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한해진 기자]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 이 시행된 지 1년 반이 지났다. 법 시행 후 29만9000여 명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고 실제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한 환자는 5만7000여 명에 달하는 등 제도가 조금씩 자리잡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대만에서 아시아 최초로 지정된 사전돌봄계획(ACP: Advance Care Planning) 가이드라인에 국내 의료진이 공동 연구자로 이름을 올렸다. 사전돌봄계획은 연명의료계획서와 사전연명의료 의향서 둘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연명의료’라는 단어만 알려진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하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이미 2017년 가이드라인이 완성됐고 최근에는 미국과 아시아에서도 각국 실정에 맞는 가이드라인 구체화에 나서는 중이다. 데일리메디가 사전돌봄계획 컨센서스에 참여한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김선현 교수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Q. 이번에 참여한 ‘사전돌봄계획 컨센서스 가이드라인’은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개념인 것 같다
사전돌봄계획은 간단하게는 ‘ACP’라고 부른다. 환자는 임종을 앞둔 상황에서 본인이 희망하는 의료행위를 선택할 수 있고, 의료진은 그 결정에 따른다. 다만 작성은 본인과 의료진의 협의로 진행된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쓰고 있는 연명의료보다 상위 개념이다. 임종을 앞둔 환자 돌봄계획 정의와 의미, 권장되는 구성요소, 역할, 시기, 정책, 평가, 성과, 구체적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현재 한국, 대만, 일본, 싱가포르, 홍콩의 전문가가 델파이 기법을 통한 의견 수렴을 바탕으로 컨센서스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돌봄 과정에서 개인, 의료진, 가족의 역할과 법률 및 행정적 절차, 의료이용 정도 및 의사소통 평가 등 상세한 내용들이 모두 전문가들 논의 하에 직접 결정되기 때문에 다양한 영역의 활용을 기대하고 있다.
Q. 유럽에서는 이미 가이드라인이 완성돼 있다고 들었는데 차이는 무엇인가
유럽 가이드라인의 기본 틀을 가져와 그것이 동아시아 국가에서도 적용이 가능한지, 문화적 특성을 반영해 재구성하게 된다. 특히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가족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등 의사 결정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너무 늦게 병원 찾는 환자들, 형식적 절차 아쉬움"
"의료진이나 환자를 위한 맞춤형 교육, 홍보 확대 필요"
Q. 아시아 문화권과 그 외 국가에서 나타나는 연명의료 절차 혹은 실태의 차이가 있는지
아시아 내에서도 연명의료 절차는 국가마다 다르다. 대만이나 우리나라처럼 법률로 정해진 곳이 있고 일본처럼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국내의 경우 2003년도에 환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미리 작성했던 것이 1%에 불과했지만 현재 30%나 될 정도로 늘어났다. 그러나 아직 용어나 서식에 대해 알지 못하는 환자가 많고 심지어 의료진이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Q.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후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나타나고 있으나 의료기관에서는 혼란이 많은 것 같다. 의료진이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지
초반에는 너무 많은 서식으로 혼란이 있기도 했다. 환자 본인이 의식이 명료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으면 간단하지만 가족이 다 모여 의논해야 할 경우 일일이 모아 설명하고 서류에 사인을 받는 절차가 힘들었다. 올 3월 개정으로 서명을 받아야 하는 가족의 범위가 줄긴 했으나 여전히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
또 하나는 이런 과정이 너무 늦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질병이 악화됐을 때, 환자 본인 의식이 없을 때 부랴부랴 절차를 밟기 시작하면 의료진 뿐 아니라 환자 가족들도 힘들다. 연명의료를 결정할 때는 환자 본인이 상태를 잘 알아야 한다. 이 시점에서 어떤 치료가 본인에게 유익한지, 연명치료가 도움이 될지 여부를 의료진에게 충분히 들어야 한다. 그리고 연명의료 절차와 관련한 본인의 가치관, 가족들의 의견 등을 고려해 종합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좋고 중요한 사안인 만큼 결정을 바꿀 수 있는 시간도 보장돼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병원을 한 번 방문하는 것만으로 끝날 수는 없다. 그런데 많은 환자분들이 너무 늦게 연명의료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연명의료가 무엇인지 아는 분도 별로 없다. 상태가 나쁜 경우 가족들이 법률적 서식을 위해 억지로 모여 작성하는 경우도 많다. 당연히 가족들 혹은 의료진과의 갈등, 결정에 대한 후회가 남을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Q. 연명의료 논의에 있어 가장 시급한 문제가 무엇인지 꼽는다면
‘사전돌봄’과 같은 포괄적인 개념보다는 연명의료 결정이라는 용어가 더 익숙해져 있는데 보다 큰 틀에서, 조금 더 일찍 관련 논의가 이뤄지면 좋겠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전돌봄에 대한 결정이 너무 늦은 시기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애초 의도하는 환자의 자율성, 스스로의 존엄, 선택, 이런 것들을 고려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 때문에 아직은 더 많이 알려져야 하는 단계라고 본다. 의료진이나 환자를 위한 맞춤형 교육, 홍보를 통해 좀 더 이른 시기에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그래서 환자 가치나 삶의 목적에 맞는 것을 되돌아보고 가족들과 제대로 논의하고 스스로 결정을 하게 되는 문화가 형성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