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신약 'GLP-1' 전방위 산업 영향 촉각
비만·당뇨치료제 효능 확산…J&J·인튜이티브서지컬 등 해명 진땀
2024.01.08 16:05 댓글쓰기

2023년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의약품을 꼽으라면 단연 비만 및 당뇨병 치료제인 GLP-1(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 유사체가 꼽힌다.


늘씬한 몸매와 건강을 유지하고 싶은 현대인 욕구는 GLP-1 유사체 판매율에 고스란히 반영됐고, 아직 한국에서는 구경조차 어려울 정도로 세계적 품절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GLP-1 유사체를 생산하는 미국 일라이릴리와 덴마크 노보노디스크는 생산공장을 빠르게 늘리고 있지만 2024년 말이 돼서야 공급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GLP-1 유사체 광풍(狂風)의 영향은 관련 산업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영역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해외에서는 GLP-1 유사체와 약간의 연관성이라도 있는 기업이라면 투자자들에게 자신들 아이템이 건재하다는 것을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비만수술 수요 감소, GLP-1 복용기간 짧아 장기 영향은 의문"


투자자들 의심은 GLP-1 유사체로 인해 비만 인구와 당뇨병 환자가 대폭 줄어들 것이란 예상에서 시작한다. 이에 비만과 당뇨병 관련 의료기기 업계부터 들썩이기 시작했다. 


미국 헬스케어 의료기기 장비산업 관련 상장지수펀드(iShares US Medical Devices)는 지난 8~10월 22% 이상 하락했다.


일례로 존슨앤드존슨은 비만수술 장치의 매출 성장이 둔화하며 올해 3분기 의료기기 매출이 목표에 미치지 못했다.


존슨앤드존슨 경영진은 GLP-1 유사체 타격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의료기기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셉 월크 존슨앤드존슨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비만인 사람 중에는 현재 고관절 및 무릎 교체 수술과 일부 심혈관 수술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이 비만에서 벗어나면 이들 수술에 대한 새로운 고객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빈치’ 시리즈로 수술로봇 업계의 독점적 지위에 위치한 미국 인튜이티브서지컬도 “GLP-1 유사체 영향으로 비만수술 수요가 위축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비만 환자가 1~2년 이상 GLP-1 유사체 투여를 계속할 수는 없을 것으로 내다보며 과도한 우려를 경계했다.


실제로 미국 의약품관리업체 프라임테라퓨틱스이 지난해 7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월~12월까지 비만으로 GLP-1 유사체를 처방받은 환자 중 32%만 1년 이상 투여를 계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GLP-1 비용 고가, 장기투여 걸림돌 작용


비만 환자들이 GLP-1 유사체 투여를 장기간 못하는 이유는 비싼 가격 때문이다. 


노보노디스크 비만치료제 위고비는 한 달 투여에 1349달러(약 176만원)의 비용이 든다. 


지난 11월 미국과 영국에서 승인받은 일라이릴리 비만치료제 ‘젭바운드’도 가격을 많이 낮췄지만 한 달 투여에 1059.87달러(약 138만원)로 책정됐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일반 환자들이 접근하기 부담스러운 가격 탓에 비만에 대한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전세계 최대 의료기기 기업인 메드트로닉도 같은 이유로 투자자들 우려를 일축하고 있다.


제프리 마샤 메드트로닉 최고경영자(CEO) 지난 11월 실적발표에서 “GLP-1 유사체가 단기, 그리고 장기적으로도 메드트로닉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비만 환자들이 GLP-1을 1년 이상 복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국 내 비만수술에 대한 현재의 역풍이 향후 몇 분기 내 안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GLP-1 복용자, 연속혈당측정기 사용 병행


당뇨병 의료기기 업계 역시 투자 위축과 이를 방어하기 위한 기업들 해명이 이어지고 있다.


연속혈당측정기(CGM)를 생산하는 애보트는 GLP-1 유사체를 투여하면서 당뇨병 환자들의 인슐린 투여가 늦춰지겠지만, 결국에는 인슐린을 투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로버트 포드 메드트로닉 CEO는 “당뇨병 환자들이 장기적으로 GLP-1 유사체와 함께 혈당 측정기를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애보트가 지난 9월 발표한 2019~2022년 미국의 약국 데이터 분석결과에 따르면, GLP-1 유사체를 처방받은 사람들이 애보트의 연속혈당측정기인 ‘프리스타일 리브레’를 더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GLP-1 작용제 처방이 증가할수록 프리스타일 리브레 사용자도 증가하고 있으며, 프리스타일 리브레 사용자 중 GLP-1 작용제 처방 비율이 증가하는 상보적 역할을 했다.


미국 헬스케어 기업 덱스콤도 지난 9월 미국 의약품관리업체 옵텀의 보험청구 건수를 분석해 “GLP-1 유사체를 처방받은 당뇨병 환자들의 연속혈당측정기 사용이 2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인슐린 펌프 대표기업인 미국 인슐렛은 금년 5월 330달러에 달했던 주가가 5개월만인 지난 10월 약 127달러까지 추락하며 위기감이 고조됐다.


인슐린 펌프는 지난해 미국 내분비학회가 제1형 당뇨뿐 아니라 제2형 당뇨병 환자에게도 권고하는 등 중요성이 대두되던 상황에서 GLP-1 유사체가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이에 더해 미국 뉴욕주립대 연구팀이 지난 9월 GLP-1 유사체가 제1형 당뇨병 환자의 인슐린 투여를 줄이거나 중단하게 할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며 우려감이 한층 가중됐다.


짐 홀링세드 인슐렛 CEO는 8월에 열린 실적발표에서 “당뇨병 환자가 급증해 인슐렛 전체 매출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분위기 전환을 도모했다. 이후 인슐렛의 주가는 11월말 기준 188달러 선까지 회복했다.


식품 업계도 영향 촉각…의약품 유통업은 활황


식품 업계도 때아닌 풍파를 맞았다. 특히 GLP-1 유사체가 인슐린 분비를 유도하는 것 외에도 중추신경계를 작용해 식욕을 억제하면서 탄산음료, 초콜릿 등 가공식품 소비가 줄 것이라는 심리가 촉발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GLP-1의 직접적인 영향이 나타나지 않았으며 식품업계도 관망하는 분위기다.


휴 존스턴 전(前) 펩시 CFO는 지난 10월 “체중감량 의약품에 의한 어떤 영향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으며, 초콜릿 제조사 허쉬의 미셸 벅 CEO도 같은 달 실적발표에서 “GLP-1이 현 시점에서 우리 사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카콜라와 커피 제조·유통업체인 큐리그 닥터페퍼 역시 각각 탄산음료와 커피 소비에 GLP-1 유사체의 영향은 없다고 해명했다.


미국 식품기업 콘아그라는 지난 10월 “체중감량 약물의 사용 증가로 식품 소비 패턴에 변화가 있을 경우 스낵 일부의 크기 변경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 최대 소매업체 월마트의 존 퍼너 미국사업부 CEO는 “GLP-1 유사체를 복용하는 고객과 복용하지 않는 고객들의 구매 습관을 비교분석한 결과, GLP-1 유사체를 복용하는 고객들의 장바구니 크기가 눈에 띄게 줄었다”면서도 “GLP-1 유사체 영향에 대해 확실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경계했다.


모든 업계가 GLP-1 유사체 피해자인 것만은 아니다. 


미국 의약품유통업체인 센코라(舊 아메리소스버겐)와 카디널헬스는 지난 11월초 연달아 발표한 실적 발표에서 “GLP-1 유사체 유통으로 매출 성장을 이뤘다”고 밝혔다.


센코라는 “미국 사업 매출 성장이 13%에 달했다. GLP-1 유사체가 아니었다면 10%에 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보노디스크의 투자사 관계자는 “시장에서는 GLP-1 유사체와 관련해 먼저 움직인 다음, 질문과 평가는 나중에 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실제로 누가 GLP-1 영향을 받을지, 또 그 영향이 언제 숫자로 증명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고 분석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송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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