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명당 2명 발생 뇌성마비, 대부분 불가항력적'
삼성서울병원 오수영 부교수
2013.03.18 20:00 댓글쓰기

[기획 3]오는 4월 8일,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제46조(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가 시행된다. 시행령에 따르면 그 보상 범위는 분만 과정에서 생긴 뇌성마비, 분만 과정에서의 산모 또는 신생아의 사망을 대상으로 한다. 또한 이에 따른 피해보상 비용을 의사들이 일부 분담하도록 했다. 하지만 현재 산부인과 의사들은 여기에 분명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란 무엇일까. 국민들은 물론 의사조차 전문가가 아니라면 명확히 알기 힘든 의학적 개념이다. 이에 따라 현재 분만 현장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삼성서울병원 오수영 부교수가 이해를 돕고자 한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의 대표 사례인 △폐색전증 △태변흡인증후군 △뇌성마비 △양수색전증에 대해 증례 중심으로 소개한다.[편집자주]

 

증례 : 35세 초산모가 임신 40주 3일에 5분 간격의 진통으로 입원하였다. 산모의 산전 검사 및 임신 경과에는 특이 소견이 없었으며 이후 진통 과정은 다른 초산모와 비슷한 경과를 보였고 본격적인 진통 후 약 11시간 후에 자궁문은 10cm로 모두 열려 힘주기를 시작했다. 이후 약 1시간 30분의 진통 2기를 거쳐 3.17kg의 여아를 분만했다(진통 2기 : 자궁문의 10cm 개대부터 태아의 만출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시간).

 

분만 당시 산모의 힘주기가 부족해 흡입분만을 시행했으며 한 번의 흡입분만으로 태아는 쉽게 만출됐다. 출생 직후 신생아 심박동은 100회 이상으로 정상이었으나 첫 호흡은 느리고 불규칙한 편으로 산소가 투여됐으며 출생 후 약 2분 이후 첫 울음이 시작됐다.

 

이후 신생아의 호흡은 곧 정상으로 회복돼 아기는 신생아실로 이동했다. 신생아의 1분 아프가 점수(Apgar score)는 5점, 5분 아프가 점수는 7점이었으며 출생 직후 제대혈의 pH는 7.201로 정상 범위였고 대사성 산증의 소견은 없었다.

 

신생아는 이후 95~100%의 정상 산소포화도를 유지해 분만 당일 저녁에 모자동실을 시도했다. 밤에는 산모 안정을 위해 다시 신생아실로 이동해 관찰하던 중, 출생 다음 날 국소적인 경기 발작과 같은 증세가 발생했다.

 

이후 신생아는 중환자실로 입원했으며 시행한 MRI 검사에서 좌측 중뇌동맥의 뇌경색 소견이 발견됐다. 신생아는 약 10일 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했으며 생후 2년째 편측성 뇌성마비로 진단 받았고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다.

 

뇌성마비

 

역학 : 뇌성마비 발생 빈도는 생존아 1000명 당 약 2명이며, 그 빈도는 최근 40여 년 간 전 세계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 뇌성마비란 발달 중에 있는 태아 또는 영아 뇌의 비진행성 장애로 인해 활동에 제한을 주는 운동 및 자세 발달에 영구적 장애를 초래하는 질환 군이다.

 

종종 감각, 인지, 지능, 의사소통이나 간질 또는 이차적인 근골격계 문제로 인한 행동장애가 동반되기도 한다. 뇌성마비는 단일 질환이 아니라 그 원인과 임상 양상이 상이한 질환의 집합체다.

 

뇌성마비 진단 시기 : 뇌성마비 진단은 18~24개월에 할 수 있으나 임상증상이 확실한 경우는 보다 조기에 진단할 수 있고 임상 증상이 불확실한 경우에는 36개월까지 미룰 수 있다.

 

뇌성마비 형태 : 뇌성마비 형태는 뇌성마비의 원인인자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만삭아에서의 뇌성마비는 편마비 또는 사지마비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조산아의 경우에는 양측마비가 흔하다.

 

편마비성 뇌성마비의 가장 흔한 두 가지 원인은 주산기 뇌졸중과 선천성 뇌기형이다. 전반적인 저산소성 허혈성 뇌손상 이후에 발병한 뇌성마비 형태는 주로 강직성 사지마비의 형태로 나타난다.

 

뇌성마비 원인 또는 위험인자 : 지금까지 알려진 뇌성마비의 임신 전 요인으로는 산모 나이(20세 이하, 35세 이상), 자궁 내 태아사망의 과거력, 낮은 사회 경제적 수준, 간질, 당뇨, 갑상선 질환, 자가 면역질환, 응고 질환과 같은 산모의 질환이 있다.

 

또한 신생아가 남아일 때 산모가 불임 치료를 받은 경우도 뇌성마비 위험인자로 알려졌으며 흑인에서 뇌성마비 발생 빈도가 증가한다고 한다. 뇌성마비의 임신 후 위험 요인으로는 선천성 기형, 조산, 다태 임신, 임신중독증이나 태반조기 박리와 같은 임신 관련 합병증, 주산기 가사, 주산기 뇌졸중, 자궁내 태아발육지연, 바이러스 질환, 자궁내 감염, 임상적 또는 조직학적 융모양막염 등이 있다.

 

이러한 여러 위험 요인들은 뇌성마비 발생에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MRI검사 발달과 태반병리검사 등을 통해 뇌성마비 원인을 파악하는데 있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주산기 가사가 뇌성마비와 관련성 : 주산기 가사가 뇌성마비와 연관됐다고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신생아는 출생 후 신생아 뇌병증의 소견이 있어야 한다. 즉, 전반적인 저산소성 허혈상태이 있었으나 신생아기에 신생아 뇌병증의 소견이 없었다면 저산소성 허혈상태는 추후 뇌성마비 발생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 또한 전반적 저산소성 허혈상태는 편마비 또는 양측마비성 뇌성마비와는 관련이 없다.

 

증례 설명 : 위의 증례는 신생아 약 3000~4000명 당 1명의 빈도로 발생하는, 중뇌동맥의 경색에 의한 전형적인 주산기 뇌졸중이며 이로 인한 편측성 뇌성마비가 발생한 경우로, 진통 과정에서 이를 미리 진단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제왕절개수술로 이를 막을 수 없으므로 불가항력적인 것이다.

 

실제로 주산기라는 시기는 성인에서 발생하는 허혈성 뇌졸중과 비슷한 정도의 혈전 발생 위험을 갖고 있으며 이는 소아기의 뇌졸중의 발생에 비하면 17배 높은 수치이다.

 

결론 : 미국에서 1991년부터 2002년까지 10여 년에 걸쳐 이뤄진 대규모 코호트 연구 결과 만삭아에서 발생한 뇌성마비 중 분만과정과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저산소성 허혈성 뇌손상은 전체 뇌성마비 환아의 5%에서만 관찰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여러 연구결과 대부분의 뇌성마비는 분만과정 자체가 아닌 태아기의 발달 과정이나 분만 후 신생아기의 다인자성 요인에 의해 발생하고 이를 막을 수 없다 라는 사실들이 밝혀졌다.

 

이러한 결과는 대부분의 뇌성마비 발병이 분만 진통 과정의 몇 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7000 시간의 긴 자궁 내 환경과 관련된 것이라는 증거다.

 

한편 진통 중 태아 심음 감시 장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진통의 시작 이전에 이미 손상된 태아를 과소평가하는 반면 진통 기간 동안에 손상가능성이 있는 태아는 과대평가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최근 수십 년의 여러 연구 결과, 결국 뇌성마비의 70-80%의 원인이 산전 원인에 기인한다 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또한 분만 중 저산소증이 뇌성마비 발생과 관련이 있다고 정의하기 위한 필수 조건들이 확립됨에 따라 뇌성마비의 불가항력성에 대한 의학적 이해는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됐다.

 

이러한 근거 중심의 의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만 뇌성마비의 발생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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