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에 멍드는 의료계와 제약계'
김소윤 연세대 보건대학원 의료법윤리학과 교수
2012.08.01 18:03 댓글쓰기

       김소윤 부교수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의료법윤리학과

[기획 7-기고]요즘 의료계에서는 보건의료 정책과 관련한 정부와 의료공급자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정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곳이 법원이라는 자조가 나오고 있다. 영상장비 수가인하와 약가인하 등 일련의 정부정책에 대해 공급자들의 소송이 이어진 것을 빗댄 표현이다. 이러한 소송은 정부나 공급자 모두에게 부담이 된다는 측면에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많다.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영상장비 수가 인하 관련 소송
서울고등법원 행정2부(부장판사 김창보)는 2012년 4월 27일 열린 상대가치점수 인하고시 처분취소 항소심에서 피고인 보건복지부의 항소에 대하여 기각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지난 해 4월 고시된 보건복지부의 영상관련 상대가치점수 개정안 내용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영상장비 수가인하 소송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신 보건복지부는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다. 승산이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지난 1,2심에서 지적된 상대가치점수 조정과정의 문제점을 보완, 오는 7월 이들 영상장비 수가에 대한 재 인하를 추진 중이다.

 

약가인하 관련 소송
서울행정법원은 2012년 6월 8일 한미약품, 일동제약, 영풍제약, 구주제약 등 4개사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제기한 약가인하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앞서 최근 같은 사건으로 소송을 제기한 동아제약과 한국휴스텍스제약도 승소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이들 제약사들은 지난 2010년 철원보건소에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에게 처방 대가로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실이 적발돼, 해당 제품의 보험약가를 최대 20% 인하하는 처분을 받았었다. 정부가 지난 2009년부터 시행한 리베이트 적발 의약품의 보험약가를 최대 20%까지 인하하는 ‘리베이트-약가인하 연동제도’가 적용된 사례다. 재판부는 이들 제약사에 리베이트 약가인하 제도를 적용하기에는 요양기관의 일반적인 표본성이 부족하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임의비급여 조건부 인정
대법원은 2012년 6월 18일 여의도성모병원이 보건복지부 등을 상대로 제기한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선택 진료비에 대한 부당이득 징수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시켰다. 재판부는 “임의비급여는 ‘사위 기타 부당한 방법’으로 간주해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다만 의학적 안정성·유효성을 갖춘 경우, 환자에게 내용과 비용에 대해 미리 설명해주고 동의를 얻은 경우 등은 ‘사위 기타 부당한 방법’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입증책임은 정부가 아닌 병원 측에 있다고 전제, 임의비급여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병원 측이 사안별로 증명해야 함을 직시했다.

 

우리나라에서 보건정책의 미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가? 보건복지부에서 많은 고민들을 하여 내놓은 정책들을 집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의사협회나 병원협회, 약사회, 제약협회 등에서 반발을 할 때 이를 잘 설득하고 조정해 가는 그 무엇이 부족하다. 보건복지부가 이를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건복지부가 조정하는 역할을 원하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각 협회 등의 집행진 들이 따를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일까?


보건복지부 지금까지 의약계가 보건복지부와 정치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오고 있어서 건강보험 약가인하나 포괄수가제도 시행 등의 제도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였다고 생각하여 더 이상 의약계에 끌려 다니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듯 하다. 정권 말기 정치적 판단에 따라 지지부진해 질 수 있는 일들을 정치권의 상황에 개의치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려는 태도에 대해 비난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반면 의약계에서는 보건복지부가 의약계 당사자들을 정책의 파트너나 대화의 상대로 보기 보다는 정책의 대상으로만 보고 시행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최근 의사협회는 포괄수가제도 시행에 대한 반대의사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탈퇴했다. 그리고 포괄수가제 시행 관련 수술을 거부하려고 하다가 여론에 밀려 다시 번복하는 소동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어떻게든 끝까지 시행하려는 보건복지부의 책임인가? 아니면 끝까지 막아보려는 의약계의 책임인가? 이러한 일들로 피해를 보게 되는 국민은 누구에게 그 피해를 보상받아야 하는가?


최근 법원에서는 보건복지부가 추진한 일들에 대해 절차나 내용상의 문제 등을 이유로 제동을 거는 판결들을 내놓고 있다. 이로 인하여 정부의 행정행위에 대한 권위가 많이 떨어지고 있다. 앞으로 정부는 행정행위가 법원의 판결로 제동이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정부의 행정행위 의사결정 과정에서 당사자 입장에 대한 충분한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정부에서 어떠한 행정행위를 하기 전에는 매우 많은 정책토론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토론의 횟수보다는 토론의 질을 따져보아야 한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와 MB 정부를 거치면서 정권에 따라 정책참여 전문가 집단이 편향된 입장을 갖는 경향이 생겼다. 정부가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방향에 있는 학자들만을 참여시켜서 듣고 싶은 말들만 들은 후 정리한 것은 아닌지, 다양한 입장의 전문가들과 이해 당사자들의 진지하고 팽팽한 의견대립과 깊이 있는 고찰에 근거한 토론인지 다시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둘째, 정부가 중립적으로 사안을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국민건강을 위해 어느 한 편의 입장에 서야 할 때도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지 않는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해관계 집단간의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되었을 때, 그 입장을 빨리 조율하려다 보면 공정하게 해야 한다는 것에만 집착할 수 있다. 의약분업 당시 의사와 약사의 입장을 다 생각하다보니 직능분업이 아닌 기관분업이라는 제도를 보건복지부가 수용한 바 있다. 최근의 사전·사후 피임약 논란도 의사의 의약품 슈퍼판매 주장에 대한 약사의 대응 주장을 식품의약품안전청과 보건복지부가 수용한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이해관계 당사자 간의 의견대립과 입장들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을 때, 무조건 어느 한 쪽의 입장으로 치우칠 수 없겠지만, 모든 판단의 기준은 이해당사자에 대한 공정성 보다는 국민의 건강과 편의 증진에 있어야 한다는 공무원으로서의 기본적인 태도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셋째, 정책 집행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과정을 충분하게 가졌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정부는 이해당사자들을 진지하게 설득하고 중재하려는 입장에서 노력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행정부는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일들이 아닌 경우 담당자들이 노력을 들이기 어려운 구조인 것 같다. 보건복지부의 경우에도 장관의 임기가 1년을 넘는 경우가 매우 드물고, 장관들은 자신의 임기 내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거나, 정치적으로 문제가 복잡한 일들에 대해서는 할 엄두를 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신중하게 처리해 나가기보다는 당장의 성과를 내서 자신의 업적을 만들기를 바라기 때문에 중장기적인 일에 대해 시간을 가지고 차분하고 실제적으로 접근해 나가기가 어려운 것 같다.

 

넷째, 법원에 소송이 제기됐을 때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한다.


새로운 정책을 수립할 때 그 정책의 정당성에 대한 논리적 근거가 없다면, 정책의 대상은 그 정책에 대해서 납득하지 못하고 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그러나 정당한 정책을 집행하고도 이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하여 패소한다면, 국민들을 위한 불필요한 행정비용만을 지출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정당한 행정행위에 대해서는 이를 입증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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