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庚戌國恥) 100년 한국의료 일본 넘봐
2010.03.30 03:10 댓글쓰기
[기획 상]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영국의 역사가 E.H.카가 남긴 이 말은 역사가 지닌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내린 명언으로 흔히 언급된다. 지나온 나날과 지금 이 순간이 교감하는 현장이 역사라면, 2010년이라는 글자가 달력에 선명한 올해, 우리에게는 곰곰이 곱씹어봐야 할 역사적 사건이 있다. 1910년 8월 22일 한반도를 일본 제국에 양도하기로 합의한 한일병합조약.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 어디까지 왔을까. 치욕스런 병탄의 역사가 한세기 지난 시점에서 일본에 견줘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한 한국 의료의 위상을 데일리메디가 짚어봤다.[편집자주]

한국과 일본의 서양 의료는 300년이라는 격차를 두고 태동했다. 19세기 대한제국 말기 미국 선교사를 통해 서양의학을 접한 한국에 비해 일본은 16세기 중반 포르투갈, 네덜란드와의 대외무역 과정에서 서양 의료기술을 도입했다.1910년 한일병합조약 이후 한국은 조선총독부 주도로 의료시설 및 인력이 일본인 중심으로 정비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사회 전반을 장악한 일본의 차별적 정책으로 식민 통치자를 위한 의료와 피식민자를 위한 의료 간 격차가 심화된다. 자료에 따르면 1920년대 양국의 출생아 1000명당 유아 사망률은 한국이 482명, 일본이 264명으로 조사됐다. 동시대임에도 한국에서는 일본의 2배가량 신생아가 죽어나간 셈이다. 이는 그만큼 열악했던 의료 수준을 방증하는 대목으로 볼 수 있다.

한국 의학이 괄목할만한 발전기를 맞게 된 계기는 해방 이후 1960년대에 이르러 경제 개발이 본격화되면서다. 초고속 경제 성장과 더불어 의료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여기에 발맞춰 의료 시설이 급증했다. 부족한 수요를 맞추기 위해 정부에서는 민간병원 건립을 지원, 의료기관 신설을 유도하기도 했다. 벌써 먼발치 앞서 나간 일본을 두고 본격적인 추격전이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일본은 1945년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로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고도 근면하고 꼼꼼한 특유의 국민성을 발휘해 영미권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의료기술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 받는 일본은 200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190개 가입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료실태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 한국, 어디까지 왔나

일부 견해는 엇갈리지만 오늘날 한국 의료 수준은 일본의 80% 정도로, 양국의 의료 수준을 대등하게 놓고 보는 것은 아직까지는 무리가 따른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OECD가 2009년 발표한 자료[표1]를 보면 이해가 쉽다.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급성기 병상수는 한국 7.1,일본 8.2, 의사수는 한국 1.7명, 일본 2.1명으로 일본이 유의하게 앞서고 있다. 간호사수의 경우 차이는 더 벌어져 1000명당 한국이 4.2명, 일본이 9.4명으로 2배를 넘어선다. 한 때 국내에서 의료기관 간 과잉경쟁으로 무분별하게 도입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던 MRI·CT도 일본이 보유한 대수에 비하면 1/3 수준으로 턱 없이 적다. 그렇다면 의료 기술를 평가하는 척도의 핵심인 암 치료에 관한 양국 사정은 어떨까.


이와 관련, 지난해 국립암센터에서 발표한 ‘암환자 5년 생존율 국제 비교’ 결과는 그간 한국의 성장세를 보여주는 지표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서 위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96~00’년 46.6%에서 ‘03~07’년 61.2%로, 간암의 경우 13.2%에서 21.7%, 대장암은 58.0%에서 68.7%로 뚜렷이 올라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완치율이 높은 자궁경부암과 유방암 또한 전자가 ‘96~00’년 80.0%에서 ‘03~07’년 80.5%로, 후자가 83.2%에서 89.5%로 비슷하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시된 자료에서 일본은 5년 위암 생존율이 62.1%, 간암 23.1%, 대장암 65.2%, 자궁경부암 71.5%, 유방암이 85.5%로 한국과 비슷하거나 조금 앞서는 것으로 평가된다. 대장암, 자궁경부암 등 일부 질환에서는 한국이 일본을 추월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단순 비교는 양국의 조사시기와 기준이 상이하다는 점에서 아전인수격 해석이 난무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닌다는 지적이다. 국내 유방암 분야의 권위자로 손꼽히는 노동영 서울대병원 교수(외과)는 “한국의 최근 데이터를 미국, 일본 등과 비교하려는 시도는 자칫 심각한 오류를 낳을수 있다”며 일부 언론의 보도 행태를 경계했다.

그는 “아마도 유방암에 있어서는 전 세계적으로 치료 수준이 표준화돼 있고, 한국 정도면 표준화돼 있는 선진국이라고 볼수 있겠지만 절대적으로 우수하다고 할 수 있는 영역은 없다”면서 “얼핏 우리가 일본보다 높게 비친 것은 그러한 오류가 작동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암환자의 5년 생존율을 비롯한 통계 자료는 국가별로 조사 시기가 제각기 다른 양상이다. 일본 국립암센터의 경우 1997년~1999년 추이를 다룬 지난 2008년 자료가 가장 최근에 공개된 자료로, 이미 2007년까지의 통계를 내놓은 한국과의 격차가 두드러진다. 노동영 교수는 “데이터를 비교할 때 조사 시기 뿐만 아니라 병기별로 표준화가 어느 정도 돼 있는지, 환자 연령대는 비슷한 수준인지 등등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며 “과거 국내에서도 몇몇 신생병원이 홍보에 급급해 유사한 오류를 범한 적이 있다”고 꼬집었다.

●● ‘IT 강국’발판 삼아 의료정보시스템 압도

몇몇 분야에서 한국 의료의 활약상이 두드러지는 사례가 포착된다. 이는 ‘빨리빨리’를 강조하는 특유의 민족성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보급된 초고속 정보망, 이른바 ‘IT 강국’으로서의 면모가 의료계에 미친 파장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1989년 의료보험제도를 전 국민 대상으로 확대한 한국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EDI(Electronic Data Interchange; 전자청구방식),EMR(Electronic Medical Record; 전자의무기록),OCS(Order Communication System; 처방전달시스템) 등의 의료정보시스템을 발 빠르게 확산시켜 나갔다.

그 결과 오늘날 한국에서는 EDI를 통해 보험청구를 하고, EMR로 의무기록을 하며, 환자가 병원에 등록하는 시점에서부터 모든 진료 및 행정절차를 끝낼 때까지 전자적으로 데이터를 관리·전달하는 OCS 사용이 보편화돼 있다. 이 같은 병원 전산화는 일본보다 5년 정도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에는 국내 의료기기업체 인피니트헬스케어가 개발한 PACS(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 솔루션이 중앙 아시아 등지에 수출되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국내에서 익숙한 병원 전산시스템이 모든 국가에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 전체 병원 중 의료보험 청구시스템을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추진하는 병원은 절반가량에 머물고 있는 실정. 일본 기업에서 출시한 EMR, OCS 등은 아직까지 국내 업체의 솔루션 수준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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