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기준 낮아지나···약값 등 '의료비 확대' 우려
미국발(發) 가이드라인 개정, 학회 “생활습관 개선 중요성 부각 계기”
2018.01.09 12:40 댓글쓰기

미국에서 고혈압 진단기준을 ‘140/90㎜Hg→130/80㎜Hg’으로 낮춘다는 입장 변화를 보이면서 국내 의학계가 바빠졌다. 관련 학회에서는 기준변경 검토에 나섰다.

일부에선 해당 기준이 국내에 적용될 경우 650만명의 새로운 고혈압 환자가 늘게 되고 약제부담이 증가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미국심장학회 연례학술회의(AHA 2017)에서는 미국심장협회(AHA)와 미국심장학회(ACC)의 고혈압 가이드라인 개정판이 발표됐다.

환자 연령대나 동반질환 등 다른 요소와 무관하게 성인 고혈압 환자의 진단기준을 130/80㎜Hg으로 하향조정한다는 내용이다. 약 14년만에 고혈압 정의를 변경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고혈압 환자는 3100만명이 늘었으며 고혈압 유병률은 31.9%에서 45.6%로 무려 13.7%나 상승하게 됐다.

기존에도 당뇨병이나 만성신질환을 동반하거나 노인 환자인 경우엔 130/80mmHg이 목표혈압으로 제시됐다. 하지만 모든 고혈압 환자에게로 일반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에도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일선 진료현장의 혼란을 우려한 학회가 공식입장을 표하고 나섰다.

기준 130/80mmHg으로 낮추면 국내 환자 1600만명

국내에선 대한고혈압학회의 2013년 고혈압 진료지침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수축기혈압과 확장기혈압 모두 120mmHg과 80mmHg 미만일 때를 ‘정상혈압’으로, 수축기혈압 140mmHg 이상 또는 확장기혈압 90mmHg 이상을 ‘고혈압’으로 정의한다.

수축기혈압이 120~129mmHg이거나 확장기혈압이 80~84mmHg 인 경우 ‘1기 고혈압 전단계’, 수축기혈압이 130~139mmHg이거나 확장기혈압이 85~89mmHg인 경우를 ‘2기 고혈압 전단계’로 분류된다. 고혈압으로 진단된 후에도 혈압 높이에 따라 ‘1기 고혈압’과 ‘2기 고혈압’으로 세분화된다.

지금도 국내 성인 고혈압 환자수는 전체의 30%가 넘는다. 여기에 고혈압 진단기준이 낮아질 경우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재정에 미치게 될 파급력이 클 것으로 보인다. 학회가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는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대한고혈압학회 조명찬 이사장은 “고혈압 진단 기준을 바꾸는 것은 사회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이 엄청난 일”이라며 “미국에서 제시된 기준을 적용하면 30세 이상 한국인 절반 가량이 고혈압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15년 공개된 국민건강영양조사(KNHANES) 자료를 기준으로 하면 30세 이상 성인에서 이전 기준으로는 전체 32.0%, 남자 35.1%, 여자 29.1%가 고혈압으로 분류되지만 새 기준을 적용하면 전체 50.5%, 남자 59.4%, 여자 42.2%가 고혈압 환자에 속한다.

강석민 총무이사는 “현재로선 민감한 부분이 될 수밖에 없다”며 “미국의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면 사회적 파급이 커질 것이다. 따라서 충분한 논의와 검토를 거칠 것”이라고 밝혔다.

“고혈압 기준 개정, 美 학계 의도에 공감”

학회는 미국이 고혈압 환자 기준 혈압을 낮춘 의도에 대해서는 공감을 표했다.


강석민 총무이사는 “2013년 제정했던 고혈압 가이드라인 역시 환자 개인 맞춤 치료를 목표로 고혈압 전단계를 1기와 2기로 구분했었다”며 “개정된 미국의 가이드라인과 이에 대해서는 일맥상통한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이 개정한 가이드라인은 의학적 근거가 충분하다”며 “여러 역학 조사나 임상 시험을 통해 기준을 강화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고혈압 치료제 처방을 늘리기 위한 제약사들의 꼼수라는 비난도 나온다. 수많은 인원이 고혈압으로 진단됐을 때 이득을 보게 되는 다국적 제약사들이 무리하게 고혈압 진단기준을 낮춘다는 것이다.

고혈압 환자의 범위가 넓어져 고혈압 환자로 진단받으면서 늘어날 의료비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혈압 130/80㎜Hg로 기존 지침에 따르면 고혈압 환자가 아니지만 새로운 미국 지침에서는 고혈압 환자로 분류된다. 

다만 미국의 개정된 가이드라인에선 고혈압 진단 기준을 낮췄을 뿐 그 기준에 따라 고혈압 약제 복용을 권고하진 않고 있다.

혈압이 130/80mmHg 이상이더라도 심혈관질환 위험도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130/80mmHg 이상인 모든 고혈압 환자들에게 약물치료가 필요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해당 혈압이라도 심혈관질환 위험지수가 낮다면 생활습관만으로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

학회 강석민 총무이사는 “지난 3년간 ACC/AHA 전문가들이 SPRINT 연구 외에도 9000여 건의 체계적 문헌고찰 (systemic review)을 거치며 고심 끝에 가이드라인을 개정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내년 가이드라인 발표…"사회적 관심 유도 계기 될 것"

당장 진료지침 개정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학회에선 신중한 논의와 검토를 거쳐 내년 초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본 등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 논의한 다음 내년 초 가이드라인 제정위원회가 진료지침 개정판을 발표할 계획이다. 그 때까진 140/90mmHg 고혈압 기준을 고수한다는 방침이다. 

강석민 총무이사는 “학회 차원에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논의하고 검토해 내년 초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것”이라며 “미국 외 일본, 아시아태평양 지역 등 해외 고혈압학회와도 의견을 조율 중”이라고 설명했다.

조명찬 이사장은 “미국 가이드라인을 따를 경우 성인의 절반에 해당하는 인구가 취업, 보험 가입 등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혈압 및 관련 순환기질환으로 발생하는 직접비용과 간접비용을 합하면 우리나라에서 연간 약 13조의 규모의 손실이 발생한다”면서 “미국의 고혈압 진료지침 개정이 우리나라에 고혈압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등 사회적 관심을 유도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