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 많아지는 조영제 그 불편한 진실
2010.12.27 03:13 댓글쓰기
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8월 경기도 일산의 한 병원에서는 가족들의 절규가 터져 나왔다. 복부 CT 촬영을 위해 검사실에 들어갔던 28세 여성 환자가 조영제 유해반응으로 검사 중 쇼크를 일으켜 사망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응급상황 대처 미흡 등 의료사고를 주장하며 의료진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지만 부검결과는 알레르기 반응인 과민성쇼크로 나왔다. 검사 전 조영에 부작용 동의서에 서명한 가족들은 그저 운이 나빠 소중한 가족을 잃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최근 조영제를 투여 받은 환자들이 검사 중 사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2007년(20,남)과 2008년(46,남) 울산, 2009년 서울(7,남), 2010년 경기(28,여) 등 언론에 알려진 사망자만 4명. 전문가들은 알려지지 않은 사망자들이 더 많으며 부작용으로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도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 조영제, 약물유해반응 통계 상위권

올해 여름 김(50,여) 모씨는 신장결석 및 요로결석 검사를 위해 지방 대학병원에서 조영제를 투여한 후 검사를 받았으나 검사 직후 의식을 잃었다. 의식불명 2일 만에 깨어나긴 했지만 김 씨와 가족들에게는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조영제를 투여받고 CT, MRI 검사를 받은 후 발진, 피부 가려움, 어지러움 등의 부작용으로 입원하거나 약을 처방받는 환자들도 점차 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지난 2007년 발표한 약물유해반응 자료에 따르면 신고건수 상위 5개 품목 중 조영제가 3개 품목을 차지했다. 품목별로는 조영제의 대표주자 격인 바이엘쉐링의 ‘울트라비스트’가 112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옴니파큐’(2위, 82건)와 ‘제네틱스’(5위, 55건)가 뒤를 이었다.

2010년 상반기에만 식약청에 보고된 조영제(이오프로마이드 성분) 부작용 신고는 1062건으로 전체 의약품 중 세 번째로 많았으며 건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서울대학교병원 약물유해반응 관리센터가 공개한 2009년 6월부터 1년간 약물별 부작용 신고 통계에서도 조영제 부작용은 항생제(420건)에 이어 2위(82건)에 올랐으며 항암제(72건)보다 많은 수치를 기록했다.

아주대학교 약물감시센터 예영민 교수는 “유해반응 보고건수가 늘어난 것은 사용 빈도가 늘었기 때문으로 해석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부작용이 늘어나는 만큼 조영제 유해반응에 대한 보다 많은 데이터가 구축돼야 연구를 통한 대응책 마련이 가능하다”고 피력했다.

●● 조영제 유해반응 예측할 수 없나

조영제 투여 후 사망한 환자들의 사인은 대부분 과민성쇼크(아나필락시스, anaphylaxis). 아나필락시스는 벌에 쏘이거나, 약물의 과민작용 등으로 알레르기 반응이 매우 심하게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주로 점막의 부종 형태로 나타나는데 점막으로 이뤄진 기도가 부종에 의해 막히면 호흡곤란으로 사망할 수 있다.

의료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조영제를 맞고 아나필락시스가 발생해 사망에 이르렀다면 그 원인을 조영제로 보는 것이 합당하나 조영제를 사용하기 전 환자나 보호자의 동의서를 받기 때문에 의료과실을 인정받기란 매우 어렵다”고 전했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조영제에 의해 나타나는 과민성 반응을 부작용이라기보다는 특정인이 약물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유해반응의 일부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을지병원 호흡알레르기내과 김유영 교수는 “보통의 부작용은 예측이 가능하지만 조영제 알레르기에 의한 과민반응은 예측이 전혀 안 되는 것으로 유해반응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환자에 따라 반응 정도가 모두 다르고 순간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를 미리 예측해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강준원 교수도 “조영제 투여 후 과민 반응이 나타난다는 것은 알려져 있지만 이를 예상하기는 어려우며 사전반응 테스트로도 판별해 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일부 병원에서는 조영제 투여 전 피부·안구 테스트를 실시하고 조영제 소량 투여 후 반응을 살피고 있지만 사전반응 테스트로 정확한 유해반응을 측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또 이런 사전반응 테스트가 법적으로 반드시 시행해야 하는 강제조항도 아니다.

아주대병원 예영민 교수는 “소량의 조영제 투여 후 반응을 관찰하는 것도 그 자체로 쇼크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권장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 “누락되는 유해반응 사례…부작용 대응 걸림돌”

최근 CT검사 빈도 수가 증가하면서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조영제 유해반응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데이터 구축 및 연구를 시작하고 있다. 유럽 영상의학회의 경우 면역학적 기전에 초점을 둔 연구데이터들을 발표하고 조영제 투여가 필요한 검사에 대한 지침을 발표하고 있다.

연구가 아직 초기단계에 불과하고 축적된 데이터가 많지 않아 강제력 없는 수준이지만 유해반응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조영제 유해반응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낮다는 지적이다.

서울소재 국립병원 A 영상의학과 과장은 “보고되지 않는 유해반응, 특히 중증 이상의 유해반응 건수가 상당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A 과장은 “대형병원의 경우 감시체계 등이 잘 갖춰져 최근에는 유해반응 보고가 잘 이뤄지고 있지만 이런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중소병원들은 병원 내에서 쉬쉬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을지병원 김유영 교수는 “병원마다 유해반응 감시체계를 반드시 갖추도록 하고 이 결과를 모든 병원이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환자들에게 문진하고 과거력을 청취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그에 더해 환자가 가진 알레르기 정보 등이 자동 공유된다면 효과적으로 부작용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서울아산병원 강준원 교수도 “조영제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어떤 조영제가, 어떤 환자에게, 얼마만큼의 양과 속도로 주입됐는지 정확한 조사와 보고가 필요하다”면서 “그래야만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화학적으로 더 안전한 제품을 구별해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영제 종류 및 부작용 경험 환자가 갖고 있었던 질환, 유해반응의 정도, 처치 후 결과 등에 대한 종합적인 데이터가 구축·공유돼야 위험요인을 정확히 찾아내 적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 사망 확률 1/10만, 그래도 대비책 마련 시급

조영제 시판 제약회사들이 밝히고 있는 과민성쇼크 발생빈도는 10만분의 1. 과거 조영제들에 비해 현재 시판되고 있는 조영제는 부작용 발생빈도가 크게 줄었으며 임상적으로 안전하다는 게 제약사들의 입장이다.

그러나 확률적으로는 극히 드문 경우지만 부작용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으므로 조영제 부작용에 대해 환자, 보호자를 비롯해 의료진의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강준원 교수는 “아나필락시스에 의한 사망을 막으려면 검사실에서 발생하는 응급상황에 대비해 의료진의 접근성을 개선하고 주치의 등이 촬영실에 상주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CT촬영실의 위치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예영민 교수는 “응급처치를 위해 CT촬영실의 위치를 조정하고 촬영기사만 상주하는 상황을 지양해야 한다”면서 “촬영실 위치 및 의사 상주 부분은 병원평가 등에 평가항목으로 지정해 관련 지침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의료진이 아닌 방사선사 등이 조영제를 투여하는 것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대법원은 지난 2000년 “방사선사가 의사의 지시에 따라 MRI 검사에 필요한 조영제를 주사한 후 환자가 사망했다면 의사와 방사선사에 대해 3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내리는 것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당시 법원은 관행적인 방사선사 조영제 투여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안전성이 보장되지 못한 의료행위는 국민건강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부작용 없는 약물은 존재하지 않으며 조영제 투여에 따른 심각한 부작용 발현 빈도는 10만분의 1로 극히 드물다. 확률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정석의 치료가 그 성과 면에서 안전하다면 조영제 사용을 꺼려할 이유가 없다.

이것은 비단 조영제 문제에 국한되는 사항은 아니다. 그러나 환자들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를 수치로만 따질 수는 없다. 영상의학의 발달에 따라 앞으로 조영제 사용빈도는 더 늘어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해반응 빈도를 더 줄일 수 없다면 그에 적합한 대응책 마련에 의료진과 환자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겨울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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