 쓰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건보공단’ 등 국내 기관들이 바라보는 시선
자국 내 보건의료제도 변화와 함께 주목해야 할 부분은 트럼프가 공공보건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해외 의약품 수입에 문호를 확대, 적극 개방하겠다는 입장도 표명한 것이다.
이는 트럼프의 강력한 보호무역주의와 상반되는 내용으로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의료 및 제약분야에 한해서는 긍정적인 기류가 흐를지, 아니면 그 반대로 역풍을 맞게 될지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이와 관련,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적정부담, 적정급여’라는 핵심 가치를 반영하지 못한 오바마케어의 실패를 진단하고 향후 트럼프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큰 맥락에서 바라보면 국내 역시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므로 오바마케어를 반면교사 삼아 제도의 지속성을 위한 다양한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사실상 오마바케어 폐지가 국내 건보제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겠지만, 공공보건 측면에서 변화가 있을지 여부는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보공단 고위 관계자는 “그간 지속적으로 오바마케어를 연구해왔는데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다른 형태의 의료제도 방식도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이는 트럼프도 의료비 절감이라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아무래도 미국 제도의 변화는 그 자체로 갖는 영향력이 존재해 우리도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 제도에서 만큼은 우리나라가 선진국 형태를 띠고 있지만 보장성 강화 수준을 여러모로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선 국내 의료현장이나 해외 진출에 당장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는 “미국은 국내 의료기관의 해외진출이 활발한 지역은 아니다 보니 대선 결과와 관련해 서 당장의 큰 변화나 걱정이 예상되는 측면은 없다”고 밝혔다.
타 분야보다는 나은 상황 제약‧바이오…일부 “큰 영향 없다”
산업 분야에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한국 수출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따른 세계경제 동반침체를 예상하면서 우리의 경우 원화절상 압력에 의해 수출이 위축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제약‧바이오산업의 상황은 다르다. 트럼프 당선 시 헬스케어산업에 큰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던 ‘약가규제 정책’ 리스크가 사라진 덕분이다.
약가규제 정책은 힐러리 공약 중 하나였다. 하지만 트럼프는 “약가에 대한 인위적 개입 없이 시장 경쟁에 따라 결정되도록 해야 한다”며 정반대 입장을 보여 왔다.
미국에서 판매를 시작한 셀트리온 및 슈퍼 블록버스터인 길리어드 C형간염 치료제에 원료를 공급하는 에스티팜, 미국 내 혈액제재사업을 진행중인 녹십자 등에게는 유리한 이슈로 작용할 수 있다.
또 트럼프는 공공보건 시스템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의약품 시장은 적극적으로 개방할 것이라고 밝혀 왔기 때문에 오랫동안 복제약품을 만들어온 한국 제약업체에도 호재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의료분야는 보호무역주의에 큰 타격이 없을 것이며, 오히려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인터뷰를 통해 작성한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경제·통상정책 방향 전망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트럼프 당선이 의료, 공공인프라, 전통에너지 등과 관련된 국내 기업의 대미 수출 기회가 확대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부에선 오바마케어 폐지와 약가규제 정책 무산 등은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는 있으나 크게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라는 증권사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오바마케어가 폐지, 약가규제 정책 시행 등이 우리 제약·바이오 기업들에게 크게 유리해질 것도 없다”면서 “고가약, 신약 위주인 미국 제약시장에 제대로 진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