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발전 역행하는 외과·이비인후과 '포괄수가제'
동시 시행되는 추가수술 보장 안돼 환자 퇴원하고 재진료 의뢰 빈번
2014.01.05 20:02 댓글쓰기

[기획 3]산부인과, 안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포괄수가제 논란이 부각되지 않았던 외과·이비인후과에도 지난 7월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으로 포괄수가제가 확대 시행된 이후 신음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포괄수가제에서 환자가 만족할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중증환자와 예외사례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실과 더불어 의료진들은 최신 의료기술 활용에 대한 기회 감소로 의료기술 후퇴를 걱정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동안 전신마취를 하는 외과, 이비인후과 수술의 경우에는 가능하면 환자에게 필요한 수술을 한 번에 진행해 왔다.


각각의 수술을 위해 전신마취를 여러 번 시행하는 것은 신체에 무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괄수가제 안에서는 이 같은 동시 추가수술 및 진료가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서울 소재 A 대학병원 외과 교수는 “충수돌기질환으로 병원에 왔지만 우연히 물혹 등의 다른 질환이 발견되기도 한다. 기존에는 환자가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대에 누워있는 상태라면 물혹을 제거하는 수술도 함께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응급상황이 아닌 이상은 포괄수가제에 해당하는 질환만 수술한 뒤 환자에게 다시 병원에 와서 수술을 하자고 해야 한다”고 밝혔다.


환자 입장에서도 한 번의 전신마취 수술로 끝낼 수 있는 치료를 굳이 여러 번 시행하는 것은 신체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곤혹스러운 일이다.


그는 “어떤 환자가 수술이 끝난 후에 다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면 좋아 하겠냐”며 “그렇다고 수술이 의사 기술로만 가능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병원 손해를 감당하면서까지 동시수술을 해줄 수는 없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환자에게 퇴원 후 다시 병원을 방문할 것은 요구하는 사례는 이 뿐만이 아니다.


서울 소재 B 종합병원 외과의사는 "극단적인 경우 빈혈이 있는 치질수술 환자에게 내과로 입원해 빈혈치료를 받고 퇴원한 후, 다시 외과로 접수를 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치질환자 중에는 빈혈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빈혈 수치를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나 치질수술과 함께 수혈 등의 치료가 선행되더라도 병원에서는 혈액 원가조차 수가로 보장받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소재 C 대학병원 외과 교수 역시 “맹장수술로 입원한 환자가 최근 속이 계속 메스꺼웠다며 내시경을 해달라고 했지만, 포괄수가제 대상 환자였기 때문에 추가 의료행위를 해 줄 수 없었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맹장수술로 입원한 환자가 유방암 검진 등을 함께 요청해 입원해 있는 동안 진료를 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포괄수가제에서는 이 같은 추가 진료 및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같은 우려는 이비인인후과에서도 마찬가지다. 소아환자에게 많이 시행되는 편도 및 아데노이드수술은 질환 특성상 코 알레르기 및 중이염이 많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실제 그동안 이비인후과에서는 편도수술과 중이염 수술을 함께 시행하는 등 동시수술 사례가 많았다.

 

대한이비인후과학회에 따르면 편도선수술과 동시에 시행되는 수술 빈도는 중이내튜브유치술, 하비갑개점막하 절제술, 하비갑개 절제술, 외향비갑개골절술 등의 순이다.

 

그러나 해당 수술은 외과적 우선순위에 따라 편도 및 아데노이드수술보다 하위로 분류되기 때문에 별도의 수가를 산정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최신 의료기술 이용 감소 이어질 가능성 많아”


더욱 심각한 문제는 포괄수가제 이면에 숨어있는 최신 의료기술에 대한 위협이다. 현재 임상에서 발견되고 있는 문제점은 병원과 환자들이 피부로 느끼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포괄수가제가 시행되면서 서서히 임상에서 감소하는 신의료기술에 대한 결과는 시간이 지나면 돌이키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먼저 포괄수가제 도입 이전 신의료기술로 주목 받았던 의료장비는 현재 가격만 비싼 골칫덩이가 됐다.


이비인후과에서는 ‘코블레이터(coblator)’가 대표적이다. 코블레이터는 일반 메스로 절제한 경우보다 통증이나 출혈이 적어 빠른 회복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수술기계다.


당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포괄수가제 적용으로 보험 혜택이 커지는 예시로 '코블레이터 본인부담금 비용 감소'를 들었다. 행위별수가제에서는 코블레이터가 비급여에 해당돼 약 20~30만원 비용 전부를 환자가 부담했다면, 포괄수가제에서는 환자부담이 20%로 비용이 16~24만원 가량 싸진다. 


문제는 환자의 비용부담은 예측대로 줄었지만, 코블레이터로 수술을 하겠다는 병원도 함께 감소했다는 것이다. 비용측면에서 일반 메스를 통한 수술보다 고가인 코블레이터를 따로 인정해주지 않는 포괄수가에서 병원이 고가의 치료재료를 선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 소재 D 대학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이외에도 좋은 수술재료들이 많다. 지혈재료 중에는 지혈을 하며 인체에서 녹는 솜이 있지만 비용은 당연히 바세린을 바른 거즈보다 비싸다"며 "고가 재료에 대한 수가 인정이 안 되는 상황에서 병원은 저렴한 재료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수술방식은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 수술시간을 단축시키고, 출혈을 최소화하기 위해 더 좋은 기계를 들여오고, 기술을 연마해왔다. 그러나 포괄수가제에서는 병원이 비싼 기계를 가져오고, 소모품을 바꿀 동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외과 역시 최신 의료용 재료에 대한 수가 보장이 포괄수가제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포괄수가제 1차 시범사업을 실시하던 때 배제돼 있었던 복강경 술기는 25년만에 포괄수가제에 반영됐지만, 그동안 개발된 ‘초음파절삭기’, ‘자동장봉합기’ 등에 대한 내용은 빠져있기 때문이다.


문제점 개선 보다 시행이 먼저… ‘선(先) 시행 후 보완’

 

이 같은 문제 제기에 심평원 역시 포괄수가제 대상 질병군을 환자의 연령, 중증도 등을 고려해 83개로 세분화하는 한편 지난 9월에는 신의료기술 등을 비급여로 적용할 수 있는 기관을 지정하고 운영하겠다는 규정을 내놨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문제가 있어도 제도는 우선 시행하고, 보완은 나중에 하겠다는 정책’이라는 볼멘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서울소재 E 대학병원 외과 교수는 “병원에서 말하는 복잡한 사례들은 일단 건너뛰고, 제도 먼저 시행한 다음 조정·개선하겠다니 의사들이 답답한 것”이라며 “병원들한테 지금은 어쩔 수 없으니 손해를 보고, 자료가 만들어지면 이후부터는 보완해주겠다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포괄수가제 장점 중 하나는 행정편리성으로 일일이 행위를 기록할 필요가 없음에도, 현재는 정부가 모니터링을 하고 개선점을 만들기 위해 의사들에게 각각의 행위를 의무적으로 기록하게 하고 있다”며 “국가가 자료가 필요하면 연구비를 주고 용역을 줘야지 강제적으로 의사들에게 제도를 밀어붙이는 것이 말이 되냐”고 말했다. 


또한 포괄수가제가 ‘저수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손대지 않고 제도만 바꾸는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쓴 소리도 나온다.
D 대학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지금까지 국내 의료는 일방적인 의사들의 희생으로 저수가를 유지해왔다. 정부가 ‘의료’라는 특수성을 내세워 수가를 올려달라는 의사들을 국민과 대립관계에 있는 것처럼 그렸기 때문”이라며 “포괄수가제에서도 병원 이익을 따지면 의사는 나쁜 사람이 되는데 이게 과연 옳은 정책이냐”고 토로했다. 


E 대학병원 외과 교수 역시 “과잉 의료행위를 줄여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낮추겠다는 것이 포괄수가제 취지”라며 “현재 병원의 선택진료, 비급여 등은 저수가로는 원가 보전이 안 되기 때문에 등장한 것이다. 포괄수가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를 바라보고 있지 못한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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