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 발목 잡혀 '무허가 신세' 메르스 진단제품
고대 이남택 교수 '신종 유행병 창궐하면 속수무책'
2015.08.27 20:00 댓글쓰기

"근본적인 허가시스템 등 개선 시급"

 

메르스 종결 이후 정부와 의료계 주관 아래 후속대책에 대한 각종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근본적인 허가 시스템부터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만 체외진단제품법이 형식에 얽매여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7일 보건복지위원회 김춘진 위원장과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이 공동으로 ‘대유행병의 효율적 대응을 위한 제도 개선 토론회’를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개최했다.

 

김춘진 위원장은 “메르스 여파로 국내 실물 경기가 매우 침체됐고, 외국인 관광객까지 발길을 돌려 국가적 위기를 겪었다”며 “지구 온난화로 신종 유행병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응급대응방안이 하루 빨리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 이남택 교수는 ‘대유행병 관련 의약품·의료기기 허가, 국내외 법 제도의 비교분석 및 발전방안’이란 주제 발표에 나섰다.

 

그동안 의료기기 업계에서는 이번 메르스 사태 대응에 있어 허가 받은 진단제품이 현장에서 활용된 사례가 전무하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일부 외국계 기업에서 메르스 진단제품의 국내 유통을 검토했으나, 관련 규정 미비로 결국 포기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이남택 교수는 이와 같은 업계 실정을 정확히 분석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 2012년 중동에서 메르스 발생 이후 미국, 독일, 영국 등에서는 메르스 진단키트를 개발 보유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국내외 메르스 진단키트 중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제품은 단 1개도 없는 상황”이라며 “결국 상반기 메르스 진단에 활용된 코젠바이오텍, 바이오니아, 솔젠트 등 모두 무허가 제품이 긴급 사용될 수 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메르스 사태가 일파만파 퍼지면서 대한의사협회는 국내 제품 사용 권고에 나섰다. 이에 따라 질병관리본부는 ‘허가 외 사용’이라는 식약처 허가 범위를 초과한 명목으로 진단키트를 사용했다.

 

즉, 정부 스스로가 규정을 어기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체외진단제품이 지난 2013년부터 의약품에서 의료기기법으로 관리·전환됐기 때문이다.

 

이남택 교수는 “2009년 신종플루 당시에는 의약품과 진단시약을 별도로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속한 현장 투입이 가능했다”며 “의약품과 달리 의료기기법에는 긴급사용승인제도가 없다. 차후 신종 유행병을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의료기기는 최종 판매 허가를 득하기 위해서는 통상 2년 이상 소요된다. 식약처 승인, 신의료기술 검증, 심평원 수가 결정 등을 거치면서 업계 불만이 가중돼왔다.

 

외국의 경우 미국은 ‘긴급사용승인제도’(EUA)를, 유럽은 ‘조건부 판매허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09년 신종플루, 2014년 에볼라 발생 시 해당 제도는 감염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남택 교수는 “돌발 신종 감염병이 발생했을 시 식약처 승인 체외진단제품은 당연히 없을 수 밖에 없다”며 “향후 체외진단제품 관련 ▲한시적 임상시험계획 간소화 ▲긴급사용허가제도 제정 ▲신속허가제도(Fast Track)이 적극 시행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식약처 “진단키트 확보 효율성 제고 위해 관련 법 개정 추진”

 

식약처에서도 이와 같은 산학계 의견을 반영해 체외진단제품 관련 법 개정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신설된 식약처 체외진단기기과를 진두지휘하면서 국제적 추세에 발맞춘 제도 개선과 업계 의견 반영에 힘써온 오현주 과장이 패널토의에 참여했다.

 

오현주 과장은 “2014년 11월 약사법으로 관리되던 체외진단용 의약품을 의료기기로 일원화해 국제조화에 일치되는 허가 관리 체계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유행병 발생 초기대응에 있어 중요한 요소인 ‘신속한 확진검사’를 위한 공인된 검사키트를 어떻게 확보하는가 여부가 관건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오현주 과장은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선 순위를 명확하게 분석한 후 특정 제품의 한시적 허가를 해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한다. 단, 평상 시 제품 허가 기준은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환자 진단 및 치료에 필요한 의료기기를 신속하게 확보해 사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일부개정법률안이 추진 중이다. 앞으로 산학계 의견을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한 업계 관계자는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체외진단제품 독립 법안 신설이 급물살을 탈 것 같아 환영한다”며 “체외진단제품은 위험도가 매우 낮다. 법과 규제에 발목이 잡혀 상용화가 차일피일 미뤄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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