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지난 2014년 3월 10일, 대한의사협회 소속 회원들은 하루 집단휴진을 강행했다. 4만8861명으로 5만명에 가까운 회원들이 참여한 투표에서 전체 4분의 3이 넘는 76.69%가 ‘핸드폰 진료’를 반대하기 위한 총파업에 찬성한 데 따른 것이다.
이후 3월 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간 의‧정 협상이 진행됐고, 17일 발표된 협상 내용은 다시 회원투표에 부쳐졌다. 그 결과, 투표에 참여한 4만1124명 중 2만5628명(62.16%)이 의‧정 협의 결과 수용에 찬성했다. 이후 24일 예정됐던 2차 파업계획은 유보가 결정됐다.
‘핸드폰 진료’와 ‘의료민영화’가 초래한 의사 집단투쟁
2014년 집단 휴진의 핵심 쟁점은 앞서 언급한 핸드폰 진료였다. 당시 정부는 대통령이 핸드폰 진료에 ‘꽂혔다’(당시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직접 언급했던 표현이다)는 이유로 핸드폰 진료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투쟁의 또다른 의제는 ‘의료민영화(서비스발전기본법) 반대’였다. 당시 의협의 반대 취지를 간단히 설명하면, “저수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편법을 양성화하지 말라”는 요구였다.
특히 원격의료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핸드폰 진료는 정부의 ‘선(先)입법 후(後)시범사업’ 정책과 의사협회의 ‘선시범사업 후입법’ 주장이 서로 부딪혔다. 의사들은 국민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의료정책을 청와대의 주요 관심사라는 이유로 시범사업 없이 밀어붙이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렇게 투쟁은 시작됐다.
난관은 적지 않았다. 대다수 시도의사회장은 파업투쟁에 반대했다. 대의원 의장은 파업 3일 전 기자회견을 열어 “파업은 100% 실패할 것”이라며 파업계획을 취소할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총파업이라 할 수 있는 집단휴진은 많은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이뤄졌다.
투쟁의 결과는 극적이었다. 투쟁 직후 이어진 의‧정 협의에서 정부는 대한의사협회가 요구한 40여개 항목에 대해 일일이 마감 기한까지 명시해가면서 합의서를 작성했다. 정부로서는 체면을 크게 구겼다고 볼 수 있다. 단 하루 투쟁의 결과는 정부의 핸드폰 진료 추진 중단으로 이어졌다. 관련 법안인 서비스개발기본법 제정도 멈췄다. 의사들의 투쟁은 성공한 듯 보였다.
의료계 투쟁 '절반의 성공', 그러나 내부 갈등으로 '빛 바랜' 결과
그러나 투쟁은 결국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투쟁 직후 대의원들은 회원총회를 열어 대의원들을 해산했다. 당시 의협 회장이었던 필자가 정관에 따라 직접선거로 다시 대의원을 구성하겠다고 하자 대의원들은 부랴부랴 임시총회를 열어 필자를 탄핵했다.
이렇게 의협 집행부가 사라지자, 정부는 의‧정 합의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정부가 도장을 찍은 ‘각서’가 휴지로 만들었을 때, 정작 의협은 내쫓은 회장 빈자리를 잡기 위한 선거에 몰두하고 있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정작 보지 못한 근시안적 행태였다.
이후 공정거래위원회는 의협에 공정거래법 위반을 적용해 벌금형을 선고했고, 그와 별도로 당시 투쟁을 주도한 필자와 총무이사, 그리고 의협을 검찰에 형사 고발했다. 당시 검찰은 필자에게 징역 1년을, 방상혁 前 총무이사에게는 벌금 3000만원의 벌금형을 구형했다.
형사사건의 1심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무려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6년이 지난 뒤 내려진 1심 판결 결과는 ‘무죄’였다. 그리고 검찰 항소로 이뤄진 최근 2심 판결에서도 결과는 ‘무죄’로 내려졌다. 사건 발생 후 7년 만의 일이다.
재판부에서는 2014년 총파업이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이 되는지를 법리적으로 따졌다. 이후 1‧2심 판결문의 주요 내용을 6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집단휴업 목적은 정부 정책을 반대하기 위한 것이지 의료서비스 가격을 올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일부 의료기관이 휴업에 참여했다고 해도 환자들은 파업 전과 같은 비용으로 미참여 의료기관에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고, 파업으로 환자의 진료시간이 단축됐다고 보기 어렵다.”
“의사들 휴업은 헌법상 결사 자유를 향유하는 의협이 구성사업자들을 대표해 정부 의료정책인 원격의료나 영리병원 제도 도입과 관련해서 정부에 의견을 전달하고 교섭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다. 의사회원들이 집단으로 진료 제공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정부 정책에 반대하기 위한 목적에서 진행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휴업이 단 하루 동안만 진행됐고, 실제 참여율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또 응급실 및 중환자실 등 필수의료기관은 휴업에서 제외됐다. 휴업 기간, 참여율, 구체적인 범위와 내용 등에 고려하면 의료서비스 시장에서 경쟁 제한성이 인정될 정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검찰이 상고 이유로 들고 있는 2000년 의료대란 사건은 집단휴업 결의 목적 및 참여율 등에서 이 사건과는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다르고, 처분 근거 법령도 다르다.”
“당시 의협은 회원들의 휴업 참여에 관해 자율 결정토록 했고, 참여를 강요하거나 불참에 따른 불이익 및 징계를 사전에 알린 바 없었으며 사후에도 휴업 불참에 따른 불이익이나 징계를 가했다고 보이지 않는다. 또 휴업 찬성률보다 참여율이 더 낮다는 점 등을 종합하면, 원고가 구성사업자들의 투표를 거쳐 집단휴업을 결의하기는 했지만, 그 구체적인 실행은 구성사업자인 의사들의 자율적 판단에 맡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검찰이 상고 강행을 결정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만약 검찰이 상고한다면 이 사건은 7년 전 사건이지만, 아직 종료되지 않은 사건이 된다. 다만 현재까지 상황은 이렇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내린 과징금은 대법원에서 최종 무효판결이 내려졌다. 또 공정거래위원회가 의사협회와 당시 협회장인 필자, 그리고 당시 총무이사를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한 것은 2심까지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검찰 상고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다.
의사에게도 헌법에서 보장하는 ‘결사의 자유’ 인정
그래도 이번 재판부의 2심 판결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첫째로 의사에게도 일반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헌법에서 보장한 ‘결사(結社)의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점을 최초로 인정한 판결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정부 정책에 대한 항거할 수단이 전혀 없었던 의사들에게 주어진 소중한 권리다.
둘째로 이번 판결이 의사들의 적법한 투쟁방법에 대한 지침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의지만 있다면 의협은 회원들의 힘을 모아 합법적인 방법으로 정부를 압박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의지’다. 아무리 투쟁 수단이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 해결을 위한 투쟁 의지가 없다면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환영할 수 있는 이번 판결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필자는 아직도 검사가 덤덤히 내뱉었던 “피고를 징역 1년에 처해주실 것을 요청합니다”라는 말이 귓가에 생생하다. 당시 구형은 죄(罪)의 유무를 떠나 ‘내가 대한민국 검사에게 징역 1년을 구형받을 만한 범죄를 저지른 것인가’하는 괴로운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과 2심 판결로 인해 필자는 앞으로 괴로운 생각으로 인한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게 되었다. 당연한 시민 권리인데도 의사라는 이유로 누리지 못했던 ‘결사의 자유’. 2014년 대정부 투쟁을 이끌었고 그 이유로 대의원으로부터 탄핵당한 필자가 의협에 남긴 마지막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