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팬데믹 시대···병원 '건축·공간 패러다임' 변화
2022.02.10 05:19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신용수 기자/기획 1] 코로나19는 병원 공간의 개념마저도 바꿨다. 그동안 병원 공간은 진료뿐만 아니라 편의시설 및 문화시설로 수익을 증대할 수 있는 보호자를 타깃으로 한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려졌다.
 
하지만 코로나19를 비롯한 일련의 감염병 사태 이후 많은 병원들이 본연의 기능인 환자 치료 및 보호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병원 공간 설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시대 속 병원 공간의 새로운 기준은 과연 어떻게 될까. 
 
병원 내 감염내과 영향력 커지고 의료진 및 환자, 보호자 동선분리 중요
 
건축업계에서는 코로나19 시대 건축설계 변화를 보려면 먼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병원 건축 설계 전문가인 이태상 간삼건축 병원사업부 상무는 “메르스 이후 병원 설계 기준에 대한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설계 및 동선관리에 감염내과 위상이 올라갔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한 병원 설계 당시 공용공간에 식물을 배치하는 식으로 내부 디자인을 구성했는데, 감염내과 측의 요청으로 식물이 모두 빠졌다.
 
이태상 상무는 “화분 토양 속 미생물이 면역력이 약한 환자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감염내과의 위상 상승이 병원 설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일례”라고 말했다. 
 
유희진 정림건축 소장은 “메르스 이후 원내 감염관리가 강화됐다”며 “기준 병상이 5~6인실에서 4인실로 바뀌고 병상 간격도 1m에서 1.5m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전했다.
 
이어 “코로나 이전까지는 병원들이 ‘이렇게까지 강화해야 하나’하는 반응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모든 병원에서 ‘감염 관리가 곧 생존’이라는 공통된 의제가 형성됐다”고 덧붙였다.
 
특히 전염병 상황에서 병원 설계에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동선 설계’다. 
 
감염 위험이 있는 호흡기 환자 동선을 어떻게 다른 환자와 분리하느냐가 감염 관리의 핵심이자, 병원 사업 유지의 중요한 요소로 떠오른 셈이다.
 
유희진 소장은 이대서울병원을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이대서울병원은 2013년 겨울 현상설계를 거쳐 2014년부터 본격적인 설계에 들어갔다. 이후 2015년 설계를 완료했지만, 메르스 이후 동선 확보를 중심으로 설계가 변경됐다.
 
그는 “응급실에서 호흡기계 환자는 별도 출입구를 통해 음압실이나 음압병동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동선을 분리하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이어 “또 호흡기 병원 및 감염내과 쪽 환자들은 1층 주 출입구 옆에 별도 출입구를 마련해 감염성을 가진 사람이 다른 환자와 혼입되지 않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이태상 상무는 세브란스병원 응급진료센터에 주목했다.
 
2017년 완공된 세브란스병원 응급진료센터는 입구와 출구를 분리하고 감염 의심환자를 위한 출입구를 별도로 배치하는 식으로 동선을 확보했다.
 
이 소장은 “입구와 출구를 분리하면 감염환자가 혼입되더라도 입구 쪽 동선만 격리하면 된다”며 “환자 발생 시 격리 요소를 최대한 줄이고 환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창문 통한 환기 옛말, 공간별 맞춤 공조
 
환기 또한 병원 감염관리의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병원 공간은 중소 병·의원을 제외하면 환자 보호를 위해 외부 창문을 통한 환기가 불가능한 공간이 많다. 
 
특히 환자들이 머무는 병동 병실의 경우 직접적인 환기가 어렵기 때문에, 쾌적한 공기질 유지를 위한 공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제는 이 같은 공조 시스템이 자칫하면 감염 전파를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껏 동선을 분리해도 코로나19처럼 공기 감염이 가능한 호흡기 환자가 머무는 공간과 다른 환자의 공간이 함께 공조가 이뤄진다면 공기가 섞일 염려가 있다.
 
유희진 소장은 “대형병원의 경우 한 건물 내 여려 개의 병동이 있다 보니 공조 시스템 또한 한 건물에 여러 개가 돌아간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수익성 및 사업성을 위해 공조 등 설비공간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이었지만, 지금은 감염 방지를 위해 설비 공간을 늘리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이태상 상무는 “공조 시스템 구축 만큼 운용도 중요하다”며“병원 상당수가 공조시스템과 냉난방이 연결돼 있어 봄·가을에는 비용 절감을 위해 공조를 일시 중단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완전 흡기 및 배기 대신 기존 공기와 일부 섞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메르스 때 이 같은 관행으로 인해 병원 내 집단 감염이 퍼지기도 했었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메르스 이후 공조 시스템 운용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최근에는 구역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운용한다. 
 
이 상무는 “입원병동의 경우는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반면 외래동은 환자가 오가는 8시간만 돌아간다”며 “응급실이나 수술실의 경우 완전 배기와 흡기가 이뤄지도록 한다. 이런 것들이 시스템 운용의 묘”라고 말했다. 
 
병원 입장에서는 설비 공간 및 복도 공간 등 진료 외적인 공간 증가로 수익성에서 손해를 보게 됐지만 그만큼 의료진과 환자에게는 보다 쾌적한 진료환경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유희진 소장은 “최근에는 대형병원들을 설계하다보면 병원장들로부터 ‘병원이 2배 이상 커졌는데 왜 진료 공간은 똑같느냐’는 푸념을 꽤 자주 듣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병상 단위가 줄고 있다는 점도 병원 입장에서는 손해로 다가올 수 있다”며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대부분 중환자실을 1인실로 구성하려 한다. 이는 법적기준이 아님에도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차공간에도 영향, 중소병원은 버거운 현실
 
감염병은 동선 관리뿐만 아니라 병원 리모델링 자체에도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최근 몇몇 병원들의 외래동 분리가 감염병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견이다.
 
지난해 착공에 돌입한 고려대구로병원 외래관이 대표적인예다.
 
이태상 상무는 “외래병동을 분리하게 되면 중증환자가 머무는 입원병동과의 교류를 최소화할 수 있고, 그만큼 대규모 감염병으로 인한 집단 감염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수도권 특히 서울 내 종합병원의 경우 이미 용적률이 거의 한계점에 다다른 경우가 많아 병동 확장이 쉽지가 않다”고 덧붙였다.
 
일례로 서울대병원의 경우 대한외래 병동을 지하에 지었다. 
 
이는 사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우다. 용적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병원들의 고육지책이라는 분석이다.
 
이 상무는 “리모델링이나 증축을 하면 바뀐 관리기준을 적용받는 만큼 병원 시설 및 인력 유지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수가 현실화를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병원에는 진료에 쓰이는 직접적인 공간은 아니지만 설계 측면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공간이 한 곳 더 있다. 바로 주차공간이다.
 
유희진 소장은 “주차장의 경우 모든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뒤섞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 큰 문제”라며 “동선이 섞이면 자칫 방역의 큰 구멍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위해 입구를 차단하고 있지만 환자들의 불편이 늘어나고 있어 병원에서도 이에 대한 고민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진행 중인 원주세브란스병원 새병원 건립에도 이 같은 고민이 반영됐다. 주차장을 구획별로 나눠 동선을 짜고, 셔틀 엘리베이터를 도입하는 등 감염 위험을 최대한 차단시켰다.
 
건축계에서는 앞으로 병원들이 뉴 노멀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고 진단했다. 다만 이 같은 과정에서 중소 병·의원의 고민이 다소 깊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유 소장은 “코로나19가 끝나면 메르스 때 개정된 것보다도 새롭게 더 강화된 감염관리 기준이 나올 것이다. 그만큼 병원 운영계획은 더욱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통신 및 기계 설비에서 자동화를 통한 감염 위험 최소화 등 다양한 전략 구사가 필요하다. 병원이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태상 상무는 “중소병원들의 경우 공간적·금전적으로 여력이 부족하다”며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은 더 심화될 것이다. 중소병원들은 생존을 고민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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