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지기 대한민국 의료산업 키(Key)는 정부가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종 인‧허가는 물론 규제, 단속, 처분 등의 절대적 권한은 병원이나 제약사 및 의료기기 등 업체들 운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병원들은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정책에 명암을 달리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급여화 과정이나 진료비 삭감 등에서도 이견은 목격된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와 관할 보건소와의 관계 등 병원계에 대관(對官) 업무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의약품, 의료기기 등 산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제품 인‧허가, 건강보험 급여권 진입, 약가 결정 등에 따라 회사 명운이 달라지는 만큼 대관(對官) 중요성은 부연이 불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편집자주]
“제약업계가 신약 등재와 관련해 현재 제도 내에서 자료를 충실하게 제출하고 해결책 및 개선 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지혜와 의지가 필요하다.”
이정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위원장(前 서울아산병원장)이 제약업계 숙원인경제성평가 자료제출 생략제도(이하 경평 생략 제도) 개선 관련 발언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국내 단일 규모 최대 의료기관인 서울아산병원 원장으로서 큰 족적을 남긴 그가 심평원이라는 공공기관에서 겪은 약제 급여화와 관련된 소회 및 제언은 병원계와 제약계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최근 데일리메디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헬스케어 포럼'에 연자로 나선 이정신 약평위원장의 강연 핵심은 ‘국민 건강을 목표로 한 심평원과 제약업계의 공동 발전을 위한 소통’으로 압축됐다.
즉, 현행 제도를 개선 및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심평원뿐만 아니라 제약업계의 적극적인 협력이 함께 동반돼야 한다는 의미다.
경제성평가 생략 제도 확대 ‘돌아보기’
현 제도는 신약 급여화를 위해 경제성 평가를 토대로 한 비용효과성 입증이 원칙인 만큼 임상적 이익과 비용 효과성은 신청자가 입증하고 심평원이 이를 평가해 급여 여부를 결정하는 구조다.
하지만 신약의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우리나라는 2015년 5월 ‘경제성평가 생략 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제약사들은 경평 생략 제도 완화와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피력했다.
이정신 위원장은 경평 생략 제도의 최초 탄생은 예외적 제도로 설계됐지만, 지속적인 제도 확장을 거쳐 주류 트랙으로 변형돼 경평 생략 범위가 해외 사례보다 넓어졌다고 평했다.
반면 제약업계는 경평 생략제도 개선을 위해 ICER(Incremental Cost-Effectiveness Ratio, 비용효과비)를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게 수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국내 평가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해 경평 트랙으로는 급여화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정신 위원장은 "국민 건강을 위한 공통 목표를 가진 만큼 급여적정성 심의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제약사들의 충실한 자료 제공 등을 당부하고 싶다"고 밝혔다.
제약사의 성실한 자료 제출 필요성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결국 심평원도 자료가 부실할 경우 급여화 검토 등에 더욱 곤란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경평 생략 제도와 관련해 관련 기준을 채우지 못했지만 무분별한 신청도 과거에 비해 늘어난 상황이다.
그는 "결국 경평 생략 제도로 자료를 제출하면 등재까지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환자가 비급여로 사용하는 기간이 길어진다"며 "제외국 등재 갯수가 3개국 미만인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어 "비급여가 결정되면 경평 재신청 과정이 추가로 1~2년 더 소요된다. 이에 원칙대로 급여화 과정을 밟는 게 오히려 기간 단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경평 생략 제도 관련 자료를 제출해도 임상적, 유용성, 비용효과성에 대한 완결 자료 제출이 있어야 약평위 상정이 가능해 완결성 있는 자료이 급여화의 핵심이라는 조언이다.
이정신 위원장은 "신약 등재 장기간 소요 지적에 심평원도 노력해야 할 지점이 있지만 결국 제약사 자료 제출의 충실로 보완에 드는 시간과 노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되짚었다.
다만 이 위원장은 통상 급여기준 설정 이후 약평위 상정 시점에서 제약사에 추가 자료를 요청하는 현행 방식은 추가 기간 소요 및 검토 기간이 촉박한 만큼 개선 필요성에 공감을 표했다.
“RWD 등 사후관리는 선택 아닌 필수”
특히 RWD 등 사후관리에 대해서는 필요성을 인정하고 제약사들의 소통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또 제약업계 화두 중 하나인 실제임상자료(Real-World Data) 검토가 필요한 약제의 경우 효율적으로 자료 수집이 이뤄질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밝혔다.
결국 RWD 등 사후관리는 임상적 불확실성이 커 급여가 곤란한 약제들에 대해 선제적으로 급여화고 불확실성을 등재 이후 확인하는 것으로 허들이 아니라 접근성 강화 차원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고가 신약의 경우 단일군, 단기 임상 자료밖에 없는 경우가 많고 장기임상 효과가 불확실해 재평가 대상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제약사의 적극적인 자료 협조가 필요하며 성과평가 실패에 따른 가격인하 등 환급이 필요한 경우도 미리 본사와 협의를 통해 급여가 지연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는 제약사들이 먼저 주장한 선 등재 후 평가와 유사한 개념”이라며 “한정된 재원에서 급여화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것은 사회적인 공감대를 필요로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