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이고 싶은 환자, 신해철 피하고 싶은 병원
유명인 후광효과, 수사→결론 일사천리…의료분쟁 접근방식 변화
2015.04.03 09:20 댓글쓰기

[기획 1]故 신해철씨 사망원인에 대한 수사 과정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일반인 의료분쟁 당사자들이다. 논란이 된 해당 병원을 사건 접수 직후 압수수색한 경찰의 신속한 초동 수사와 언론의 관심 덕에 드러나는 여러 의혹, 빠른 수사 결과 발표 등은 일반인 의료분쟁 당사자에게 너무나 낯선 모습이다. 신 씨의 수사과정을 살펴보면 지난해 10월 27일 저녁 사망한 이후 31일 유족은 신씨의 장협착 수술을 집도한 서울 송파구 모 병원장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은 바로 다음 날인 지난 11월 1일 해당 병원을 압수수색했으며, 의무기록과 수술 사진 등을 확보해 분석 작업에 돌입했다. 가족들의 뜻에 따라 같은 달 3일 오전 11시 15분부터 오후 3시 10분까지 약 4시간 동안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이 진행됐다. 곧바로 1차 부검 결과 브리핑이 이뤄졌고, 이를 통해 소장의 천공 발생 등의 단서가 밝혀졌다. 유족의 고소부터 부검 결과까지 총 3일이 소요됐다.[편집자주]

 

“왜 우리는 신 씨와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아이의 사건을 경찰이 그렇게만 해줬어도 덜 억울했을 것입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주최한 ‘제13회 샤우팅 카페’에 참석한 김기후 씨가 한 말이다. 김 씨의 아들 유비(7) 군은 2013년 열감기로 병원에 입원해 다음날 아침 사망했다.


김 씨는 아들의 사망에 “해당 병원 소아과 원장이 당일 오후 회진만 했어도, 간호사들이 맥박이나 혈압 확인만 했더라도 지금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의료진의 치료 소홀을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수사 의뢰 후 6개월 동안 담당 형사를 변경했고, 대한의사협회 자문과 의사 및 간호사의 진술 한번으로 사건을 종결시키려 했다. 그는 “아들 부검만 석 달, 의사 자문도 석 달 반이 걸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처럼 신 씨와 일반인 의료분쟁 당사자가 일반적으로 겪는 과정은 판이하다.

 

우선, 수사 진행 속도가 다르다. 일반적인 의료분쟁의 경우 경찰에 사건을 접수하면 적어도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흘러서야 수사가 개시된다. 수사는 접수된 순으로 시작되는데, 업무량이 많아 한 달 이상을 기다리는 게 보통이다.


법무법인 세승 신태섭 변호사는 “피해자가 공인이고 사회적 관심이 높아 경찰에서도 접수 당일 수사를 진행하는 발 빠른 모습을 보인 것 같다”고 전했다. 경찰의 신속한 대응은 의료사고 피해자들이나 유족들의 부러움을 산 동시에 사회적 공인에게만 특혜 수사가 이뤄진다며 사법기관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

 

유명인 의료분쟁 과정 부러운 일반 국민


보통 의료분쟁 해결방법에는 의료인과 환자가 스스로 합의하는 것과 소비자단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통한 조정, 형사고소 또는 고발, 민사소송 제기 등이 있다.

 

고소 및 소송은 최후의 해결방법으로 환자와 의료인 모두 상당한 시간과 돈이 들 수밖에 없을뿐더러 정신적 고통도 크다.


더구나 의료사고를 겪었다며 경찰로 뛰어가 해당 의료기관을 바로 고소하기도 힘들다. 형사고소의 경우 수사 당국의 수사권에 기대 증거 수집이 가능하지만 ‘죄형 법정주의’라는 법이념에 법률 적용이 까다롭다. 무엇보다 경찰의 수사 의지가 크지 않아 효과적 해결방법이 아니라는 게 환자들의 목소리다.


이러한 탓에 피해자 측이 의사의 잘못을 증명할 수 있는 명백한 증거를 입수해 경찰을 설득할 능력이 있지 않는 한, 형사고소를 먼저 하지 않는다. 무혐의 처분이 나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민사고소를 한 후 유리한 판결이 나오면, 그를 바탕으로 형사고소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환자단체연합 안기종 대표는 “의료사고가 의심돼 형사고소를 할 경우 환자와 의사를 한 차례씩 불러 조사하고 감정 촉탁을 맡긴 후 무혐의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인 과정이다. 수사 당국의 적극적인 수사권 행사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강한 수사 의지를 방증하는 경찰의 압수수색 역시 ‘이례적’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압수수색 현황 관련 정확한 통계자료는 가지고 있지 않다”며 “고소장을 접수한 후 증거확보를 위해 사안에 따라 압수수색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료 분쟁에 있어 경찰의 압수수색은 생경하다는 게 일반인 의료분쟁 당사자들의 주장이다. 실제, 환자단체연합이 주최하는 ‘환자샤우팅카페’에서는 경찰청 의료사고 전담 수사기관이 설치돼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경찰이나 검사가 의심스러운 부분을 압수수색 등을 통해 능동적으로 조사하기 위해서는 의료 지식에 대한 전문성과 의지가 전제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의료사고로 자식을 잃은 한 유족은 “의료사고는 어쩔 수 없다며 사건을 종결시키는 경찰의 불성실한 태도에 분노한다. 억울하면 민사로 해결하라는 식”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 의료분쟁 전문가 역시 “형사소송이 제기돼도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것은 흔치 않다. 아주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압수수색 자체가 경찰에게 부담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신씨 사건에서 압수수색이 이뤄진 경위에 대해 “언론의 이목이 집중된 만큼 철저하게 수사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안 대표는 “지금 경찰의 모습이 환자들이 바라고 기대했던 모습이다. 좋은 선례가 만들어졌다고 본다”며 “다른 일반인에게도 이 같은 수사 의지를 보여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분쟁 두 얼굴…변화하는 환자권리, 커지는 사회 갈등

 

신 씨의 사건을 비롯해 최근 여러 의료사고들이 언론에 보도되며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도 달라지고 있다. 병원과 의료진에 대한 불신과 부정적인 여론도 확산됐다.


신 씨를 진료한 의사는 악인으로 낙인 찍혔고 악의적인 댓글이 달렸다. 그가 운영하던 병원과 의료진들은 부도덕한 집단으로 일부 매도되기도 했다.


의료전문 변호사들조차 소송과정과 진행경과를 언급하며 의료진과 병원을 의심한다.


한 의료전문 변호사는 “의료소송 전 상담에서 변호사들이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진료기록부, 수술동의서 등 병원에서 작성한 자료를 확보하라는 것”이라며 “사고가 생기면 기록부부터 고친다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 변화는 환자의 안전과 권리가 더욱 보호되고 신장되고 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지만, 그만큼 사회적 갈등과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관계자는 “의료사고에 대한 환자들의 태도와 인식이 더욱 적극적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신 씨를 집도한 의사는 실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까. 유명인의 후광효과로 병원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악의적으로 새로운 치료법을 시험하거나 신 씨를 괴롭히고 싶었던 걸까.


그 의도가 어떻든 분명한 것은 사고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주변 의사들도 “어느 누가 자신의 환자가 죽거나 잘못되길 바라겠느냐”며 “의료행위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유로 인해 결과적으로 문제가 발생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법원 또한 의사의 진료행위에 대해 상당한 재량권을 인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진료에 있어 환자상황과 의료수준, 지식과 경험에 따라 의사가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진료방법을 선택할 재량을 가지고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면 결과를 놓고 어느 하나만 정당하고 다른 조치는 과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무엇보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남는 건 고통뿐이다.


환자 쪽에서는 의료사고 특성상 혐의 입증이 쉽지 않고, 의사 편에서는 유죄 판결이 내려질 경우 당사자는 명예 실추뿐만 아니라 의사 자격까지 박탈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분쟁으로 인한 다툼이 조정이나 소송으로 결론 내려지더라도 그 앙금이 남을 수밖에 없다.


환자단체연합은 “피해자와 유족 상당수는 의료사고에 대한 병원의 상세한 경위 설명이나 진심어린 사과만 있어도 의료인을 형사고소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억울한 마음에 고소까지 결심한 이들에게 경찰의 비전문적이고 미흡한 수사는 더 큰 분노와 상처를 남긴다”고 지적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추호경 원장은 “의료사고 발생시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를 따지기 보다는 ‘이런 사고가 왜 발생했는가’라는 관점에서 철저한 원인 규명과 앞으로의 예방법을 모색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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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윤·민정혜·오준엽 기자 (webmaster@dailymedi.com)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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