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방살이 병원들, 서러움 넘어 ‘생존권 위협’
병원계에 임대차 리스크가 새로운 경영 부담 요인 촉각
2026.07.27 05:27 댓글쓰기



병원 경영환경이 날로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자가 건물이 아닌 임차 계약 건물에서 운영 중인 병원들 고충이 심화되는 분위기다. 


건물 일부를 임차해 운영하는 개원가는 물론 최근에는 건물 전체를 빌려 운영해 온 병원들마저 임대인과의 갈등이 깊어지며 폐업하는 사례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어 우려를 자아낸다.


주목되는 부분은 경영 부실이 아닌 건물주와의 임대료 분쟁 및 강제집행으로 폐업하는 병원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의료기관 임대차 계약 분쟁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그 빈도와 강도가 점점 거세지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 척박해진 임대 병원들의 경영환경 현주소를 진단한다.


수도권 A병원은 20년 넘게 같은 건물에서 운영돼 왔다. 병원은 수술실 증축과 MRI 도입 등 시설 투자에만 수 십억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건물이 매각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새 건물주는 의료기관보다 수익성이 높은 업종 입점을 검토했고, 계약 만료 후 재계약 의사가 없다고 통보했다. 병원 측은 이전 부지를 찾기 위해 수개월간 노력했지만 동일 규모 건물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결국 일부 진료과를 축소하고 병상을 감축한 채 이전을 추진해야 했다.


지방 B병원은 코로나19 이후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여기에 건물주가 계약 갱신 과정에서 대폭적인 임대료 인상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병원 측은 수용이 어렵다고 판단해 협상을 시도했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결국 명도소송이 진행됐고 강제집행 절차까지 이어졌다.


병원은 수백 명의 입원·외래환자를 인근 의료기관으로 전원시키며 폐업 수순을 밟았다. 지역 주민들은 수십 년 동안 이용하던 병원이 사라지면서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도심권 C병원은 건물 전체를 임차해 운영하고 있었다. 문제는 건물 소유권이 투자회사로 넘어가면서 시작됐다. 새 소유주는 건물 리모델링 계획을 이유로 계약 조건 변경을 요구했다. 병원 측은 의료장비 이전과 환자 진료 연속성 문제를 들어 난색을 표했지만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결국 병원은 대규모 이전 비용 부담을 안고 새로운 부지를 찾고 있다. 병원 측은 이전 비용만 수 십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경영난보다 무서운 건물주”…벼랑 끝 병원들


“20년 동안 한 자리에서 진료했는데 하루아침에 쫓겨날 줄은 몰랐습니다.”


수도권 한 중소병원장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경영난 때문이 아니었다. 건물주와의 임대차 분쟁이 강제집행으로 이어지면서 수십 년 운영한 병원이 문을 닫게 됐기 때문이다.


병원계에 임대차 리스크가 새로운 경영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에는 개원의들이 주로 겪던 문제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수백 병상 규모 병원들까지 건물주와의 갈등 끝에 폐업하거나 이전을 검토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의료기관의 경우 일반 상가와 달리 대규모 시설 투자와 의료장비 이전 문제, 환자 연속성 확보 등의 특수성이 존재한다. 


임대차 분쟁이 발생하면 단순한 사업장 이전이 아니라 병원 존폐 문제로 직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료계에서는 “임차 병원 보호장치가 사실상 전무하다”며 제도 개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 의료기관은 대표적인 시설집약형 산업으로, 진료실과 수술실, 중환자실은 물론 CT·MRI 등 고가 의료장비까지 갖추기 위해 막대한 초기 투자가 필요하다.


문제는 상당수 의료기관이 자가 건물이 아닌 임차 건물에서 운영된다는 점이다. 개원의는 물론 중소병원 상당수가 건물 일부 또는 전체를 임차해 진료를 이어가고 있다.


병원 입장에서는 수 십억원을 들여 시설을 구축하더라도 건물 소유권은 임대인에게 있다. 계약이 종료되거나 분쟁이 발생하면 투자금 회수가 사실상 어려운 구조다.


한 병원 관계자는 “의료기관은 일반 점포처럼 쉽게 이전할 수 없다“며 ”건물주는 임대료만 올리면 되지만 병원은 환자와 직원, 의료장비까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의료장비 이전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일부 장비는 이전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재설치 과정에서 성능 저하 위험도 존재한다.


결국 임차 병원은 협상 과정에서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건물은 남의 것, 시설은 내 것”…구조적 딜레마


최근 병원계에서는 임대료 인상과 계약 갱신 거부, 건물 매각 등을 둘러싼 분쟁 사례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경영환경 악화로 병원 수익성이 떨어진 상황에서 임대료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환자 감소와 의료인력 인건비 상승, 전공의 사태 장기화 등이 겹치면서 병원들의 재정 여력은 크게 약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임대인이 대폭적인 임대료 인상을 요구하거나 건물 활용 계획을 이유로 계약 연장을 거부할 경우 병원들은 사실상 선택지가 많지 않다.


일부 의료기관은 명도소송과 강제집행 끝에 폐업에 이르기도 한다. 문제는 병원 폐업이 단순히 사업장 하나가 사라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입원환자와 외래환자, 직원, 협력업체까지 연쇄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지역 내 의료기관이 부족한 경우 의료공백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수도권의 한 중소병원 원장은 “카페나 음식점은 이전하면 되지만 병원은 환자안전 문제 때문에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수십 년 동안 형성된 지역 의료 인프라가 임대차 분쟁 하나로 무너질 수 있다“며 ”의료기관 특수성을 고려한 보호장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방의 한 병원장도 “건물주가 바뀌면서 계약조건이 달라졌고 결국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며 ”시설 투자비를 생각하면 사실상 다시 개원하는 수준의 부담이 발생한다”고 토로했다.


임대차보호법 사각지대 놓인 병원들


의료기관 역시 상가임대차보호법 적용을 받지만 현실에서는 한계가 적잖다.


대형병원의 경우 임대료 규모가 법 적용 범위를 초과하는 경우가 있고, 건물 전체를 임차한 병원은 보호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병원은 일반 상인과 달리 시설 이전이 어렵고 환자 진료 연속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별도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 의료기관에 대해 장기 임대차 계약을 유도하거나 계약 갱신권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일부 전문가들은 의료기관 이전이나 폐업 과정에서 환자 보호를 위한 별도 제도 마련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의료기관 폐업은 지역사회 의료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이상 개별 병원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병원 부동산 컨설팅 대표는 “병원은 단순한 임차인이 아닌 지역의료 제공이라는 공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만큼 일반 상가와 다른 기준으로 보호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병원은 지역주민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는 사회 인프라“라며 ”임대차 문제로 문을 닫는 일이 반복된다면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건물주는 임대료 계약이지만 병원은 환자와의 약속”이라며 “병원이 갑자기 이전하거나 폐업하면 피해는 환자들이 보게 된다. 병원 특성을 반영한 보호장치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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