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으로 암환자 도울 수 있을까' 알라부 탄생 배경
김희준 중앙대병원 교수
2016.07.21 12:04 댓글쓰기
'오래 사는 암환자'

모순된 말 같지만 사실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암 생존율은 69.4%에 달한다. 숫자로는 140만명 가까이 된다. 전이암인데도 불구하고 높은 생존율을 보이는 경우도 등장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암환자들의 관심은 '고통스러운 항암치료 과정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로 옮겨간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복용하는 약제에 비해 부작용을 관리하는 시스템은 10여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현장의 평가다.
 
중앙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김희준 교수의 문제 의식도 여기서 출발했다. 특히 오랜기간을 견뎌내야 하는 유방암 환자들을 돕고 싶었다. 항암치료 순응을 돕는 모바일 게임 ‘알라부(I Love Breast)’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실험을 통해 실제 효과가 입증된 ‘알라부’는 이제 상용화를 위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데일리메디가 21일 김희준 교수를 만나 지금까지의 성과와 앞으로의 전망을 들어봤다.
 
"우울증 없애고 치료 중심 잡는데 도움"

 
암 치료에 필요한 게임을 개발하는 작업은 정신건강의학과 한덕현 교수의 착안으로 시작됐다. 이후 김 교수와의 협업을 통해 유방암 환자를 돕는 방향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그동안 많은 유방암 환자를 지켜본 김 교수는 그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유방암 환자의 경우 중앙 생존값(평균 생존기간)이 가장 높다. 전이가 돼도 3년 가까이 생존한다. 게다가 부작용에도 민감하다”며 “유방암에 집중된 컨텐츠를 만들어서 도움을 줄 수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제작하게 됐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게임은 환자가 치료과정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도록 만든다.
 
우선 사용자는 게임 내에서 자신과 똑같은 데이터를 가진 아바타를 부여받는다. 그리고 아바타가 자신과 같은 항암제를 복용하고 동일한 진척 과정을 거치도록 플레이해야 한다.
 
사용자가 처방받은 항암제를 복용할 시기가 되면 게임 내에서 알림 메시지가 떠서 환자의 아바타도 같은 명칭의 약물을 복용해야 하는 식이다.
 
지시대로 게임을 이끌어 나가면, 이에 따라 캐릭터의 외형도 건강하게 바뀐다. 환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치료 과정을 잘 수행하고 있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셈이다.
 
김희준 교수는 “게임을 한 경우 치료 순응도가 크게 올라간다. 자연히 약물 투약력도 상승하고 항암치료에도 잘 견디게 된다”며 “환자 본인이 느끼는 삶의 질도 훨씬 나아졌다”고 게임의 효과를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 “진료실에서 주치의에게 들었던 정보를 게임을 통해 한 번 더 볼 수 있으니까 환자들이 친숙함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주입하지 않은 자연스런 학습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환자 스스로가 이처럼 치료 방향을 잘 파악했을 때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닥터쇼핑’이나 검증되지 않은 완화의료에 기대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 사례도 막을 수 있다.
 
교수는 “병원에서 항암치료 받고 3~4일 입원해도 10만원이 안 나오는데 입증되지 않은 치료에 몇 백만원 가까이 쓰는 환자들이 많다”며 “불안한 마음이 큰 환자들이 치료 과정을 좀더 자세히 파악하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씨엘 게임즈(CLGamez)와 공동으로 제작돼 2014년 완성된 ‘알라부’는 최근 실험을 통해 이런 효과를 입증 받았다.
 
김 교수는 해당 연구를 정리한 '항암치료 중인 유방암 환자의 치료를 도와주는 모바일 게임'이란 논문으로 호주에서 열린 2016 세계 암 보존치료학회(MASCC, Multinational Association of Supportive Care in Cancer)에서 젊은 의학자상(Young investigator award)을 수상했다.
 
교수는 “그동안 생각해서 정리했던 논문이 좋은 결과를 얻었다”며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개념의 앱은 있으나 구체적인 시도가 아직 적어 보였다”고 밝혔다.
 
또 “정신과나 심리학자들의 관심도 많았다”며 “항암 부작용에 따른 우울증이 이슈라 그런 것 같다”고 덧붙였다.
 
환자가 향후 치료 과정과 예측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울장애 등의 문제 해소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 서포트 통해 궁극적으로 상용화 추진"
 
앞으로 ‘알라부’가 나가고자 하는 길은 상용화다.
 
공적 지원을 통해 서버 운영비를 마련해서 유방암 환자들이 게임을 무료로 이용해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교수는 “예상 비용은 적지만 이를 사용자에게서 받기보다 환자를 후원하는 기관 등에서 서포트 차원으로 이뤄졌으면 한다”며 “학회 차원에서 의견 조율 중에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목표는 ‘알라부’의 골격을 바탕으로 다른 암 치료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게임을 제작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처음부터 여러 분야로 활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큰 틀을 작성했다”며 “다학제(多學際)적 연구를 통해 게임을 통한 항암 부작용 완화 노력이 활발해졌으면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금은 유방암에만 집중돼 있지만, 환자 데이터를 시각화해서 보여준다는 게임의 속성은 다른 암 치료에도 활용 가능하다. 게임이 개발돼 상용화가 이뤄진다면 항암 부작용으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는 환자들의 짐을 덜어줄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생각이다.
 
대장암, 위암 등 주요 질병은 물론이고 소아암에서도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연령이 어릴수록 게임과 같은 콘텐츠에 흥미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한 비영리 단체가 소아암 환자를 대상으로 개발한 ‘리미션(Re-Mission)’ 이라는 게임이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이는 사용자가 암세포를 파괴하는 형식의 슈팅게임인데, 아동의 시각에 초점을 맞춰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고 치료에 적응하는데 도움을 줬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많은 환자들이 이를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김 교수는 “현재 암환자 삶의 질을 전반적으로 높이는 다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 상용화에 적지않은 난관이 있지만 꿈은 크다”고 덧붙였다.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