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해온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사업’의 본사업 확대가 암초를 만났다. 정부와 의료계 입장차가 큰 ‘본인부담률 특례적용’이 걸림돌로 작용되는 모습이다.
내년 본사업 전환을 앞둔 최근까지도 보건복지부는 환자본인부담금 30%를, 반면 의료계는 최대 10%를 주장하면서 좀처럼 간극을 좁히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고혈압 당뇨병 등록시범사업,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 지역사회 일차의료 시범사업, 만성질환 수가시범사업을 거쳐 2019년 1월부터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을 진행해 왔다.
이후 해당 시범사업은 지난해 11월 25일 건강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연장과 함께 2022년 전국 본사업 추진이 결정됐다.
해당 사업에 복지부는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사업을 통해 장기적으로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부분과 의료계가 반대하는 주치의제도에 버금가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이다.
또 일차의료 살리기에 효과적이라는 점, 혈압·당뇨 시범사업이 본사업에 들어가야 천식·만성폐쇄성질환·소아 천식·소아 아토피 시범사업 등이 순조롭게 시작될 수 있다는 점 등도 고려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암질환 환자 본인부담금 5%·중증질환자 본인부담금 10% 등인데 반해 고혈압·당뇨 환자는 중증환자도 아니고 그간의 보험정책 중 환자 본인부담금 체계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최대 30%까지 본인부담률을 주장하고 있다.
의료계도 의원급 의사들이 고혈압·당뇨 등의 질환 교육상담료를 받게 됐다는 상징성과 함께 의원 재정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등 경제성에 의미를 부여하는 상황이다.
고혈압·당뇨를 넘어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등으로 이어져야 고지혈증·골관절염·류마티스관절염·만성전립선염·불면증 등 순차적인 시범사업이 가능한 것도 10% 본인부담률 주장 근거 이기도 하다.
개원가에선 국가예방접종사업이나 국민건강검진사업에 본인부담금이 없다는 사실을 예로 들며, 국민 건강을 위한 투자라는 개념에서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점을 부각, 환자 본인부담금 10%를 피력하고 있다.
7월 건정심 안건 상정 불발…복지부 “재정관리 관건”
당초 보건복지부는 7월 건정심에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을 금년 하반기, 늦어도 내년부터 본사업으로 전환하는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었지만, 본인부담률 특례 적용을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해 상정을 순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내과의사회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사업을 본사업으로 전환해야 하며, 본사업에서도 시범사업과 같은 최소 10% 본인부담률이 적용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근태 내과의사회장은 “의사가 환자에 대한 만성질환관리 계획 수립과 사업 등록, 교육·상담하는데 대략 8만원의 진료비가 소요된다”면서 “이 중 30% 본인부담이면 2만원 이상으로 본인부담이 상향되면 만성질환관리사업은 진행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어 “만성질환관리사업은 환자 혈압과 혈당을 조절해 응급실 방문과 입원율을 감소시켰다. 만성질환관리사업으로 국민건강이 좋아지고 있다는 데이터가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문턱을 높이면 본 사업 진행은 어려워진다”고 피력했다.
실제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에 대한 효과성은 관리를 받은 환자들의 혈압과 혈당이 잘 조절돼 응급실 내원 및 입원률이 감소했으며, 노인 사망률도 낮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복지부도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의 본사업 전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의료계가 희망하는 본인부담률 인하 여부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은 현재 고혈압과 당뇨병 2개 질환에 대해서만 운영되고 있으며 천식, COPD, 폐렴, 만성심장병 및 인공치환술 등은 본사업 포함 방침만 정해져 있는 상황이다.
가입자 단체와 정부 일부에서는 고혈압과 당뇨병 등 특정질환에만 본인부담률 특례를 인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사업에 대한 본사업 전환의 필요성은 있다. 본사업 전환을 위한 환자 본인부담률 특례 적용에 대해서는 가입자, 공급자, 전문가들과 논의를 더 진행해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정부는 암을 비롯한 희귀질환 등 산정특례 적용 질환에 대해서만 본인부담률을 5%로 경감하고 있으며, 고혈압 및 당뇨 등 만성질환에 대한 본인부담률 경감 정책은 진행하지 않고 있다.
“환자 본인부담금 점진적 상향하고 국고지원 검토돼야”
이 가운데 일부에선 본인부담금에 대한 저항감을 줄이기 위해 비율을 10%, 15%, 20%, 30% 등으로 점진적으로 올리는 방법이 제안된다.
또 국가예방접종사업이나 국민건강검진사업처럼 국고나 지방재정,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재정 보조 등을 통한 환자본인부담금 10% 고정 등의 방안이 필요하는 의견도 제기된다.
건강보험재정 중 만성질환 진료비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노인 진료비 비중이 매년 커지는 상황에서 해당 사업은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지난 2003년 26.8%였던 만성질환 진료비는 2007년 32.9%, 이후 2019년에는 40%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또 노인 진료비는 2016년 38.7%에서 2017년 39.9%, 2018년 40.8%, 2019년 41.4%, 2020년 43.1%, 2021년 43.4%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와 의료계는 만성질환자 교육 및 상담을 통한 예방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동네의원 중심으로 만성질환자 포괄적 관리체계를 마련하고, 경증 만성질환자의 동네의원 이용 활성화를 통한 의료전달체계 개선 마련 등을 적극 추진중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환자 본인부담률을 일정 부분 경감할 경우, 그만큼 건강보험 재정에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일어난다. 건강보험 재정관리 차원에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당초 7월 건정심에 상정할 계획이었지만 본인부담률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건정심 상정을 순연한 상황”이라며 “상정 전에 조만간 협의체를 통해 적정한 대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대한내과의사회 한 임원은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사업이 장기적으로 국민 건강을 위한 투자라는 발상 전환과 함께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만 이뤄진다면 본인부담금에 대한 의견차는 충분히 좁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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