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믿음(Faith)은 위험(Risk) 앞에서 시험 받아"
서대철 강남베드로병원 신경중재과장
2024.10.20 18:35 댓글쓰기

[특별기고] 필자는 후교통동맥에 이어 전맥락총동맥에 생긴 뇌동맥류(Anterior choroidal artery aneurysm)에 관한 논문을 쓰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


전맥락총동맥은 매우 위험한 동맥으로 알려져 있다. 발생학적 특정 시기에 중요한 혈류 공급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위에 손상이 생기면 팔다리 감각신경은 물론 운동신경도 영향을 받아 곧바로 마비가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한때 잘나가는 집안(뇌(腦) 많은 부분에 공급하던 엄청 중요한 혈관)을 정승 집안이라 보았고 그 후손(전맥락총동맥 지칭. 마치 몰락한 집안처럼 작아져서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현재도 매우 중요한 혈관)은 비록 존재감은 없지만 아직도 대단히 중요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봤다. 


전맥락총동맥 바로 아래 있는 후교통동맥과는 하늘과 땅 차이(天壤之差)


전맥락총동맥은 매우 작아 혈관조영상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다. 워낙 파악하기 어렵다보니 간혹 바로 아래에 있는 후교통동맥과 혼돈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뇌동맥류 시술자 입장에서 보면 두 동맥에서의 위험도는 소위 하늘과 땅 차이(天壤之差)다. 즉, 후교통동맥 뇌동맥류는 상대적으로 접근이 쉽고 코일 삽입이 원만히 이뤄질 수 있다. 


그래서 교육을 받는 전임의(펠로우)에게 시술을 해보라고 기회를 줄 수도 있는 대표적인 질환이 후교통동맥에서 발생한 동맥류다.


감시(supervise)를 잘하면서 지도(teaching)도 해 줄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후교통동맥 뇌동맥류를 일명 '전임의 동맥류(Fellow’s aneurysm)'라고도 한다. 그만큼 시술이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부위라는 뜻이다


후교통동맥은 전맥락총동맥의 활달한 '사촌 격'


교통동맥은 전맥락총동맥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다(사진 1). 서로 교신도 하고 혈류도 교환할 수 있지만 역할은 전혀 다르다.


후교통동맥은 윌리스고리(the Circle of Willis, 전후 

뇌동맥이 교통동맥으로 연결돼 뇌(腦) 기저부에서 이루어지는 육각형모양 혈관 고리) 한 축을 담당하는 부분으로 뇌동맥류가 많이 발생하는 위치 중 하나다.


혈류 교환이 활발이 이뤄지는 윌리스고리에 발생한 뇌동맥류는 양방향 혈류로 인해 치료 후 재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필자는 후교통동맥부위 뇌동맥류를 적극적인 코일시술을 통해 역류에 의한 재발을 줄여 치료 효과를 높이는 방법에 관한 논문을 쓴 적이 있다(Neurointervention 2022).


양방향 흐름이 있는 교통동맥을 부분적으로 폐쇄해 반대쪽에서 오는 혈류를 일부 차단, 남은 혈류를 잘 유도해서 뇌동맥류에 미치는 '혈류 역학효과(hemodynamic effect)'를 최소화시킴으로써 치료 효과를 높이는 것이다. 


논문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10살 정도된 소아에서 25mm가 넘는 거대동맥류 색전술을 어렵게 성공하면서 느낀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과 결과에 대한 너무나도 강력하면서도 소중한 경험을 했다.


시술 후 5년도 더 지난 현재, 아무 이상 없이 환자가 잘 생활하고 있으므로 더 두고 봐야겠지만 이러한 현상의 효과와 그 지구성(persistence)에 대해 필자는 확신을 하게 됐다. 


외국 학회에서 이런 사례를 구연 발표했을 때 결과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참석한 청중들은 반신반의했다. 한편으로는 다른 의견도 제기됐다. 즉, 다른 치료 방법으로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로는 소아에게서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디바이스(장비)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한 다른 방법이 더 좋았을 수도 있었을런지 모른다. 그러나 필자 생각은 달랐다. 


당시 학회에서 강력한 비판을 한 분은 신경중재의학 분야 대가(大家)로 세계적인 개척자(World Pioneer)였다. 어느 누가 감히 대가가 주장하는 새로운 재료에 대한 사용에 반기를 들면서 필자의 시술 효과를 인정하고 탐구하려고 하겠는가?


하지만 필자는 환자에서 나타난 결과가 이미 그 효과를 증명했을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이 경과한  지금도 효과가 입증된 것이라고 확신해서 논문까지 쓰게 된 것이다. 


당시 환자 엄마는 아이를 치료해 줄 수 있는 곳을 여러군데 찾아 헤매었다. 하지만 어느 병원도 받아주지 않아서 마지막 심정으로 필자를 찾아왔다.


엄마에게 당장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드리고 치료계획을 상의했을 때 그 엄마는 기꺼이 치료를 받겠다고 했다. 이후 엄마도 막다른 골목에서 이러한 치료법이 아들의 생명을 지켜줬으며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필자와 함께 굳게 믿었던 것이다. 


기라성 같은 분은 스승의 한 분이라고도 볼 수 있는 프랑스 모레 선생님(Prof. Jacque Moret) 이었다. 필자는 스승이자 세계적인 대가인 그 분 앞에서 지속적인 항변은 할 수 없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감히 생각했다.


아직 해법이 알려져 있지 않은 정말 위험한 이 같은 거대뇌동맥류를 치료할 수 있는, 아마도 다른 치료방법으로는 어려울 것이라고···


따지고 보면 그것은 신비로운 인체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 중 하나로 필자가 관찰하고 발견했을 따름이지 필자 개인의 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객관적인 기술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방법으로는 치료 어렵다고 확신하게된 '색다른 경험' 


다른 방법으로는 더 나은 치료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것으로 확신한 이유는 다른 부위 거대동맥류 (Giant aneurysm, 25mm 이상 뇌동맥류를 말함) 경험 때문이다.


당시 혈전을 동반한 전교통동맥의 거대동맥류 환자가 여러 병원을 거치면서 수차례 치료를 받았지만 자꾸 재발하는 상황이었다. 동맥류가 너무 커서 수술도 불가능했다.


결국 필자에게 와서 치료를 해달라고 호소했을 때 필자는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질환 재발을 막으면서 한번에 치료를 할 수 있을까? 그러한 방법은 정말 없단 말인가? 등등.


깊은 고민을 한 끝에 바로 그 생리적 혈류전환기법을 통한 치료법을 적용했다. 얼핏 보면 치료법은 매우 간단해 보인다. 하지만 제대로 하면 그 효과는 엄청나다. 그래서 성공적인 치료가 이뤄졌으며 그 이후 재발도 없었다. 


후교통동맥 논문도 힘든데 훨씬 더 위험한 전맥락총동맥 논문은 쉽게 받아들여질까?


후교통동맥에서도 그럴 정도인데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한 전맥락총동맥에 관한 색전술 논문은 오죽하겠는가?


경험 많은 시술자들도 하기를 꺼려하는 이런 시술에 대해 누군가 효과적으로 쉽게 했다면 이 논문의 심사를 맡은 의사는 순순히 그 효과를 인정하기 힘들 것이다. 


필자는 전맥락총동맥에 관한 두 편의 논문을 작성했다. 


두 논문 대원칙은 한마디로 한때 정승을 지낸 집안의 자손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단지 비유적인 표현이다).


즉, 전맥락총동맥 혈류 입구를 무조건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두가지 중요한 테크닉을 구사해야 하는데 하나는 낮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아래쪽에 위치한 전맥락총동맥으로 접근해야 한다)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강력한 방어벽을 쌓아야 한다는 것(전맥락총동맥으로의 혈류를 방해하지 않는다)이다.(그림 2) 


첫번째 논문 주제는 낮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


첫번째 논문 주제인 낮은 자세로 임한다는 것은 뇌동맥류로 진입할 때 미세도관(Microcatheter) 접근 위치를 말한다. 위험한 혈관(전맥락총동맥)은 대개 뇌동맥류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그림 2).


미세카세타가 뇌동맥류 안으로 진입할 때 자연스럽게 아래쪽으로 들어가 전진함으로써 코일을 뇌동맥류쪽으로 밀어내기 위한 것이다. 이 기술에 관해 첫번째 논문을 썼을 때 이름을 ‘이카루스 테크닉’이라고 불렀다.


이카루스 날개처럼 뜨거운 태양에 의해 초로 만든 날개가 떨어지므로 위험하다는 그리스 신화를 빗대어 낮은 자세로 하향 접근해야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사용했던 용어다.


하지만 세상은 좁은 것인지 아니면 넓은 것인지 외국 잡지에 논문을 제출했을 때 공교롭게도 담당 편집장이 튀르키예(舊 터키) 사람이어서 그런 용어를 쓰지 말 것을 요구받았다.


필자는 그리스와 튀르키예 관계를 역사적으로 다시 살펴보고 두 나라 사이에 여러 시대에 걸쳐 피눈물 나는 전쟁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됐다. 신화시대는 물론 고대와 근세에 이르기까지 전쟁을 치렀다.


필자는 그리스 신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튀르키예 사람들 심정을 이해하고 그런 용어를 쓰는 것이 인류 보편적 정서에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편집장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는 한일 관계의 풀기 어려운 매듭과도 같아서 이를 건드리는 것은 아픈 상처를 학문적으로 또 다시 건드리는 것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논문 요지는 전맥락총동맥 혈류를 보존하기 위한 철벽을 세우는 것


두 번째 논문 요지는 전맥락총동맥 앞으로 낮게 들어간 상태에서 강력한 철벽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뇌동맥류 재발을 막고 전맥락총동맥의 흐름을 잘 보존할 수 있게 된다.


동맥류로 들어오는 혈류는 이 철벽 앞에서 힘을 잃어 뇌동맥류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한편 부딪히고 난 혈류 일부는 전맥락총동맥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그림 2)


이러한 기술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사용 가능한 다양한 코일의 성질을 잘 익힘은 물론이고 같이 사용하는 스텐트나 뇌동맥류 벽까지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러므로 많은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시술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더욱이 수술을 할 수도 있고 그냥 경과관찰을 통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두고 볼 수도 있는 경우에서 위험한 시술을 했다면 무슨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는가? 


논문 심사위원들 "왜 다른 치료법은 고려하지 않고 이처럼 어려운 방법 시도하나" 지적


미국 학회에 이 논문을 보냈을 때 가장 크게 지적받았던 사항은 이 부위에서는 사용이 어려운 코일로 왜 시술을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코일 색전술이 어려운 경우 혈류전환 스텐트라는 것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혈류전환 스텐트는 촘촘한 철망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스텐트이며 혈류가 동맥류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분산시킴으로써 결국 뇌동맥류가 작아지게 되는 치료법이다. 


시술방법이 비교적 간단해서 까다로운 부위 뇌동맥류에 대해 혈류전환 스텐트를 사용하는 것은 서양인들이 선호하는 시술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혈류전환 스텐트를 사용할 수가 없다. 내경동맥에서는 10mm 이하 뇌동맥류에는 혈류전환 스텐트를 사용할 수 없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만약 사용하면 불법이 돼 고발을 당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들 의료재료들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는 서양의사들이 부럽다.


국내에서는 이런 고가 의료재료에 대한 사용을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국내 의료기술이 더 발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서글픈 사안이다.


수술을 권유 받자 환자들 예민해지고 불안감 피력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런 상당수 환자들은 전맥락충동맥 뇌동맥류 진단 당시 신경외과 의사들에 의해 수술을 권유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 것도 수술 밖에는 안전한 치료방법이 없다고 말이다.


필자는 이러한 훌륭하고도 용감한 신경외과 의사들이 정말로 그런 말을 하였는지 믿어지지가 않았으며 설사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폄하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수술 필요성을 강조하는데 놀란 환자들이 비수술적인 시술방법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미 수술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강력한 정보 입력으로 인해 더 이상 관찰 가능성(치료를 하지 않고 일정기간 경과를 두고 보는 임상적 결정)은 생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시술 가능성을 들었을 때 시술을 받겠다고 나서면서 자세를 바꾸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것은 시술 의사에게도 큰 부담이 된다.


매우 작은 뇌동맥류(very small aneurysm, 3mm 이하 크기 뇌동맥류)는 일반적으로 지켜보는 것(관찰)이 원칙이다. 


따라서 그러한 환자들 요구가 있을 때에는 두고 보면 된다고 설득을 하거나 다소 강압적인 압박을 해보기도 하지만 이미 환자 마음은 결정돼 더 이상 설득이 안된다. 당혹스럽지만 한편 왜 치료를 해야하는지 명분을 찾을 수밖에 없다. 


뇌동맥류 치료 가이드라인에서 명분 찾기와 의료기술 보편성  


뇌동맥류 치료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환자가 뇌동맥류로 인해 심각한 불안증이 유발된 경우는 치료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필자는 만약 이 세상에 안전한 방법이 있다면 불안과 두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환자에게 그 길을 택해야 하는 것이 좀더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칫 오만해질 수도 있는 그런 마음 자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유발시킨다면 환자나 의사 마음 속에는 얼마나 큰 상처가 남겠는가? 아 정말 할 수도 없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인 것을 어찌하랴? 


한편, 의료기술에는 보편성이라는 것도 있다. 평균적인 수준의 의사가 얼마나 잘 할 수 있는가 하는 평가가 중요하다. 무작위통제연구(Randomized controlled study)도 바로 그러한 가능성을 보는 연구의 하나이다. 


무작위통제연구 관점에서 보면 최고로 경험 많은 의사만 할 수 있다면 그 기술은 일반화하기 어렵다고 본다. 비록 치료성과가 좋았다고 해도 치료나 그 방법에 대해 부정적인 결론을 제시(논문심사에서 출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reject를 의미) 하게 되는 것이다. 


병변 빈도가 많지 않고 시술자 경험도 다양한데 거기서 무작위 통제 연구를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만일 경험 없는 의사에게 배정돼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는 어떻게 정당화될 수가 있는가? 윤리적인 문제가 개입될 수 있다.


그래서 경험 많은 의사가 내용을 정확히 기록하고 묘사하여 다른 사람이 그걸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이 배움의 또 다른 중요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이를 경우 Case Series 혹은 Technical Note라는 이름으로 보고를 하게 된다. 


안전하고 효과가 좋은 기술을 개발해서 논문으로 게재한다는 노력에 관해서는 필자도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편안하게 치료될 수 있는 결과를 환자들에게 가져다줄 이 세상 최고 기술은 없을까? 의학기술 분야에서 첨단을 걷는 개척자분들은 아마도 조금은 공감할 것이다.


선후배 중에는 묵묵히 개척의 길을 걸어 가는 분들이 있다. 그 분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여러 위험 앞에서 시험받아도 흔들리지 않은) 그러한 굳건한 믿음이 아직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필자에게는 여전히 부족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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