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게 '비정상의 정상화' 외치는 심장학회
오동주 이사장 '전문가와 상의는 커녕 제시한 의견도 무시'
2014.10.06 20:00 댓글쓰기

학회가 보건당국을 상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마치 배수진을 친 듯 물러섬도 없다. 상대가 하나도 모자라 둘, 셋 늘어나는 상황이지만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오히려 각종 논문이며 임상현장의 경험들을 제시하면서 오히려 상대 의견을 반박한다. 학자로서의 자존심과 자존감이 그 어느때 보다 상실된 느낌이 엿보인다.

 

그런데 과연 무엇이 명예와 긍지를 바라보는 학자들을 투쟁 전선에 머물게 하는 것일까. 이들은 어떤 심정으로 무엇을 주장하고 반박하며 8개월여를 버텨왔을까. 대한심장학회 수장인 오동주 이사장[사진]을 만나 그간의 일들과 현황, 그들이 바라는 올바른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심평원, 의학자 자존심 짓밟어"

 

대한심장학회(이사장 오동주)는 지난 3월 허혈성심질환 통합적정성평가를 반대하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원장 손명세)을 상대로 '평가거부'를 선언했다.

 

상대평가라는 미명하에 1점에 등급이 갈리고 병원들 순위가 매겨지며 늘어가는 평가와 지표에 지쳐가면서도 협조해왔던 이들이 '의료 질 향상'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통합평가를 내건 심평원의 밀어붙이기에 반기를 든 것이다.

 

쌓였던 불만이 폭발했고 지표 적절성을 비롯해 의사결정과정의 문제들이 표면으로 부상했다.

 

더구나 심평원은 학자로서 임상현장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들의 식견을 흘겨 듣는 등 초기 대응에 실패했고, 임상의사이기에 앞서 의학자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결국 사태는 8개월여가 지나가는 지금까지 평행선을 그리며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오동주 이사장의 말을 빌면 '기다림의 시간'이다. 전문가로서 문제를 지적했고, 예비평가와 평가의 전향적 재검토 등 방향을 제시했으니 답변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오 이사장은 "객관적인 근거와 자료를 바탕으로 학자적 관점에서 지적을 해왔다. 전문가와 상의는 커녕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주겠다는데도 무시하고 있다. 심평원에서 무언가 답을 하기 전까지 더 이상 할 것이 없다"고 한탄섞인 아쉬움을 표했다.

 

"복지부, 임상전문가들 긍지 훼손"

 

이 가운데 학회의 반대편에 보건복지부(장관 문형표)와 대한흉부학회(이사장 선경)가 서는 상황이 발발했다.

 

복지부가 지난달 스텐트의 개수 제한을 풀며 다혈관 등 중증질환에 대한 PCI 시술 시 CABG가 가능한 흉부외과 전문의와의 통합진료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고시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순환기내과가 주를 이루는 심장학회 전문의들은 "말도 안 된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대한병원협회와 일선 요양기관들이 일제히 고시 재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반대로 복지부는 "무분별한 스텐트 삽입을 견제하고 협진을 통해 환자의 삶과 안전을 담보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강행을 결정했다. 흉부외과의들도 통합진료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고시 개정을 내심 반겼다.

 

이와 관련 오 이사장은 고시개정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진료와 시술은 누구도 참견하거나 간섭할 수 없는 의사의 영역이자 책무임에도 의학적 근거나 임상적 고려 없이 책상에서 펜 굴리며 나온 탁상공론에 흔들려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표현이다.

 

이어 그는 "PCI 시술을 하는 미국 병원 중 30%가 흉부외과의 없이 환자를 살리고 있다"며 "복지부가 근거로 제시한 미국 권고안의 고시화는 소송이 발달한 미국이었다면 당장 고소당할 사안"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아울러 "법으로 강제성을 부여하면서까지 통합진료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의사가 판단하면 되는 문제"라면서 "보잘 것 없는 내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며 느끼는 벅찬 감동과 책임감, 사명감 등을 무시하는 행위는 지양돼야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그 또한 의사로서 자신의 판단에 따라 상황을 살펴 협진도 해가며 1만여명을 상대로 시술을 해왔고, 분초를 다투는 환자를 홀로 살리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지난 30여년간 매달 2~3명에게 생명을 돌려주고 참기름과 고추장 등 마음의 선물을 받으며 쌓은 긍지가 금번 복지부의 행동으로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탄했다.

 

"환자가, 국민이 원하는 의료를 위해 제대로 하자"

 

"기왕 환자들을 위해 시행되는 일이니 합리적이고 상식에 맞게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좀 더 전문가들과 심도 있게 의논하며 서로 윈-윈 하는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합니다."

 

그럼에도 오동주 이사장은 '내 가족이 환자라면'이란 자신의 가치관이자 세상을 떠난 스승의 가르침을 언급하며 대화 내내 상생을 강조했다. 적정성평가나 스텐트 고시가 밥그릇 싸움 혹은 명분 싸움 등으로 비화되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하며 환자 중심에서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이치에 맞게 행동해야한다는 말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그는 "현장에서 환자를 위해 고생하는 의사들과 고통에 몸부림치는 환자들을 볼 때면 물러설 수 없다"면서 "2~3번의 회의와 결정 후 통보되는 형식이 아니라 충분히 논의하고 제대로 제도와 의료체계가 정립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 학회도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런 오 이사장의 임기가 2달여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임기의 마지막까지 의지와 뜻을 꺾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더구나 깍아내리기식 비방이나 소모적 논쟁이 아니라 상생을 위한 노력과 이해를 당부하며 의사의 사명감과 자부심, 학자로서의 의식과 긍지를 되새겨볼 것을 부탁했다.

 

한편 오 이사장은 인터뷰를 마치며 현재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대안도 제시했다. 그는 "흉부외과의 위축이나 어려움을 의학적 근거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통합진료로 활로를 찾기보다 병상기준 등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한 스텐트 갯수 제한이 풀림에 따라 우려되는 것은 통합진료보다 무분별한 시술이라고 지적하며 근거에 입각한 논의를 거쳐 내부기준을 세우고 필요에 따라 삭감을 함으로써 충분히 통제 가능하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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