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지 대한민국의 '병원 중흥' 주역 재조명
조운해·백낙환·박영하·서석조·윤덕선 박사, 삼도천 건넌 거목들
2019.03.05 05:47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강북삼성병원 조운해 前 이사장의 부음을 계기로 국내 병원산업의 중흥을 이끈 거목들의 발자취가 재조명 되고 있다.
 
더욱이 의사 출신으로 병원은 물론 의과대학을 설립, 대한민국 병원계 발전과 의학자 양성에 기여한 의료계 사학 총수들의 삶이 반추되는 모습이다.
 
먼저 지난 1일 노환으로 별세한 조운해 전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이사장(94)은 경북의대 전신인 대구의전을 졸업했다.
 
이후 일본 동경의대 대학원에서 소아과를 전공하며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병원에서 의사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당시 그를 눈여겨 본 박준규 전 국회의장 소개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첫째 딸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을 만났고 이후 부부의 연을 맺었다.
 
재벌가의 맏사위가 된 후에도 그는 한 평생 의업에만 종사하며 외길을 걸었다. 서울대병원을 나와 1968년 고려병원을 설립해 병원 발전을 이끌었다.
 
대한병원협회장과 아시아병원연맹 회장을 지내는 등 한국 의료계 발전에 헌신했다. 은퇴 후에는 자신의 호를 딴 '효석(曉石) 장학회'를 설립해 대학 후배들을 위한 장학사업을 펼쳤다.
 
지난해 12월에는 인제학원 백낙환 전 이사장(92)이 숙환으로 타계했다. 고인은 백병원 설립자인 큰아버지 백인제 박사의 뜻에 따라 서울의대 전신인 경성의전에 진학해 외과 의사의 길을 걸었다.
 
6.25 전쟁 중 납북된 백인제 박사의 뒤를 이어 백병원 3대 원장으로 취임해 부산백병원, 상계백병원, 일산백병원, 해운대백병원 등 5개 병원을 세워 3500병상의 의료기관으로 일궈냈다.
 
고인은 1979년 큰아버지 이름을 딴 인제의과대학을 세웠다. 종합대학으로 승격된 1989년부터 2000년까지 총장을 지냈고, 2004년부터 2014년까지 학교법인 인제학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대한병원협회 회장, 대한외과학회 회장, 한국병원경영학회 초대 회장, 대한소화기병학회 회장 등 병원 경영과 학술 영역을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하지만 말로는 평탄치 못했다. 횡령 및 배임 혐의로 법정에 섰고, 39년 만에 경영권을 반납해야 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인제학원 이사회에서 고인의 장녀인 백수경 이사의 재선임 안건이 부결되면서 인제학원에서 백낙환 이사장 일가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졌다.
 
지난 2013년에는 을지병원 설립자인 박영하 박사가 87세 나이로 영면했다. 평양 출신인 그는 서울의대 졸업 후 6.25전쟁 당시 평양 탈환작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1956년 서울 을지로에 박영하 산부인과병원을 개원한 후 대전을지병원, 서울 을지병원, 금산을지병원, 강남을지병원 등을 개원하며 국내 굴지의 의료원으로 키워냈다.
 
그는 교육사업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았다. 1983년 을지학원을 설립해 서울보건대학을 인수했고, 1996년 을지의과대학을 세웠다. 서울보건대학과 을지의대는 지난 2007년 을지대로 통합했다.
 
평소 나눔과 봉사에도 관심이 많아 1994년 의사, 간호사 등 자원 의료봉사 요원 70여 명으로 을지의료봉사단을 결성해 무료진료를 꾸준히 실천했다.
 
1994년 홀로 투병 중이던 프로레슬러 김일 선생을 병원으로 모셔와 2006년 임종 때까지 무료로 치료해 준 일화에도 고인의 평소 의료관이 투여돼 있다.
 
현재 을지대학교와 을지의료원은 아들인 박준영 총장이 맡아 선친의 유지를 받들고 있다.
 
지난 1999년 타계한 서석조 박사 역시 대한민국 의료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1946년 일본 경도부립 의과대학을 졸업한 서 박사는 서울의대 조교를 거쳐 미국 코넬대학교 신경내과 교수로 재직했다.
 
귀국 후 연세의대 내과 교수, 세브란스병원 내과과장, 가톨릭의대 내과 주임교수, 서울성모병원 내과과장을 역임했다.

이후 1964년 서울 중구 저동에 동은병원을 개원해 운영하다가 1968년부터 1972년까지 고려병원 내과부장과 부원장으로 재직했다.
 
1974년 순천의료재단 초대이사장으로 취임 후 의료환경이 취약하던 충북 음성, 경북 구미, 충남 천안 등지에도 병원을 세웠다.
 
순천향의대는 1978년 설립했다. 입학생 80명에 강의동 하나로 시작한 순천향의대는 1990년 종합대학으로 성장했다.
 
순천향하늘의 뜻을 받들어 인술을 펼치는 마을이라는 의미다. 김종필 전 총리가 질병은 하늘이 고치고 의사는 그 과정을 도울 뿐이라는 서석조 박사의 의지를 담아 지어준 이름이다.
 
한림대학교 설립자인 윤덕선 박사도 대표적인 의료계 사학의 거목이다.
 
평안남도 용강 출신인 윤덕선 박사는 경성의전에서 의학자의 첫 발을 내딛었다. 특히 졸업 후 스승인 백인제 선생의 부름을 받아 외과수련 생활을 시작했다.
 
경성의전 교수를 역임한 백인제 선생 밑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회진, 수술, 당직이 이어지는 수련기를 보내며 외과의사로서의 소양을 연마해 나갔다.
 
미국 유학 후에는 가톨릭대 의대(당시 성신대학 의학부) 부교수로 취임했다. 가톨릭 중앙의료원 초대 의무원장을 역임했고, 1967년 서울 필동에 성심병원을 개원했다.
 
이후 한강성심병원과 강남성심병원을 잇따라 개원하고 1982년 학교법인 일송학원과 한림대학을 설립한 뒤 재단 병원 명칭을 한림대의료원으로 바꿨다.
 
1984년 춘천성심병원, 1986년 서울 강동구에 강동성심병원을 개원했다.
 
맹인과 나병환자를 위한 다양한 복지 활동도 꾸준히 전개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신림복지관, 성심복지관 등을 건립해 체계적인 사회복지를 실천했다.
 
국내 최대의 병원 기업가로 소개됐을 당시에는 의사는 돈을 몰라야 인술(仁術)을 폅니다라는 말로 부(富)의 사회 환원을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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