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민식 기자/
수첩] 예로부터 역병이 창궐하면 '나라님 부덕의 소치'라는 말이 회자됐다. 현대 사회에선 더 이상 통용되지 않지만 이 말을 조금 바꿔 역병의 확산은 '나라님 무능의 탓'이라 한다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특히 그 나라님이 미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라면 더욱 그렇다. 지구 전역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휘청였던 2020년, 전세계인들에게 불행하게도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미국의 통치권자는 도널드 트럼프였다.
마스크 착용 거부는 귀여운 수준이었다. 트럼프는 한 때 코로나19 치료제로 유망했던 클로로퀸을 ‘신이 내린 선물’이라며 코로나19 예방 목적으로 복용하고 있다고 밝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세계적 팬데믹 극복을 위해 협력해야 할 WHO의 거브러여수스 총장과는 날선 공방을 주고받더니 끝내 지난 7월 WHO 탈퇴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대선을 앞두고는 본인이 코로나19에 감염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그 사이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000만 명을 넘어서며 불명예스러운 전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도 약 24만명에 달한다. 근래에는 하루 확진자 수가 10만명을 넘어 15만명에 근접한 것으로 전해졌다. 1일 사망자도 2000명을 넘겼을 정도로 심각하다.
문제는 미국의 문제는 결코 미국의 국내 사안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계 최강국의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미국의 코로나19 상황이 안정화되지 않아 다른 나라들과 인적, 물적 교류 등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할 경우 인류의 코로나19 극복도 요원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 조 바이든이 미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영화 기생충의 대사를 차용하자면 ‘참으로 시의적절’한 일이다.
실제로 조 바이든 당선인은 대선 승리가 확정됨과 동시에 최우선 과제로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에 나서며 트럼프 대통령과 대비되는 행보를 보였다.
9일(현지시간) 열린 대선승리 확정 후 첫 기자회견에서 바이든은 미 국민들에게 마스크를 착용해 줄 것을 간청했다.
기자회견에 앞서서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TFT 형태의 자문단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여기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대응을 비판했다 한직으로 쫓겨나 사직했던 인사도 포함됐다.
국제사회도 미국을 이끌게 될 새로운 수장의 탄생을 반겼다.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WHO 거브러여수스 총장은 “국제사회가 공동의 목적을 되찾아야 한다”며 “이런 의미에서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에게 축하를 보낸다. 긴밀한 협력을 기대한다”고 반색했다.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미국인들은 늘 인류의 적과 맞서 싸워 지구를 지켜내는 영웅으로 그려지곤 한다.
물론 코로나19라는 고약한 적은 미국 대통령 혼자 힘만으론 어림없는 상대다. 하지만 적어도 국제사회와 연대할 수 있는 미국 대통령이 등극했다는 점에서 전세계인들은 조금은 위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어느 때보다도 엄중한 시기에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된 조 바이든 당선인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