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에서 비껴진 임상의학 강국 대한민국
'정책 지속성·기초학문 인식 및 연구풍토 개선 등 절실'
2015.12.31 12:00 댓글쓰기

[기획 2]임상의학 분야에서는 눈부신 발전을 이뤄온 우리나라가 왜 노벨생리의학상에는 후보 명단에 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것일까.


지난 10월 5일 중국과 일본, 미국에서 총 3명의 노벨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가 나왔다.


일본은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만 1901년 상 제정 이래 3명이 탄생했고 중국도 처음으로 수상했다. 이들 국가 사이에 있는 한국은 아직 한명도 배출되지 않았다.


미국 드류대 윌리엄 캠벨(85) 교수와 일본 기타사토대 오무라 사토시(80) 교수는 회선사상충증(river blindness)과 림프사상충증(lymphatic filariasis) 치료를 위한 새로운 구충제 아버멕틴(avermectin)을 개발했다.


이 약은 두 질병 외에도 다양한 기생충 질병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한방아카데미 투요우요우(85)  교수는 말라리아 치료제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을 개발했는데 이 약제는 말라리아로 고통 받는 환자들의 치사율을 낮추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은 모두 기초의학 분야인 기생충 감염질환 치료 공로에 주목했다. 그렇다면 임상의학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한국이 왜 노벨상과는 인연이 없는 것일까. 한국 의학계로서는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이유가 있다. 눈부신 발전을 이룬 임상의학 이면에는 상반되게도 기초의학이 궤멸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에는 외과의 눈부신 발전이 있었고 이 후 60년대에는 심혈관 등 내과질환이 증가하면서 내과의 발전이 두드러졌다.


특히 60년대에는 의료시설이 현대화되면서 한국 의료가 비약적 발전을 이뤘다. 이때는 국가적으로 많은 의사를 미국에 유학시켜 선진의학을 도입하는 등 현재 수준의 의학발전의 기초를 이루게 된 시기다.


현재 한국 임상의학 수준은 세계 최고 의학기술에 거의 근접했으며 일부 분야는 오히려 앞서고 있다.


한국의사를 가르쳤던 미국 의사들이 60년이 흐른 지금 한국 의술을 배우기 위해 발길을 옮기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의과대학 의료진이 내년부터 서울아산병원에서 생체 간이식 연수를 시작한다.


IT와 의술의 진화로 로봇수술기가 등장, 이를 개발한 미국보다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의 술기가 더 앞서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렇게 경이로운 발전을 이룬 임상의학과 달리 기초의학은 이탈 현상이 가속화 되면서 불균형이 심각하다.

 

국내 기초의학자 이탈 현상 가속화…궤멸 수준


국내 기초의학 위기가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다. 기초의학은 많은 돈과 시간, 인력을 들여야 하고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로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기초의학이 임상의학에 비해 처우가 낮고 정부지원도 부족해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기초의학을 배우려는 학생은 물론 가르치는 교수진의 비율도 점차 줄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더해 의사출신의 기초의학자 이탈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대한의학회 실시 기초의학 실태조사 결과도 암울하다. 해부학과 생리학, 약리학, 미생물학, 생화학, 기생충학 6개 분야 기초의학 교수들 중 의사 비율은 평균 50% 내외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도에는 기초의학 교수들 중 64.7%가 의사였다. 하지만 2010년 56.4%, 2014년 50%까지 내려왔다. 이중 의사 출신 기초의학자 대부분이 15~20년 후에는 은퇴할 예정으로 핵심 연구인력 이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의학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초와 임상이 함께 가야 하지만 국내 현실은 세계적 임상과 초라한 기초가 함께 서 있는 기형적인 모습이다.


임상의학 분야가 워낙 큰 발전을 이뤘고 대체로 임상분야에 지원이 집중되다 보니 기초의학은 새로운 이론이나 학설을 발견할 틈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기초의학분야의 인력 기근은 불투명한 미래와 열악한 처우 때문이다. 임상진료를 선택해 얻을 수 있는 금전적 보상, 진로보장 등과 비교할 때 기초의학의 장점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 이혜연 학술이사는 “국내 최고인재들이 의대에 지원하고 있지만 정작 융합중개연구의 주요 인프라를 담당해야 할 의사과학자는 고사 직전”이라고 지적했다.


이혜연 이사는 “안정적인 일자리와 처우가 부족하기 때문에 지원자가 없다. 기초의학이 위기에 처해 있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미래 기초의학도 암울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국내 연구 환경이 좋은 것도 아니다. 정부부처도 보건의료는 복지부가, 기초연구는 미래부가 맡고 있어 지원도 제한적이다.


즉 기초의학에 대한 학문적 열정과 투철한 사명감 없이는 임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기초의학 투자 과감히 확대하고 인식 개선 절실” 

 

노벨상 수상자 공통점은 모두 80세를 넘긴 노학자라는 것과 30~40년 전의 업적으로 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한 30대부터 독립적인 연구를 시작해 40~50대에 업적을 내고 노학자가 된 후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업적을 이루고도 저명한 학자가 되는 기간이 20년 이상 걸린다는 것이다. 이는 눈에 보이는 단기간의 성과보다는 꾸준히 바탕부터 뒤쫓아야 얻을 수 있는 연구 결과라는 것을 방증한다.


장기간의 연구에는 시간과 지원(돈)이 반드시 수반되며, 이를 기다리고 이해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도 또한 덧붙여져야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1970년대 와서야 연구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고 그마저도 산업을 위한 응용개발연구에만 몰두하고 기초학문에 대한 투자는 등한시해 왔다.


이런 결과를 놓고 보면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가장 영예롭다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기초학문에 대한 투자를 과감히 확대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기초학문에 대한 투자가 부족했고, 연구에 대한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없는 연구풍토가 큰 문제라고 꼬집는다.


이혜연 학술이사는 “의학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초의학이 발전해야 하고 과학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수학과 물리 등의 기초학문이 탄탄해야 하지만 한국에서 기초학문은 늘 홀대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술이사는 “우리나라의 R&D(연구개발) 투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모두 실용학문에만 투자되고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 때문에 그마저도 연속성 없이 2년, 3년짜리 지원만 있을 뿐 장기적인 계획이 없기 때문에 미래는 암울할 뿐”이라고 힐책했다. 


그는 “이런 정부 정책과 기초학문에 대한 인식 부재로 기초의학자 기근현상이 심화되고 있어 융합중개연구의 주요 인프라가 없다”면서 “한국의 유능한 인재들은 최고의 기술을 잘 따라하는 카피리스트일 뿐, 창의적인 학문을 할 수 없는 구조다. 의과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학문의 근간이 되는 기초의학, 기초과학부터 잘 지켜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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