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의 해 2013년, 수술실에서 희망 꿈꾼다'
인술(仁術)로 새해 아침을 여는 칼잽이 의사들
2013.01.01 20:00 댓글쓰기

임진년이 지나고 계사년을 맞았다. 연말연시를 맞아 다들 한해를 정리하며 차분히 보내지만 잠시의 여유가 허락되지 않을 정도로 바쁜 곳이 있다. 바로 병원이다. 무정한 병마는 연휴를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환자를 보는 의료진 역시 수술방에서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맡는다. 데일리메디가 2012년 끝자락, 2013년 출발선에서 수술방을 지키는 전사들을 만났다.[편집자주]

 

#1. 의사 이상의 의사 '허 준'(한강성심병원 허준 교수)

 

조선시대 최고 명의 허 준. 그가 다시 환생한 것일까. 한림대학교 한강성심병원 화상센터에서 중증 화상환자에게 의사 이상의 의사인 이가 있다. 겉모습은 다소 투박해 보이지만 손과 가슴이 따뜻해 환자 마음까지 치유해 주는 이 의사 이름이 바로 허 준[사진 下]이다. 특히 소아 화상환자들에게는 산타할아버지 보다 더 반가운 사람이 허 준 교수다.

 

지난 12월 말. 모든 사람들이 연말연시를 즐기고 있는 동안 한강성심병원 화상센터 수술실에서는 5살 여자 아이의 7번째 수술이 진행됐다. 이날 피부 이식을 마친 허 준 교수가 밝은 얼굴로 수술실을 나왔다.

 

이 소아환자는 촛불이 옷에 옮겨 붙으며 전신 61%의 화상을 입었다. 한쪽 손의 화상을 1%로 보고 20%가 넘으면 중환자로 분류된다. 때문에 전신에 화상을 입은 이 소아환자는 장기 손상은 물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까지 심각한 상태였다. 

 

전신 20%에 화상을 입으면 중환자로 분류되는데 61%는 도대체 어떤 상태인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화상환자의 화상범위와 위험도는 비례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수치를 넘어서면 생명과 직결되는 위급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소아 환자의 경우도 허 준 교수 덕에 죽을 고비를 4번이나 넘겼다. 아직 안심할 수 없는 단계지만 차츰 회복을 보이고 있다. 허 준 교수는 “아직 2~3번의 수술이 더 남아있지만 환자가 잘 견뎌주고 있어 고맙다”고 했다.

 

보통 병원에서는 환자가 퇴원하면서 “그동안 정성껏 치료해줘서 고맙다”고 의료진에게 인사를 하지만 이 화상센터 허 준 교수의 환자들은 인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간다. “치료 잘 견디고 건강하게 퇴원해줘서 고맙다” 허 준 교수는 무사히 퇴원하는 환자가 마냥 고마워 항상 이런 인사를 건낸다. 

 

허 준 교수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에 대해 돌직구를 날렸다. “정치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건강보험수가. 감기환자 표는 많지만 화상환자 표는 적기 때문에 보장이 안되는 것”이라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허 준 교수는 “감기 환자는 죽지 않지만 중증 화상환자는 생명이 위독하다. 이런 중증도 환자에게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화상환자에게 가장 많이 쓰이는 메디폼은 이틀에 한 장 보험이 적용된다. 하지만 화상환자는 진물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이틀에 한 장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손바닥 크기의 메디폼 한 장이 1%의 면적이라면 중증화상 환자의 경우 20%에 화상을 입으면 하루 메디폼 가격만 19만 원 다음날은 20만원 이틀에 39만원이 든다. 일주일에 메디폼 가격만 140여만 원이 드는 셈이다. 

 

허 교수는 “이 아이처럼 전체 50%를 넘는 환자는 메디폼 가격만 일주일에 몇 백만 원이 든다”며 “중증화상환자에게 급여를 확대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인터뷰 내내 허 준 교수에게서는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 준 교수는 “중증화상환자는 가정형편이 좋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치료나 수술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환자의 형편보다 환자의 치료가 우선시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수술부터 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한강성심병원의 미수금은 해마다 증가하지만 아픈 환자를 두고 치료비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다고 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환자 보호자가 면담을 신청했다.

 

허 교수는 이렇게 진료시간 외에도 환자나 보호자가 면담을 요청하면 응한다. 당직도 많고 수술도 많아 가정에 할애하는 시간이 적어 항상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그. 하지만 의료진의 가족이면 감내해야할 몫이라고 했다.

 

2013년 새해에 허 준 교수가 추구하는 목표는 ‘지금 보다 행복해지기’다.  허 교수는 “우리가족도 환자도 의료진도 모두 행복한 새해를 맞길 바란다”고 전했다.

 

#2. "2013년 더 많은 환자들 가치있는 삶 되찾길"(순천향대병원 김용진 교수)

 

“벌써 한 해가 흘렀나요? 하루도 쉬임없이 달려왔더니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봅니다.” 2012년 마지막날, 그리고 2013년을 맞이하기 위해 모두가 들떠있는 그 날도 그는 묵묵히 수술을 끝내고 수술실을 나섰다.

 

순천향대병원 외과 김용진 교수[사진 右]. 김 교수는 위를 전공하면서 고도비만수술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혹자는 촌각을 다투는 현장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김 교수에게는 안타까운 시선에 지나지 않는다.

 

김용진 교수는 “뉴질랜드 환자였습니다. 몸무게가 220kg에 달하는 환자였는데 수술로 90kg까지 감량하게 됐습니다. 환자는 그 나라에서 수면무호흡증 등 고통을 겪으면서 매일 인슐린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더욱이 길어야 2~3년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 했는데 이 곳에서 수술을 하고 새 삶을 찾게 된 겁니다. 퇴원하는 날, 환자는 아무 말도 없이 펑펑 눈물을 쏟아냈습니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물론 합병증 등 안 좋은 결과가 나오는 환자가 기억에 선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처럼 수술로 인해 새롭게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저에게는 더 없는 기쁨이자 행복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순천향대병원 고도비만수술센터에는 환자들이 마음을 모아 만든 환우회가 있다. 생명의 위험을 느낀 이들, 좌절의 연속에서 허우적대던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런 환자들이 얼마 전, 김용진 교수와 펠로우, 간호사에게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십시일반 정성을 담아 장갑을 보내왔다.

 

김용진 교수는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었다. 한 분, 한 분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 뭉클했어요. 그 어떤 선물보다 값진 선물이었습니다”라며 활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런 김 교수에게 2013년 새해, 어떤 소망이 있을까. 김용진 교수는 “예전에 비하면 고도비만수술이 상당 부분 표준화됐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멉니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보험급여화가 필요합니다”라고 피력했다.

 

김 교수는 “2013년에는 반드시 보험이 될 수 잇길 바란다”면서 “혜택을 받아야 할 환자들이 우리가 알게 모르게 많다. 방치되서는 안되는 환자들이 수술을 통해 자신이 몰랐던 가치를 찾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사실 예전에 비해 정부의 인식이 많은 부분 개선됐지만 보험급여화 되기에는 녹록치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비만을 질병으로 인식하는 단계까지는 이르렀으나 그 정도 수준이다.

 

김 교수는 “대형병원은 대규모로 수술팀이 꾸려져 턴오버가 가능하지만 중소 대학병원의 경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조심스럽지만 2012년 들어 술기는 물론이고 환자 관리까지 저 나름대로 원칙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라고 털어놨다.

 

그야말로 숨쉴 틈도 없이 달려왔고 위 수술과 고도비만수술 등 두 가지를 병행하면서 매달 40case의 수술을 해왔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은 2012년 고스란히 나타났다. 한국관광공사명예홍보대사로 위촉을 받았고 해외 곳곳에서 고도비만수술 강연을 통해 종횡무진 활약했다.

 

그 속에서 환자들과 스킨십은 절대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항상 개인 연락처를 환자들에게 공개해 언제, 어디서든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김 교수는 “의사들이 아무 생각없이 하는 말도 환자에 따라서는 다르게 느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너무 말을 쉽게 하는 것 아니냐’, 누군가는 ‘친근하다’라곤 말한다”며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는 “직접적으로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해도 여건이 되는 한 환자들에게 ‘열린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3. "연말연시? 우리야 으레 하는 수술…환자들이 더 고생"(고대안암병원 정광윤 교수)

 

"의료진이야 매일같이 하는 수술이라 연말이라고 특별할 것 있겠나. 오히려 환자들이 고생이지." 지난 31일 하루만도 수술 6건을 마친 고려대학교안암병원 이비인후과 정광윤 교수[사진 下] 말이다. 정광윤 교수는 이날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5시까지 수술을 한데 이어 2013년 1월 2일에도 수술 예약이 잡혀 있다. 2012년 마지막 날과 2013년 첫날을 수술방에서 보내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하는 것’ 이라며 겸양을 표하고 오히려 환자를 걱정했다. 정광윤 교수는 “연말연시에 수술하는 환자들은 부지런한 사람들”이라며 “하루라도 덜 쉬려고 휴일이 많은 연말을 노려 수술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술방 리더가 이러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으니 연말연시 응급한 수술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 다. 정광윤 교수는 “평소처럼 때로는 농담도 하면서 편하게 수술은 한다”고 담담히 토로했다.

 

그는 “환자 입장에서야 진지하게 해줬으면 좋겠지만 그러면 의료진들이 견딜 수가 없다. 물론 환자들 마음도 이해는 간다. 우리도 자동차를 고치러 가면 잘 고치나 지켜보고 한다. 하지만 자동차 정비공에게 때우고 나사 조이고 하는 것은 일상이듯 의료진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오히려 “TV드라마나 영화처럼 수술 중에 피가 튀고 난리가 나면 안 된다. 그런 상황이 오면 위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통 하는 수술이 대부분 응급수술이 아니라 스케쥴에 따라 계획된 것이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간이식, 암수술 등 대부분 수술은 오랜 기간 철저하게 준비한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준비를 해도 아쉬울 때가 있다. 치료를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때다. 정 교수는 올해 생각나는 환자로 항암제, 방사선 치료를 받다가 전원 온 환자를 떠올렸다. 이 40대 설암 환자는 정 교수에게 오기 전 이미 거의 모든 종류의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정광윤 교수는 “수술안하고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최고지만 만약 낫지 않았을 경우 온갖 부담이 외과의사에게 쏟아진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 등을 수술보다 우선하는 것이 요즘 경향인데, 만약 실패할 경우 남는 방법은 수술 밖에 없다. 외과의사로서는 이것이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약 1년간 문제가 없었으며 2주 전에 봤을 때도 경과가 좋았다. 정 교수는 “처음부터 수술과 항암, 방사선을 같이 쓸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러한 수술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스탭들이 함께한다. 정광윤 교수는 흔히 ‘눈빛만 보아도, 옷깃만 스쳐도 뜻이 통한다’는 스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정신없는 수술실에서 같이 일하느라 올해 매우 고마웠고 잘못한 것 있으면 용서해 달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한편 정광윤 교수는 내년 대한두경부학회 이사장으로서 새로운 활동을 시작한다. 두경부학회 교과서 개정, 전공의 처우, 세부전문의 등 산적한 문제를 미리 고민하고 있다.


김도경·정숙경·유형탁 기자 (jsk6931@dailymedi.com)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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