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 박원장 인기 속 웃픈 개원가···'현실은 더 팍팍'
고의적 악평(惡評) 리뷰 곤혹·남자산부인과 의사 외면·미용진료 시도 등
2022.02.04 06:00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신용수·이슬비 기자] 최근 의료계에서 ‘핫한’ 이슈 중 하나는 ‘내과 박원장’이다. 의사 출신 장봉수 작가(필명)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티빙 웹드라마가 개원가의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이 작품은 소위 강호(江湖)에 내던져진 내과 전문의 박원장이 매출과 사명감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웃프게’(웃기면서도 슬프게) 그리고 있다. 
 
내과 박원장이 개원의사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이유는 작가가 의사 출신답게 현실적으로 그려낸 에피소드 때문이다. 만화적 과장이 한 숟가락 섞여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개원가 현실은 박원장 못지않게 씁쓸하다는 것이다. 
 
데일리메디는 웹툰과 드라마가 아닌 현실 속에서 악전고투를 이어가고 있는 수많은 ‘박원장’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대로 처방해주세요” 진상 환자 만연, 고객 관리 힘들어  
 
드라마 내과 박원장에서는 환자가 진료 과정에서 불쾌감을 느끼고 지역 커뮤니티 등에 악평(惡評)을 남겨 평판이 나빠지는 이야기가 나온다. 심지어 박원장(이서진 분)은 일부 악플러들과 ‘키배’(키보드 배틀)을 벌이기도 한다.
 
개원의들은 이 사례를 개원가 현실이 가장 잘 드러나는 중요한 장면으로 꼽았다. 실제로도 지역 병‧의원은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서 이뤄지는 별점 평가 및 리뷰 대상에 포함돼있기 때문이다.
 
사진출처=티빙서울 소재 한 내과 개원의는 “SNS 세대가 주를 이루면서 블로그 등에 맛집 후기를 올리는 것처럼 의료행위를 평가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며 “솔직히 신경 쓰이나 애써 외면한다. 하지만 가족과 지인을 동원해 악평을 뒷장으로 밀어내는 동료도 있다”고 증언했다. 
 
이어 “개원의 처지가 사실상 일반 소상공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비스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별점 테러’를 받는 식당이나 진단서를 끊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별점 폭격을 당하는 동네병원 처지가 똑같다“고 호소했다. 
 
그들의 고충은 지난해 대한개원의협의회(대개협)이 진행한 ‘네이버 영수증 리뷰 및 포털사이트 병원 리뷰로 인한 의료기관 피해 파악’ 설문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개원의 61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40%는 리뷰가 병원 평판 및 진료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고, 22%는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설문에 참여했던 한 개원의는 “본원에 없었던 사례로 악플을 달고 직원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상처를 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개원의는 “네이버 영수증 리뷰는 다분히 악의적”이라면서 “리뷰 때문에 보건소에서 연락도 온적이 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해당 환자는 방문한 적도 없더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출산율 저하·여성환자 발걸음 돌리는 '남자산부인과 원장' 현실 
 
그나마 환자들이 오는 병원은 양반이다. 환자들이 줄어든데다 그나마 오는 환자들도 외면하는 개원의들이 있다. 일명 ‘남산’으로 불리는 남자 산부인과 개원의들이다. 
 
드라마에도 ‘남산’인 지민지산부인과의 지민지 원장(김광규 분)이 있다.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처음에는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환자들이 여의사를 선호해 여성적 느낌을 주는 이름으로 개명했고, 이후 매출이 30% 증가했다는 그의 사연은 마음 한구석을 짠하게 만든다. 
 
사진출처=티빙 남자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해당 에피소드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현실은 더 냉혹하다고 하소연했다.
 
서울의 한 남성 산부인과 원장은 “남자 산부인과 전문의는 그동안 산부인과계에서 꾸준히 아웃사이더였다. 대부분 환자가 여성인 만큼 여의사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드라마에서는 이름을 바꾼 뒤 매출이라도 늘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병원에 들어온 뒤 원장이 남성인지 물어보고 그대로 나가는 환자들이 부지기수”라고 덧붙였다.
 
그는 “그나마 분만을 맡는 산과에서는 남성 의사를 필요로 하기도 했다. 큰 규모 병원에서는 야간분만을 맡을 당직 의사도 필요하고, 또 장기간 분만 수술을 버텨낼 체력도 필요한 까닭”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하지만 우리나라 출산율이 폭락하면서 이마저도 옛말이 됐다. 고용은커녕 문을 닫거나 분만 업무를 포기하는 병원들이 계속 늘고 있다”고 밝혔다. 
 
환자 한명이라도 더 받아야… 살길 찾아 진료과목 확대
 
사진출처=네이버웹툰사실 환자들 외면을 받는 것은 비단 남산만이 아니다. 박원장도 환자가 오지 않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동료 개원의들 조언을 구한다.

동료 중 한 명은 “진료과목을 늘려야 한다”고 충고했고, 이에 박원장은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시작한다. 
 
이처럼 최근 전문의로서 개원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전공이 아닌 다른 분과로 진료과목을 확장한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서울의 한 개원의는 “솔직히 내가 맡은 분과의 진료도 쉽지 않은데, 다른 분과 진료를 잘하기는 더 더욱 어렵다”며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다. 한 명이라도 환자를 더 받아야 산다. 지역에 다른 병‧의원에서도 여러 분과를 하고 있는데 뒤처질 수 없다”고 말했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내과 전문의가 소아과를, 비뇨의학과 전문의가 피부과를 진료하는 경우는 예삿일이다. 심지어 전혀 상관없는 과목의 진료를 맡는 경우도 있다. 
 
최근 서울의 한 이비인후과의 경우 같은 건물에 통증의학과를 추가로 개설했다. 통증의학과는 일반적으로 개원가에서 ‘돈이 되는 과목’으로 알려져 있다. 
 
고령 환자를 중심으로 도수치료 같은 물리치료와 체외충격파 시술 등에 대한 수요가 있는 까닭이다. 심지어 이 병원은 진료과목 확대를 위해 새 의료진을 고용하기도 했다. 
 
해당 병원 관계자는 “이비인후과 원장이 직접 통증의학과 진료를 보지는 않는다”라며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와 물리치료사를 고용해 통증의학과 진료 및 물리치료를 맡겼다”고 말했다.
 
최후 수단 미용과목 두들겨도 매출은 ‘찔끔’
 
사진출처=네이버웹툰 한편 진료과목 확대 이후에도 매출 부족으로 허덕이던 박원장은 결국 미용 세계에 문을 두드린다. 
 
원작 만화에서는 박원장 외에도 남자 산부인과 원장을 비롯해 비뇨의학과, 흉부외과, 일반외과, 일반의 등 많은 개원의들이 저마다 사연을 안고 미용학회로 향한다.

이 같은 상황은 현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피부미용 진료를 보고 있는 한 내과 개원의는 “의대를 다니던 시절에도 보톡스·필러 등을 시술해보지 않았다”며 “고혈압·당뇨 등 내과 진료 수가만으로는 솔직히 병원 운영이 쉽지 않다. 먹고 살기 위해 주말을 쪼개 미용학회에서 술기를 배웠다”고 회상했다.
 
이어 “개원 초기에는 환자가 비록 내과를 찾아왔지만 피부 미용에 대해서도 고민한다면 어떻게든 내 환자로 만들고 싶고, 환자 한 명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미용 진료를 한다고 해서 단골 환자가 입소문을 내면 소개해주는 정도에 그칠 뿐, 획기적인 매출 확대는 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앞서 개원의는 “요즘에는 내과·피부과·소아청소년과 등 많은 진료과목을 걸어놓는 의원이 많지만 의외로 환자들이 몰려들지는 않는다”면서 “인기 진료과목을 다룬다고 환자 증가로 꼭 연결되지는 않는다. 모두 리뷰를 찾아보고 잘한다는 곳으로 간다”고 씁쓸해했다. 
 
‘코로나19 폭탄’ 확진자 다녀간 뒤 방호복 입고 진료
 
최근 ‘코로나 시국’을 담은 에피소드도 ‘짠내’를 물씬 풍겼다.

원작 만화에서 박원장은 한 환자를 진료했는데, 아마존큰뿔새를 잡아먹고 아마존 바이러스 감염병 증세를 보인 환자였다. 이후 그는 확진 판정을 받았고 박원장은 병원에 격리된 채 쓸쓸히 마포대교를 바라봤다.
 
사실 이 에피소드는 내과 박원장의 정식 연재 전 네이버 베스트도전에서 연재될 당시 에피소드로 2015년 있었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를 소재로 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어렵지 않게 코로나19를 떠올릴 수 있다. 
 
사진출처=네이버웹툰 개원의들은 코로나19 창궐 이후 박원장 같은 사례가 실제로도 적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서울의 또 다른 이비인후과는 지난 2020년 병원을 방문한 환자 중 한 명이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병원 문을 한동안 닫아야 했다. 
 
해당 이비인후과 원장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확진자 동선에 우리 병원이 포함되면서 2주 이상 병원을 열지 못한 것은 물론 자가격리도 해야 했다”며 “이후 우리 병원에 코로나19 환자가 다녀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동안 병원을 찾는 발길이 크게 줄었다”고 되짚었다.
 
이어 “이후 환자들의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는 의료진과 똑같은 방호복을 구해서 입고 진료를 보고 있다. 벌써 1년 넘게 방호복을 입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환자들이 크게 줄었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 병원처럼 확진자가 나오지 않은 경우에도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병원이 매출 타개책으로 선택한 방안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이었다. 
 
이 원장은 “사실 개인적으로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맡고 싶지 않았다”며 “하지만 환자 감소로 매출이 줄고 직원 한명을 떠나보내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이후 그나마 숨통이 트이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신용수·이슬비 기자 (credit@dailymedi.com)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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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기사 02.04 09:25
    내가 이 기사를 끝까지 읽은 이유는... 내용도 재미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글이 너무 좋았다. 과장되지 않고 절제된 표현, 구성이 참 참신하다. 작가인줄 알았다. 데일리메디에 이렇게 좋은 글쟁이가.. 오래오래 좋은 기사 쓰시길...
  • 좋은 기사 02.04 09:25
    내가 이 기사를 끝까지 읽은 이유는... 내용도 재미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글이 너무 좋았다. 과장되지 않고 절제된 표현, 구성이 참 참신하다. 작가인줄 알았다. 데일리메디에 이렇게 좋은 글쟁이가.. 오래오래 좋은 기사 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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