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醫師)’ 대신 ‘의사(義士)’ 택한 경성의전 학생들
금년 3·1운동 100주년 앞두고 '의학도 독립운동' 재조명
2019.02.26 05:35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알린 역사적인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시대적 고통과 괴로움을 인내하며 힘차게 저항했던 의학도들이 재조명 되고 있다.
 
3.1운동, 그 날의 함성 속에는 수 많은 의학도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독립선언식이 거행된 파고다공원과 인접한 경성의학전문학교(서울의대 전신. 이하 경성의전) 학생이 대거 참여했다.
 
실제 당시 서울에서 3.1운동과 관련해 구금된 학생들을 소속 학교별로 나눴을 때 경성의전이 32명으로 가장 많았다. 체포되지 않은 학생들까지 합하면 100명이 훌쩍 넘는다.
 
19164월 문을 연 경성의전은 일본인과 한국인 학생이 절반씩이었다. 일제가 세운 학교인데다 교수 역시 모두 일본인이었던 만큼 학교생활도 자연히 그들 위주였다.
 
그러다 보니 조선인 학생들은 학교 당국에 불만이 팽배했다. 민족차별에 대한 서러움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3.1운동이 비밀리에 추진되고 있었다.
 
19192월 김형기, 한위건은 경성의전 학생대표 자격으로 3.1운동 준비작업에 참여했다. 만세운동 당일에는 이들을 비롯해 김탁원, 백인제, 길영희, 나창헌, 이의경 등 상당수 재학생이 시위대 선봉에 섰다.
 
특히 이익종은 지금의 종로 4가에 모인 군중 앞에서 연설을 통해 독립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강기팔은 평남 강서군 함종면 일대의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경성의전 학생 20% 이상이 구금됐고, 79명이 퇴학 처리됐다. 이 중 김형기, 이익종, 김탁원, 백인제 등은 옥고를 치러야 했다.
 
3.1운동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215. 한 일본인 교수의 망언으로 경성의전은 또 다시 들끓었다.
 
해부학 실습실의 두개골 하나가 없어진 것을 두고 일본인 교수가 조선인 학생의 소행이 분명하다조선인은 원래 해부학적으로 야만인에 가깝다는 폭언을 했다.
 
평소 민족적 굴욕감을 참고 견뎌왔던 194명의 조선인 학생 전원이 이 교수의 수업을 거부했다. 학교 측은 주동자 9명은 퇴학, 나머지 185명은 무기정학 처분하는 강수를 뒀다.
 
이에 조선인 학생들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194명 전원이 동맹 퇴학으로 맞서 끝내 해당 교수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이 교수는 일본에서 정신병에 걸려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이 외에도 일제의 횡포에 맞서 열사가 된 의사들 일화는 여러 기록물에서도 확인된다.
 
19084월 서울역 부근에서 예정됐던 이토 히로부미 환영식에 대한의원 학생들의 동원령이 내려졌지만 의대생 전원이 참석을 거부해 당시 학감이던 지석영 선생이 당황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또한 대표적인 친일파 이완용 모살 사건에도 의대생들이 동참했다. 경성의전 전신인 대한의원 의육부 학생 오복원, 김용문 등 2명이 모살을 함께 했다.
 
오복원은 군자금과 무기 구입 전담으로 10년형, 김용문은 암살 대상 동향파악 전담으로 7년형을 선고 받았다.
 
3.1운동으로 민족의 독립 열망을 일깨운 의학도들은 이후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했다.
 
경성의전 2학년 재학 중 3.1운동에 참여했던 나창헌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한 이후 대동단에 가입해 의친왕 망명사건에서 경호 임무를 맡았다.
 
상해 독립 병원에서 의술을 다시 배워 세움병원을 세웠고, 자금부족에 시달리는 임시정부에 재정을 돕기도 했으며 임시정부의 요직을 맡으며 활약을 이어갔다.
 
의학도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도 활동했다.
 
유상규는 경성의전을 휴학하고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국에 근무했고, 안창호 선생 비서를 거쳐 흥사단으로 항일운동에 나섰다.
 
이후 귀국한 그는 학업을 마치고 경성의전 강사로 취직해 조선민중의 의학적 계몽활동에 주력했다. 1930년에는 조선의사협회 창설도 주도했다.
 
이 외에도 수 많은 의학도들이 일제의 갖은 탄압에도 불구하고 민족자주의식을 잃지 않고 구국운동에 앞장섰다.
 
한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서울대병원 의학역사문화원은 25의학도, 3.1운동의 선두에 서다라는 주제로 3.1운동 100주년 기념 세미나를 열고 선배 의학도들의 정신을 기렸다.
 
서울의대 신찬수 학장은 엄혹한 시절에 저항하면서 실력을 쌓기 위해 철두철미한 노력을 기울였던 선배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 의학은 훨씬 초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선학들이 쌓아 올린 역사의 자취를 생각하면 절로 숙연해진다자주 독립과 인간 사랑을 향한 선배들의 정신과 분투를 기리고 이어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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