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민식 기자/
수첩] 영국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지난해 연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코로나19에 대한 인류의 반격이 막을 올린 것이다.
영국은 대대적인 백신 접종을 통해 내년 4월 무렵에는 상황이 정상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에 뒤를 이어 미국과 일본도 이달 내에 접종을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신중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모더나, 얀센 등의 백신을 도입하기로 했지만, 가장 먼저 계약이 성사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도 도입 일정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정부는 백신 도입 후에도 곧바로 접종을 시작하는 대신 국내 코로나19 상황과 외국의 접종 상황을 고려해 접종시기를 조율할 계획이어서 실제 접종은 더욱 늦어질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신중한 정부의 행보에 대해 늑장 대응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유례없는 속도로 개발한 백신이기에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려는 정부의 스탠스가 틀렸다고 볼 수만은 없다.
지금 인류의 ‘구세주’처럼 각광받고 있는 백신들이 몇 달 뒤에는 효과가 낮은 ‘물백신’으로 판명될 수도, 또는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팬데믹 초기에 코로나19 치료제로 주목받다가 소리 소문없이 사라진 약물들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고로 정부가 백신 도입과 접종에 대해 신중했던 것 자체를 무턱대고 비난할 수는 없다. 문제는 장기전을 위한 준비 태세를 갖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애초 백신 도입에 신중을 기하기로 결정했었다면 장기전을 각오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백신 도입‧접종 시작까지 버틸 수 있도록 방역과 치료 체계를 보완하는 데 소홀했다. 치명적인 패착이다.
정부가 K 방역 성공에 취해 방심하고 있는 동안 코로나19는 확산을 위한 최적의 조건이 갖춰질 겨울을 기다리고 있었다.
반면 우리는 겨울이 오기까지의 소중한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의 국내 확산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중환자들을 위한 병상‧인력‧장비 확보가 시급하다고 강조해왔다.
실제로 한 유관학회 임원은 "선제적인 병상 확보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나왔던 얘기인데도 정부가 제대로 대응을 하지 않았다"며 "그 외에 병상과 함께 필요한 인력과 장비 역시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결국 겨울이 다시 찾아온 지금, 하루에 700명대에 육박한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며 병상과 인력 부족은 또 다시 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차 대유행 당시, 환자들이 병상 부족으로 적시에 치료를 받지 못해 유명을 달리했던 비극적인 사태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시스템 속에서 의료진 역시 혹사당할 수밖에 없다.
거의 1년을 코로나19와 시름하며 탈진 상태에 내몰린 의료진들은 기약없는 백신 접종 시작까지 또 다시 아비규환 현장에서 분투해야 한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의사국시 문제까지 생각해보면 더 더욱 아찔해진다.
신중한 백신 도입과 접종을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백신 접종을 늦출 생각이었다면 환자가 적시에 치료받을 수 있고 의료진이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에 집중했어야 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는다.
정부가 그렇게 하지 못했던 까닭에 환자들은 또 다시 병상을 구하지 못해 위험에 내몰리고, 의료진들은 백신을 대신해 그들의 노동력을 갈아 넣고 있다. 답답한 상황이 국민과 환자들 생명에 실제적인 위험한 순간으로 연계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