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폭행, 지방·소규모 병원은 무방비'
'법 강화됐지만 현장은 변한게 없다' 답답함 호소···'엄중 처벌' 촉구
2018.07.03 12:25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정숙경 기자] “서울 대형병원은 사정이 그나마 낫다. 지방 소재 병원이나 소규모 병원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만약 1명의 당직의사가 폭행을 당했다면 그 즉시 해당 병원은 마비가 된다.”


이번에는 전라북도 익산시의 한 병원에서다. 술을 마신 채 응급실을 찾은 환자가 응급의학과 과장에 폭력을 휘둘렀다. "법이 강화됐는데도 변한 것이 없다"며 의료진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현재 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의사는 뇌진탕을 비롯해 경추부 염좌, 비골 골절 및 치아 골절 등의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응급의료법 개정으로 응급실 폭력 처벌 강화됐지만 결과는···

사실 잠잠해질 만하면 응급실 폭력이 발생했다. 그러나 2015년 초 응급의료법 개정으로 처벌이 강화되면서 곪아왔던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일말의 기대감이 높았다.


개정안에 따르면 응급의료를 방해하거나 의료용 시설 등을 파괴·손상 또는 점거한 사람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처벌을 강화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고 의료진들은 성토한다.

대한응급의학회 김한준 공보이사(서울성모병원)는 2일 “법이 강화됐다고 하지만 문제는 실제 처벌로 이어지느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공보이사는 “의료진이 병원에서 폭행을 당했다는 소식은 있지만 폭행을 행사한 이들이 처벌을 받았는지는 도무지 확인할 길이 없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실제로 이 법에 의해 엄하게 처벌된 사례가 응급실 폭력 발생 건수에 비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는 “예전에는 아예 경찰이 출동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최근에는 출동은 하지만 적극적으로 제지하지는 못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병원에서 만큼은 공권력이 엄정하게 행사돼야 한다”고 말했다.


응급의학과 전공의들의 중도 하차와 폭력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는 분석 때문에 의료진들 시름 또한 깊다.


수련을 하던 전공의가 응급의학을 그만두는 데 응급실 폭력은 굉장히 큰 영향을 끼친다. 폭력 사건이 한두 번에서 점차 빈도가 늘어나면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보건복지부의 ‘최근 5년간 전문과목별 전공의 수련 포기율’ 자료를 보면 지난해 응급의학과 전공의 수련 포기율은 13.2%로 전년 대비 2배 이상 치솟았다.


부산 소재 P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사명감으로 버텨오던 전공의들은 응급실 폭행을 한 두 번 겪다보면 허탈감에 빠져 심적 후유증을 겪는 것이 다반사”라면서 “이들이 중도하차 하지 않을까 지도교수로서 고민이 깊
다”고 고충을 피력했다.


그는 “응급실 내 폭력은 간접살인과 같다”면서 “위급한 환자가 치료받을 수 없도록 난동을 부리거나 폭력을 행사하게 되면 다른 환자들의 생명에도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북 소재 D대학병원 교수는 “반드시 응급실 폭력만이 전적인 이유는 아니겠지만 분명히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맞다”면서 “특히 여자 전공의는 신체적 폭력을 당했을 경우 정상적으로 업무에 복귀하는 사례가 굉장
히 드물다”고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응급실 폭력은 단순히 개인 간 폭력 행위가 아닌 응급실에 내원한 중증환자들에 대한 준 살인행위 수준의 처벌이 이뤄지도록 하고 이러한 내용이 국민들에게 알려지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병원 내 환자 보호자에 대한 출입통제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한준 공보이사는 “중환자실처럼 응급실도 보호자 인원 수를 제한하거나 면회 시간을 지정하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면서 “응급실 내 경찰이 상주하는 형태의 사업을 전국 각 병원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모색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현장 방치되면 제 2·3의 피해자 나올 것" 
  
폭행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전국적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대한의사협회에 이어 서울시의사회도 "개정된 제도들로 인해 진료실에서의 폭행 근절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며 “폭행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여전히 솜방망이 수준에 불과하다"고 난색을 표했다.
 

2015년 응급실 폭력과 폭행 대응의 이해 및 변화 조사에 따르면,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수련병원 30곳에서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전공의 중 폭력을 경험한 비율이 90%를 차지했다.
 

서울시의사회는 "실제 현장에서 경찰이 사건 현장에 출동하더라도 폭행 가해자가 환자라는 이유로 미온적으로 대처하거나 법 집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공권력의 부적절한 대응은 의료기관 폭행 재발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응급실 폭행 사건에 대해 가해자에 대해 엄정한 법 집행이 이뤄지는지 끝까지 지켜볼 것"이라며 "현재와 같이 의료 현장이 공권력 사각지대로 방치된다면 앞으로도 제2·3의 피해자가 끊임없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정숙경·정승원 기자 (jsk6931@dailymedi.com)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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