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정승원 기자] 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 사망으로 의사들의 근무환경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우선적으로 주 52시간 근무 상한제 특례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형렬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21일 대한의사협회 임시회관에서 개최된 ‘의사 과로사 해결을 위한 적절한 방안은 무엇인가’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서 노동시간 특례제도 문제점을 지적했다.
노동시간 특례제도는 노동법 내 주52시간 근무상한제에 예외를 둔 것으로 ▲육상운송 및 파이프라인 운송업 ▲수상운송업 ▲항공운송업 ▲기타 운송 관련 서비스업 ▲보건업 등이 예외업종에 해당한다.
때문에 의사들은 주당 52시간 근무시간 상한제가 시작되더라도 노사가 협의한 경우 주 1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를 할 수 있는 상황이다.
김형렬 교수는 “보건업은 노동시간 특례제도에 따라 52시간 뿐만 아니라 88시간, 그 이상도 일할 수 있다”며 “국민 편의를 위해서라도 이러한 특례제도에서 보건업은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버스 운전사가 18시간 연속근무로 졸음운전을 해서 교통사고가 났고 시민 안전을 위해 운전시간 제한을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졌다”며 “결국 노선버스의 경우 이번에 특례제도에서 빠졌다”고 말했다.
버스 운전기사 근무환경처럼 국민건강 입장에 중요한 것이 의사의 근무환경인 만큼 노동시간 특례제도에서 보건업이 제외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의사 역시 환자안전을 위해, 그리고 의사 개인 건강을 위해서라도 계속 보건업이 특례로 남아있어야 하는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면서 “의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왜 사회적으로 허용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 과로사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자료 마련부터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연희 의협 법제자문위원은 “의사는 노동강도가 높고 전문성 유지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하며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윤리수준도 높아 타 직업군에 비해 스트레스가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그러나 법원은 스트레스를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고 사람의 내성에 따라 외부 환경에 따라 제각각일 수 있어 인과관계 파악이 쉽지 않다고 봤다”고 밝혔다.
김 위원은 “의사 과로사를 특정할 수 있는 통계자료가 있어야 한다. 타 직업군에 비해 노동시간이 길다고 해서 곧바로 과로재해로 연결되지 않는다”며 “통계자료로 타 직업군에 비해 유의하게 과로사가 많다고 판단되면 사회적 합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응급의료 관련 업무를 하는 의사들에 한정해 통계작업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무조건 의사 수 늘리는 것보다 필요한 분야 증원해 가는 방식 필요"
과로사까지 내몰린 의사들의 근무환경 개선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방법론에서는 이견을 보였다. 병원계는 의사 수 증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낸 반면 의료계에서는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대한병원협회는 최근 의료인력 수급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의사를 포함한 보건의료 인력 수급에 적극 대응하기로 한 바 있다.
김병관 병협 미래정책부위원장은 “무조건 의사 수를 늘리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근무시간을 줄일 필요성에 대한 논의도 이뤄져야 한다”며 “근무시간을 줄이고 의사를 늘린다면 이번과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이경원 서울백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미용·성형 분야 의사가 부족하다고 이야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응급의학과 같은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이 부족한 것이다. 의사들의 과로사가 있다고 해서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해법이 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법조계와 노무계에서도 의사 근무환경 개선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조진석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는 “방사선사의 경우 판독 지원과 촬영 업무로 인한 피폭량 증가에 대해 산업재해 신청을 했고 법원의 판결로 인정됐다”며 “의사들도 과로사와 연속근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야 정책적으로든 입법적으로든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공인노무사회 김명환 사무총장은 “장시간 근로 의사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다. 양적인 면은 축적이 돼 있다고 하더라도 질적 조사는 없었던 것 같다”며 “노무와 인사 전문가로서 무방비로 대처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총장은 “장시간 근로에 대해 어디서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있다”며 “핀란드의 경우 노동자가 책임을 지지만 독일과 영국은 고용자가 진다. 사용자 차원에서의 노동자 근무시간 관리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