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 찾은 쌍벌제 '출구' 잃은 학술대회
2011.08.02 03:02 댓글쓰기
[기획 2-上]총동원령이다. 검찰, 공정위, 복지부까지…. 정부는 물론 사법기관의 전방위 압박이 의약계를 온통 뒤덮고 있다. 그 간 비싼 약값의 원인으로 지목돼 왔던 제약사와 의료기관 간 리베이트(제약회사가 약품을 구입해주는 대가로 의사·병원·약사 등에게 주는 금품이나 향응)를 뿌리뽑기 위한 정부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관련 부처와 사법기관도 전면에 앞세웠다. 정부가 리베이트 발본색원(拔本塞源)을 위한 입구 찾기에 여념이 없는 동안 수많은 학회들은 '자존심'과 다름없는 학술대회를 두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출구를 잃어 버렸다.

리베이트 쌍벌제, 개운치 않은 원칙으로 "혼선 또 혼선"

복잡하다. 스토리도 간단치 않다. 그 누구도 방향타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으로 학술대회 비용의 강력한 지원군이었던 제약사와 의료기기 업체의 부스 참여는 올해 확연히 모습을 달리했다. 이를 어떻게 충당해야 할 지 각 학회들이 골머리를 싸매는 모습은 여러 곳에서 목격됐다.

우리나라 약값은 선진국보다 1.3~2배 비싸다고 알려져 있다. 전체 약값의 20%가 리베이트로 인한 ‘거품’이라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보건복지부는 수시로 “법무부와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경찰청, 식품의약품안전청 등 5개 부처와 공동으로 의약품 리베이트 관행에 대한 일제 조사를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울산발(發) 공보의 리베이트 사건이 터졌을 때는 전국 1000여개에 이르는 대형병원 인근 약국과 도매상을 중심으로 약품 구입에 대한 대가성 선물이나 현금, 향응이 오갔는지를 잡아내겠다고 단단히 별렀다.

현행 의료법·약사법·의료기기법 등에는 ‘판매 촉진을 목적으로 (의·약사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되 ‘다만 견본품 제공 등의 행위’에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문제는 ‘등’이란 표현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는 데 있다.

예외조항에 대한 규정은 모호하고 ‘보편적 관행’이 아닌 경우에만 처벌한다는 복지부의 원칙은 무언가 석연치 않아 보인다. 지금도 리베이트 단속 현장에서 상당한 혼란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다.

혼선은 고스란히 2011년 춘계학술대회장으로 옮겨왔다. 제약사 학회 지원은 그 어느 때보다 잔뜩 얼어붙었고 그야말로 칼바람이 불었다. 너도 나도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느라 “의학 학술의 발전을 위한다”던 축제의 장(場)은 자취를 감췄다.

우선 학술대회를 운영할 수 있는 예산을 구하는 것 자체가 학회들로서는 달갑지 않은 작업이었다. 대한심장학회 관계자는 ‘그간 제약사 지원이 큰 도움이 됐었는데 이제 직접적인 지원을 범죄로 규정하니 눈치가 보였던 것은 틀림없다”며 “현재 규모로서는 학술대회 개최를 위해 수억원이 필요한데 리베이트 쌍벌제 규약의 해석도 저마다 다르니 고충이 매우 심각했다”고 토로했다.

제약사 직원과의 접촉 자체도 녹록치 않았다. 대한류마티스학회 한 임원은 “학술대회 이전에 작은 일로 제약사 직원을 만나는 것도 어려웠다”며 “이젠 국가에서 잠재적 범죄인 취급을 하니 관계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 지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호소했다.

실제 상황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게 전개되다 보니 리베이트 수사 특별전담반이 병원 근처에서 감시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리베이트 쌍벌제가 국내 학회 활동을 갈수록 위축시켜 의학의 발전을 막을 것이라는 불만은 폭발 직전에 있다.

쪼그라진 '외형' 쭈그러진 '위상'

위축된 외형은 이번 춘계학술대회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우선, 학술대회장 입구에 짜임새 있게 버티고 있던 업체들 부스가 예전의 규모와 ‘스펙’을 자랑하지 못했다.

데일리메디가 올 춘계학술대회 제약사 부스 설치 현황을 살펴본 바에 따르면 대한내시경복강경학회에는 16개, 대한병리학회에는 26개, 대한고혈압학회에는 39개, 대한소아신경학회에는 18개, 대한내분비학회에는 55개, 대한신생아학회에는 25개, 대한비뇨기과학회에는 71개의 부스가 설치됐다.

대한비만학회 제34차 춘계학술대회에는 15개의 부스가 들어섰다.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제약사 및 관련 업계의 참여는 저조하기 짝이 없었다. 학회는 전년 대비 25% 가량 줄어들었다고 파악했다. 당초 배정된 부스는 서적부스까지 포함해 19개였지만 당일날 설치된 것은 15개 정도에 불과했다. 학회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20여개 정도의 부스가 설치됐었다”며 “엎친데 덮친격인지 시부트라민 퇴출로 인해 비만 치료 약물이 한정, 학회 활동이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13일부터 15일까지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대한의사협회종합학술대회에서도 총 82개의 업체가 참여했지만 과거에 비해 위축됐다는 것이 전반적인 분위기다.

5개 지회와 10개 분과학회, 회원수 2500여명으로 학회 중 규모가 큰 곳으로 꼽히는 대한신경외과학회도 리베이트 쌍벌제와 공정경쟁규약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예년과 달리 규모가 축소됐다는 점에 회원 대다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처방약이 많지 않은 외과 계열인 까닭에 내과 계열보다 적긴 했어도 그나마 있던 제약사 등의 지원이 이제는 상당 부분 끊겨버린 탓이다.

대한위암학회의 경우 단순 숫자로만 보면 전년 15~20개에 비해 40개 부스가 설치돼 2배 가량 늘었다. 그러나 이번 학회가 국제학술대회로 치러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대했던 수준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해외연자는 113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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