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개원가 포괄수가제 직격탄 '산부인과'
시행 6개월 넘으면서 곳곳 불만 표출…'분만 포기 병·의원 더 늘어' 경고
2014.01.03 18:15 댓글쓰기

[기획 2]7개 질병에 대한 포괄수가제 확대 시행으로 복강경 수술 등 여성 질환 분야에서 직격탄을 맞은 곳이 바로 산부인과다. 분만장을 폐쇄하는 병·의원이 늘고, 산부인과 의사의 수도 나날이 감소하면서 분만 인프라가 취약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미 원죄적 책임을 강요하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제도’ 등 분만 환경을 악화시키는 역주행 정책에 이골이 난 산부인과 의사들. 그들의 아우성이 더욱 처절해 보이는 대목이다.

 

“부인과 수술 포기 및 고위험 환자 전원 늘어”


지난 7월부터 대학병원도 암을 제외한 자궁수술은 모두 포괄수가제가 적용되고 있는 가운데 일선 산부인과 의사들의 목소리가 한 데 모아진다. “포괄수가제는 정책적 안일함에 ‘정점’을 찍은 제도다.”


특히 “포괄수가제 전면시행 이후, 수술 포기와 고위험환자 전원조치 등 이른바 ‘부작용 사례’ 들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는 결코 흘려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들의 경고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박노준 회장은 “고위험, 고난이도 수술이 많은 산부인과 수술의 특성상 의사 행위량에 상관없이 수술 장기에 따라 수가를 매기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박 회장은 “포괄수가제 전면시행 이후 의료계의 우려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면서 “수가가 비현실적 이다보니 부인과 수술을 포기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으며 고위험 환자를 기피하고 전원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고 현실을 진단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포괄수가제를 시행하는 다른 진료과는 맹장, 탈장, 백내장 등 질병에 따른 수술별로 분류가 돼 있지만 산부인과만 ‘자궁 및 자궁부속기’라는 하나의 장기로 묶여있어 이 같은 부작용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부인과의사회 이기철 보험부회장도 “해마다 임신중독증, 전치태반, 쌍태아임신 등 고위험 임산부 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현 수가대로는 최상의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이기철 보험부회장은 “무엇보다 의료사고 부담 때문에 분만과 수술을 포기하는 의사들이 늘고 있다”면서 “복잡하고 합병증의 우려가 있는 환자들을 2차, 혹은 3차 병원으로 전원 조치하는 경향은 앞으로 더 짙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부인과의사회는 내년 초 다시 협의체를 구성, 산부인과 의료환경 개선을 위한 논의를 재개할 계획이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며 한숨을 내쉰다.


포괄수가제 전면시행 이후 오히려 의사의 자율권은 침해되고, 불필요한 업무량이 늘어나 의료기관들 부담만 가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은 더해진다.

 

대학병원도 영향… “분만 가로막는 위기도 외면”


산부인과의 경우, 포괄수가제 시행 후폭풍이 비단 개원의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김암 교수는 “분만을 가로막는 위기는 외면한 채 환자 상태와는 무관하게 일률적 진료를 강요하는 것이 포괄수가제”라고 분개했다.


김 교수는 이어 “현행의 포괄수가제는 중증도에 대한 분류가 심각하게 부실한 상태여서 상급종합병원까지 당연 적용된 이상, 위험성이 높은 환자들에 대한 진료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며 “무리한 발상과 성급한 정책 추진은 고위험 환자군 진료를 더욱 꺼리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계명대 동산병원 산부인과 조치흠 교수도 “포괄수가제는 처음부터 산부인과 영역에는 적용할 수 없는 제도”라며 개선을 촉구했다.


조치흠 교수는 “결국 피해는 애꿎은 환자한테 돌아갈 수밖에 없다”면서 “앞으로 저출산, 고위험 임신이 더 많아지고 모성사망률 역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무엇이 먼저인지 신중한 판단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부가 몇몇 특정 질환에 대해 포괄수가제를 도입한 배경은 과잉진료와 재원일수 증가를 억제하기 위한 것이지만 합병증과 동반질환이 많은 산부인과 질환의 특성상 앞으로 부작용은 더 많이 발생할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이어 그는 “하루 속히 정부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최선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젊은 의사들이 기꺼이 자신의 전공으로 산부인과를 선택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분만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꿈과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방법과 미래에 대한 경제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공의 지원율 9년연속 미달


포괄수가제 확대 시행에 따라 피부에 와닿는 문제점으로 산부인과 의사들은 ▲제왕절개술의 주진단명 코딩에 따른 문제점 ▲산부인과 수술이 대부분인 불평등한 적용 질병군 ▲불합리한 한국형 질병분류체계(KDRG)로 인한 문제 등을 꼽고 있다.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관 주도 아래 상대가치점수를 전면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포괄수가제 시행까지 겹치며 산부인과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은 2005년 이후 9년 연속 미달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가 최근 전국 산부인과 수련병원 107곳을 조사한 결과, 전공의를 한 명도 확보하지 못한 수련병원은 23%(25곳)였으며, 무려 73%(78곳)가 절반 이하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 해 배출하는 전문의 수도 2001년 270명에서 2012년 90명으로 2/3가량이 줄어든 상태. 산부인과 지원을 기피하는 이유로 손꼽은 것은 '의료소송의 위험성이 많아서'가 가장 많은 49%를 차지했으며, '삶의 질 하락'도 20%에 달했다. 17%는 '수련 후 진로 불투명'을 꼽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각 병원 산부인과에서는 표준진료지침(CP) 개발을 새롭게 정비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양성종양에 대한 부인과 수술이나 제왕절개술의 경우 일반적으로 수술 하루 전에 입원해 수술 후 4일째 퇴원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수술하는 당일 오전 입원시키고 수술 후 3일째 퇴원시키면 재월일수를 이틀이나 줄일 수 있다.


실제 서울 소재 A대학병원은 산부인과 재원일수를 기존 5박6일에서 3박4일로 줄이고 고가치료재료나 고가약 사용을 지양하는 방향으로 CP를 다듬었다.


A대학병원 관계자는 “포괄수가제 적용에 따라 새로운 CP가 개발됨에 따라 재원일수를 줄이고 원래 쓰던 양질의 치료재료나 약을 쓰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타과 협진으로 두 가지 이상의 수술도 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소재 B대학병원은 포괄수가제 적용 이후 재원일수와 약제비 등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이 병원 관계자는 “CP는 환자만족도를 높이고 의사의 위험부담률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며 “다만 포괄수가제가 도입되면서 이전과 똑같은 고가의 재료나 약제를 쓰고 서너 가지 수술을 한꺼번에 할 수 없게 됐다. 결국 원가를 줄이는 방향으로 CP는 변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CP 개발 및 적극적 도입이 병행될 경우 진료행태 변화가 더 커질 수도 있다”며 결국 “포괄수가제 하에서 의료기관이 서비스 제공량을 줄여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경우 의료의 질 저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겨울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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