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40개 대학의 의대 증원 신청 규모가 총 3401명으로 집계되면서 의대 교수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다.
의대 학장을 비롯한 교수들은 향후 교육 여건을 우려하며 대규모 증원을 거듭 반대했으나, 대학본부의 독단적 결정이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이에 의대 교수들 사이에는 사직을 고려하는 분위기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5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을 통해 "40개 대학의 의대 증원 신청 규모는 3401명"이라고 발표했다.
권역별로는 서울 소재 8개 대학이 365명, 경기·인천 소재 5개 대학 465명 등 수도권에서만 총 930명의 증원 신청이 있었다. 비수도권 27개 대학은 2471명 증원을 신청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복지부가 실시한 의대 증원 수요조사 결과의 최소치인 2151명보다도 1250명 많은 수치다.
박민수 차관은 5일 "대학의 신청 결과는 평가인증기준 준수 등 의료 교육 질 확보를 전제로, 2025년에 당장 늘릴 수 있는 규모가 2000명을 월등히 상회한다는 것을 재확인했다"라고 말했다.
"정부‧총장, 의대 교육 단 한 번이라도 들어봤다면 이런 결정 못해"
김창수 전국의과대학교수협회 비상대책위원장(연세의대 예방의학교실)은 5일 의대 정원 신청 결과에 대해 "의미없는 숫자"라며 "의대 교육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총장이 독단적으로 정한 것에 의미를 부여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이어 "비전문가 의견을 들어서 정책을 결정하는 일이 선진국인 대한민국에서 진행되면 안 되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의대 교육은 과거와 같이 강의실 위주 수업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80~90년대 초에는 강의실 위주 수업을 했다. 하지만 의대가 6년제가 되면서 학생 개개인 실습과 환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블록강의 형태로 다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나 총장들이 이런 교육 흐름을 전혀 모르고 교수 1명이 마이크 하나 잡고 강의하는 게 의대 교육인 줄 착각하고 있다. 의대 교육을 한 번이라도 들어보면 어떤 상황인지 알 텐데 그럴 생각도 없을 것 같긴 하다"고 꼬집었다.
교수들 사직 염두 "총장 독단 결정,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의대 교수들은 이날 정부 발표 결과를 예상했음에도 상당한 충격을 받은 분위기다.
김 위원장은 "비전문가인 총장이 독단적으로 의대와 병원 운영에 대해 결정하는 것에 교수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근래들어 교수들에게서 사직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이런 의대 운영을 지켜보기 싫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4일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A교수는 자신의 SNS에 "전공의 사직을 막겠다고 면허정지 처분을 하는 보건복지부 행태나 교육자 양심은 눈곱만치도 없는 총장들의 생각 없는 의대 정원 숫자를 써내는 행태에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며 사직을 표명했다.
김 위원장은 "교수들이 지금까지는 전공의와 정부를 중재하려고 노력했다. 직접적인 의견 표명은 안 하고 진료만 열심히 하고 있었다"면서도 "그런 상황에서 이런 조사를 하고 그것을 총장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니 교수들이 소위 '뚜껑이 열렸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2020년 의료계 총파업이 전공의와 개원의 위주였다면, 이번에는 교수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법적인 부분이 걸려있는 것들이 많아 아예 관두는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만약 현실화되면 병원에 전공의와 전임의, 교수까지 사라지는 여파가 향후 3~4년은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자들 목소리 외면하고 정부 지침 따른 총장에 연민의 정"
의대 학장들도 대학 본부의 독단적 결정에 강하게 분노하고 있다.
류세민 강원대 의대 학장과 유윤종 의학과장은 4일 대학의 일방적 의대 정원 신청에 반대하며 삭발식을 가졌다.
전날 권태환 경북대 의대 학장은 "정원을 2~3배가량 늘리겠다"는 총장에 항의 서한을 보내 '동결 혹은 10% 증원 제안을 거부한다면 학장을 사퇴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신찬수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사장(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은 5일 데일리메디와 통화에서 "의대 정원 신청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했다"고 담담해하며 "우리가 얘기한 350명하고 한 10배쯤 차이 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KAMC는 지난달 26일 교육부와 각 대학 총장에 의대 학생정원 신청 기한을 미뤄달라고 요청했으나, 정부는 기존 일정을 고수했다.
신 이사장은 "우리 의견을 수용하지 않은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각 대학에서 의대생이 많게는 500~600명이 휴학계를 내고 나가 있는 상황에서 제자들의 간절한 호소를 외면하고 정부 지침에 따를 수밖에 없는 총장들에 연민의 정(情)을 느낀다"고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