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 족쇄 묶인 '지방(脂肪)', 환자 위해 규제 개선 절실'
송승용 교수(세브란스병원 성형외과)
2021.09.23 05:26 댓글쓰기
[특별기고] 성형외과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대학병원 강사로 근무하면서 기초 실험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모교 스승님이 지방줄기세포 연구 동참을 제안하신 덕이다.

전공의 수련 과정에서는 기초실험에 참여할 기회가 많지 않은데 강사는 임상은 기본이고, 기초 실험도 본인 의지만 있다면 참여할  기회는 많았다.

원래 기초실험에 궁금증이 있었으나 의대 시절 배운 줄기세포에 대한 지식 외에 전혀 아는 바가 없던 필자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지방줄기세포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그 해 프랑스에서 열린 국제지방줄기세포학회 (IFATS, International Federation of Adipose Therapeutics and Sciences)에 참여해 연구한 내용을 발표할 기회를 얻었다.

이 학회에서 인생의 전기를 맞았다. 다른 연자 발표를 들어보니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지방줄기세포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었고, 일부는 실제 환자에 이용돼 기존의 상식을 깨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임상 의사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기초 실험을 하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환자에게 적용해 의학의 획기적 발전을 이루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몇 년 후 교원으로 발령 후 실험을 진행하면서 지방세포 자체에도 관심을 가졌다. 

지방을 그대로 이용하려면 수술을 해야 하고, 환자에게 고통이 따르고 번거롭고 대량으로 얻기도 힘들어 화학적 처리를 통해 탈세포화하면 보다 쉽게 환자들이 이용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가 생겼다. 이미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진 다른 성형외과 선생님도 계셨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방 재활용이 법적으로 불가능"

그런데 뜻밖의 벽(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지방은 폐기물로 분류돼 있어 인체에 주입하는 등 재활용이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바뀌어야 할 제도라 생각했지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다소 막막했고, 내 아이디어가 정말 유용한 것인지에 대해 추가적인 실험도 필요했다.

또 다른 연구자들도 탈세포화된 지방을 이용하려는 시도가 있었기에 제도가 바뀌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후 2017년 미국 학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이 학회는 필자의 원래 전공 분야인 유방수술 관련 학회였다.

그런데 이 학회에 지방이식으로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가 연자로 초청돼 흥미롭게 강의를 들었다. 강의 말미에 그가 자신의 최신 임상 경험을 소개하는데 바로 내가 생각했던 탈세포화된 지방을 사람에게 주입한 사례였다.

미국에서는 이미 이 재료를 이용한 동물실험 등을 충분히 시행한 후 기업에서 상품화시킨 상태였다. 그 당시 그 의사조차 1~2사례 밖에 시도하지 않았다고 했고, 효과가 매우 좋았다는 얘기를 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FDA에서 승인을 해 줄 정도면 탈세포화된 지방의 안전성은 어느 정도 담보됐다고 생각할 수 있었고, 법적 규제만 풀린다면 아직 우리나라에도 제품 생산 및 시장 진입 기회가 남아 있다고 판단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일단 정부에 민원을 넣어 보기로 했다. 지방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 미국에서는 어떤 단계인지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규제를 풀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동물실험 통해 안전성과 효과 확인됐지만 제도적 뒷받침 과정 만만치 않아"

아마 1~2주 뒤에 답변을 받았던 것 같은데, 뜻밖으로 최종 답변 부서는 환경부였다. 내가 알고 있던 대로, 법적으로 지방은 폐기물로 지정돼 있어 가공 후 다시 사람에게 주입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내용이었다.

법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담당 공무원과 본인 스케줄이 맞지 않고 일도 점점 더 바빠지면서 이 문제는 다시 뒷전으로 밀리게 됐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정부에서도 대표적 규제 사례로 지속적으로 인지돼 여러 국회의원들에 의해 법개정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최근 이학영, 강훈식, 안호영, 홍석준 국회의원, 식약처, 복지부, 환경부 핵심 실무자들과 정책토론회를 가질 수 있었다.

필자는 이 토론회에 참석해 지방 규제 철폐의 필요성과 지방의 산업적 유용성에 대해 직접 발표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오랜 바람이 현실로 한발짝 다가 간 느낌이 들었다.
 
이제 정부, 국회에서 이 법의 부당성과 법개정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된 듯하다. 하지만 규제를 풀고, 가공된 지방이 인체에 안전하게 사용되려면 많은 사항들을 고려해야 한다.

"피부조직 상용화 10년 경과, 산업적 가치 높은 지방도 차세대 먹거리로 개발해서 나가야"

다행인 것은 이미 동일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탈세포화된 피부 조직이 이미 상용화돼 안전하게 10년 이상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생체재료는 화상 등 외상 치료나 유방 재건에 안전하게 이용되고 있으며 표준 치료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탈세포화된 지방도 유사한 제조과정으로 만들어지고, 용도상으로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어 제도적으로는 그 틀을 따르면 충분할 것으로 생각된다.

안그래도 늦어진 제도 개선이 이러한 절차 및 행정적인 문제로 더 이상 늦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이러한 점들을 정부나 국회 관계자 분들이 참고한다면 보다 빠른 규제 철폐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탈세포화된 지방은 창상 치유, 지방위축증, 조직 공학에서 세포 재생의 틀로 이용할 수 있음이 이미 확인됐고, 지방재생 능력이 탁월해 연조직 재건에 매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좋은 재료다.

지방을 연구하는 연구자들 사이에는 지방이 산업적 가치가 높고 색깔이 밝은 노란색이어서 ‘지방은 21세기 금이다’라는 얘기를 우스갯 소리처럼 하기도 한다.

하루 빨리 법이 통과돼 오랜 숙원이 해결되고, 우리나라의 차세대 먹거리인 바이오 분야에서 유망한 아이템을 국내 기업들이 선점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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