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속병원 문제로 4번째 수업거부 '관동의대'
1994년 이후 20년 답보상태…최대 피해자는 '학생들'
2013.11.13 20:00 댓글쓰기

관동대학교 의과대학이 무려 20년 가까이 부속병원 문제를 놓고 학생들과 갈등을 벌이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선후배들은 ‘수업거부’라는 극단의 선택을 되풀이 했다.

 

부속병원 문제 해결을 위한 관동의대 학생들의 투쟁사는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관동대학교는 지난 1994년 ‘2년 이내 강릉에 부속병원을 착공한다’는 조건으로 의과대학 신설을 승인 받고 1996년부터 신입생 모집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후 공사 시점이 수 차례 연기되면서 급기야 본과생들이 임상실습을 받을 곳이 없어 타교 학생들과 더불어 수업을 받는 처지가 됐다.

 

당시 학생들은 부속병원이 없어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과 아산재단 강릉병원, 원주 기독병원 등에서 떠돌이 실습을 감수해야 했다.

 

참다못한 학생들은 1997년에 이어 1999년 3월에도 전면 수업거부 투쟁에 돌입했다. 부속병원 조기건립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교육권을 침해받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온 결과였다.

 

수업거부 사태가 수 개월 넘게 지속되면서 집단유급 사태에 놓이게 되자 학교 측은 부랴부랴 부속병원 개원 계획을 발표하며 수습에 나섰다.

 

학교는 570억6000만원을 들여 강릉시 내곡동 관동대학교 내 8만2500㎡ 부지에 500병상 규모의 병원을 건립한 뒤 단계적으로 증축해 나간다는 로드맵을 공개했다.

 

1999년 6월 부속병원 설계 계약을 체결하고 2000년 4월까지 실시 설계를 마친 뒤 2000년 5월 공사를 시작, 2002년 9월 개원이라는 구체적 일정까지 제시했다.

 

뿐만 아니라 학교법인 소유의 수익용 부동산을 매각하고, 명지학원 수익 사업체인 명지건설에서 시공 공사대금 지연으로 인한 공사중단을 방지한다는 재원조달 방안까지 내놨다.

 

학생들은 학교 측이 제시한 부속병원 건립 계획을 수용, 수업에 복귀했지만 이 후에도 학교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결국 2년 후인 2001년 3월 관동의대 학생들은 또 다시 수업거부 투쟁에 돌입했다. 어렵사리 착공에 들어간 부속병원 공사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아 당초 약속한 2002년 개원이 어렵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IMF로 인한 자금난 때문에 공사가 늦어지고 있다”며 “2003년 3월까지 완공하겠다”고 학생들을 설득했다.

 

관동의대 부속병원 문제는 명지병원 개원과 함께 일단락 되는 듯 했다. 실제 2003년 200병상이던 명지병원이 620병상으로 증축하면서 관동대학교 의료원 체계로 직제를 개편하는 등 희망의 싹을 틔웠다.

 

그해 명지병원 대강당에서는 관동대학교 의과대학 학위수여식이 거행됐고, 2004년부터는 임상의학관을 개관하며 본과 2학년 학생들의 강의가 처음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2009년 인천사랑병원 이왕준 이사장이 명지병원을 전격 인수하면서 관동의대 부속병원 문제는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물론 이왕준 이사장은 관동의대 협력병원으로써의 역할에 충실, 취임 당시 “국내 10대 의대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의대생 교육시설에 대대적 투자를 단행했다.

 

그러나 학교 측과 임상실습비 등으로 갈등을 빚었고, 급기야 2013년 1월 전격 협력병원 계약이 종료되면서 관동의대 학생들은 또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교육장소를 물색하던 학교는 광명성애병원과 협력병원을 체결하고 이 곳에서 의대생 교육을 실시,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반발을 샀다.

 

1년 넘게 미인가 시설에서 교육을 받아 온 학생들은 급기야 지난 11일 등록거부를 선언, 부속병원 문제를 둘러싼 관동의대 학생들의 투쟁은 10여 년 만에 재현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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