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치료 피하는 암세포, '분자 접착제'로 잡는다
미국 듀크·MIT 연구진, 내성 차단 저분자 화합물 발견
2019.06.11 17:15 댓글쓰기
 
두 개의 Rev1(청색) 사이에 달라붙은 JH-RE-06(분홍색)
두 개의 Rev1(청색) 사이에 달라붙은 JH-RE-06(분홍색)[듀크대 페이 저우 교수 제공]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암 환자를 화학 치료하다 보면 암세포의 약물 내성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암세포가 약물 내성을 갖게 되면 일시 호전되는 듯했던 병세도 다시 악화한다. 그래서 암 사망의 약 90%는 암세포의 약물 내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듀크대와 매사추세츠 공대(MIT) 과학자들이 화학치료제에 대한 암세포의 내성을 차단하는 신종 분자물질을 발견했다.
 

JH-RE-06로 명명된 이 저분자 화합물은, 암세포가 내성을 획득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는 Rev1 단백질을 무력화하는 것으로 동물실험에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의 연구결과를 담은 보고서는 권위 있는 학술지 '셀(Cell)' 최근호에 실렸다.

 

이 보고서 작성에는 듀크대 의대의 페이 저우 생화학과 교수, MIT 생물학과의 그레이엄 워커 교수와 마이클 헤먼 교수 등이 공동 수석저자로 참여했다.
 

듀크대가 10일(현지시간) 온라인(링크)에 공개한 연구 개요에 따르면 시스플라틴(cisplatin) 같은 화학치료제는, 분열하는 암세포의 DNA 복제 과정에 작용해 암세포의 증식을 막는다.
 

약물의 작용으로 DNA에 손상을 입어 복제가 장기간 중단되면 암세포는 분열을 멈추고 사멸한다. 화학치료를 처음 투여했을 때 일부 사례에서 치료 효과를 보는 건 이런 메커니즘 때문이다.
 

그런데 화학치료가 길어지면 암세포의 DNA에 돌연변이가 생겨, 암세포가 DNA 손상 상태에서도 증식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이렇게 내성이 생기면 화학치료는 실패할 공산이 크다.
 

이런 식으로 암세포가 내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손상통과합성(TLS)'이라고 하는데, 오래 전부터 암 치료법 연구의 주요 표적이 돼 왔다.
 

연구팀은 Rev1 단백질을 찾아낸 데 이어 유전자 조작으로 작용을 억제하는 것까진 성공했지만 저분자 화합물을 써서 동일한 효과를 내는 덴 계속 실패했다. 화합물이 작용할 만한 '결합 포켓(binding pocket)'을 Rev1에서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무려 1만여 종의 저분자 화합물을 테스트한 끝에 Rev1을 잡을 수 있는 후보 물질로 JH-RE-06를 찾아냈다. 그런 다음 X선 결정학 기술로 Rev1과 JH-RE-06의 상호작용을 시각화해 효능을 확인했다.

JH-RE-06는 '분자 접착제(molecular glue)' 같은 작용을 했다.


Rev1가 JH-RE-06를 만나면, 다른 Rev1와 결합해 2분자체(dimer)로 바뀌고, 그 과정에서 결합 포켓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2분자체 형태로 묶인 Rev1은 암세포의 형태 변이와 생존을 돕지 못했다.
 

연구팀은 인간 흑색종을 이식한 생쥐에 JH-RE-06와 시스플라틴을 함께 투여했다. 그랬더니 암 종양의 성장이 멈추고, 생쥐의 잔여 수명도 길어졌다.
 

저우 교수는 "처음 투여했을 땐 화학치료도 일부 효과를 보지만 암세포가 내성을 갖게 되는 게 문제"라면서 "새로운 접근법의 장점은, 장난꾸러기 변신 요정(암세포)을 꼼짝 못 하게 얼려서 영구히 제거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공동 수석저자로 참여한 듀크대의 지용 홍 화학과 교수는 약물학적 특성을 강화한 새 JH-RE-06 버전을 연구팀이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Rev1 단백질을 개발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중대한 원리 증명(proof of principle)을 해낸 것"이라면서 "하지만 JH-RE-06를 갖고 임상에 쓸 만큼 검증된 후보 약물을 개발하려면 아직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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