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 빅맥셋트보다 낮은 '진료비'
2010.04.05 03:03 댓글쓰기
[기획 2]탕수육 1접시(1만3000원), 스타벅스 커피 2잔(9000원), 맥도날드 빅맥셋트 2개(9600원)보다 못한 한국의 의료수가는 과연 의사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세계 최고를 '외치며' 쉼없이 달리고 있는 한국의 의료기술이 고공행진하는 사이 저수가로 점철되는 환경에서 의사들 신음 소리는 그 강도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 저수가와 함께 무한경쟁에까지 내몰리면서 의사들은 감기 '따위'가 아닌 중환자에 내몰린 처지가 됐다.

최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에 따르면 방문당 진료비는 애견 미용료(2만5000원), 피자 1판(1만700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으로 다른 물가와 비교하면 적정 의료수가의 1/3~1/5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혈액검사 9만2000원(한국 600원), B형 간염 항원 검사 15만9742원(한국 2610원), 위내시경검사 시 52만3195원(한국 4만9130원)으로 파악된다.

뿐만이 아니다. '위내시경+조직검사+CLO test'시 898.27(104만7382원)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6만1480원에 불과하다. 의료정책연구소는 현 한국의 의료 수가의 문제점에 대해 "교육 훈련, 경험 기간에 관계없이 동일 수가를 적용(1物1價 정책)하는 등 가격 책정의 기본을 무시하고 사회주의식 하향 평준화 방식으로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 심각성을 더했다.

하루 12시간 꼬박 일해도 '한숨만'

서울 성북구 A의원 원장님은 하루 12시간 일한다. 한 달에 나흘만 쉰다. 월 312시간을 일하는 셈이다. 벌어들이는 돈은 얼추 1000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건물 임대료에 직원 월급, 인테리어비, 전기세 및 각종 공과금을 제외하면 하루에 10만3844원 꼴이다. 그러나 그의 노동 가치는 어제 점심식사로 해결한 설렁탕 한 그릇 가격만큼 초라하다.

오전 8시 출근한 '원장님'은 오후 7시 무렵, 팔이 후들거릴 정도의 고된 진료를 마친다. 그리고 나서 맛있는 간장 게장을 저녁 식사로 먹으려 하니 1만2000원. '이걸 먹으려면 내일 환자를 몇 명 더 봐야 하나?' 한국에서 '잘 나간다'는 루이×× 정품백을 딸 아이에게 선물해주려면 고혈압 환자 200명이 오로지 우리 병원을 찾아줘야 한다. 순전히 '이론적'으로만 그렇다.

서울 영등포구 소재 B의원 원장은 "의사라는 직업이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던 시대는 지났다. 매일 조금씩 들어오는 환자 본인부담금을 모아 공과금 등의 고정비용을 내기도 빠듯하다"고 말했다. 개원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의원들은 결국 그 투자비를 상환하기 위해 다른 부대사업을 벌이거나 과잉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무의미한 경쟁은 결국 의료계 전체의 질 저하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5년 전에 비해 환자 수가 반으로 줄었는데 대형병원까지 들어오면 병원 경영 환경은 더욱 악화될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서울시 반포구 S내과 의원. 오후 환자들로 붐벼야 할 시간임에도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환자 1명이 보호자와 함께 진료실에서 진료를 받고 있을 뿐 대기하는 환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지난 1998년 메디컬 빌딩에 개원한 S내과 이모 원장은 내원 환자 감소 등으로 경영 환경이 점점 어려워져 고민이다. 이 원장의 진료 기록에는 오후까지 진료한 환자 수가 27명으로 돼 있다. 의원 문을 닫는 오후 7시까지 진료를 계속한다해도 환자 수는 40여 명을 웃돌 뿐이다.

이 원장은 지난 2000년만 해도 환자가 하루 100명, 많을 때는 120명까지 달했다. 그러나 현재는 당시의 절반 이하로 줄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원장이 운영하는 내과 의원 주변만해도 한때 20여 개의 동네의원들이 들어섰다가 현재는 대부분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폐업했다. 저수가, 동네의원 난립, 대형병원 신설 등이 한꺼번에 맞물리면서 경영 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환자들이 1,2,3차 의료기관 선택이 자유로워 경미한 병일지라도 3차 의료기관인 대학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받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병원 경영난은 의료수가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가 원인"이라면서 "내원 환자 수 감소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투자한만큼 수익 보장 장담할 수 없어"

중형 병원들은 그들대로 고충이 상당하다. 환자들이 1차 의료기관인 의원과 3차 의료기관인 종합병원으로 양극화 양상을 보이고 있어 샌드위치라고 호소한다. 중형 병원들은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시설 투자 등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상황에서 투자한 만큼 수익보장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 고민이다.

인제대학교 내과계열 한 교수는 "의료기관은 원가에 미달하는 의료수가, 보험재정 안정대책 미흡 및 물가 인상률을 밑도는 수가 정책 등으로 실질 수입이 급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및 건강보험에 대한 불만은 극에 달해 있다. 의약분업 시행으로 인상된 보험수가(35.4% 인상)는 재정안정 대책으로 원점으로 회귀됐으며 의약분업 전에 정부와의 묵시적 합의에 따라 낮은 수가를 보상해왔던 약가 마진(20~40%)만 완전히 없어지게 돼 의사 1인당 200~300만원의 순손실만 발생하고 있다.

약사의 경우 기존의 약가 마진에 조제료 수입을 더해 주는 등 정부의 실책을 미봉하는 정책으로 불만이 가중됐다. 의사의 '의료행위는 의학적 전문적 지식을 기초로 하는 경험과 기능으로 해야(대법원 판례)'함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법(제39조)에는 요양급여의 방법, 절차, 범위, 상한을 보건복지부령이 정하고 범위를 벗어나는 진료는 과잉, 부당진료로 처벌함으로써 의사와 환자 사이의 의학적 관계에 의한 최선의 치료가 아닌 국가의 보험재정에 따른 권력적 규제에 의해 진료하도록 강요하고 있어 의료가 초토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엎친데 덮친격 부당·과잉진료 뭇매

보험에서 급여하는 진료와 보험에서 인정하지 않는 진료(비급여 진료)등 모든 의료 행위를 모두 고시하고 그 범위 내에서 진료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의료기술 개발에 장애가 되고 또한 고시범위를 벗어날 때는 부당, 과잉 진료로 처벌하고 있다. 소득 감소를 만회하기 위한 개원의들의 무리한 운영으로 자칫 우리나라 의료질이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도 근거없는 것이 아니다.

서울 방화동에서 이비인후과를 개원한 김모 원장은 "한달에 3회 이상은 새로 바뀐 의료법을 공부하거나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휴진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영 전담부서가 없는 의원급 개원의들에게 1년에 수도없이 쏟아지는 의료법 개정안은 부담스럽다"며 "특히 매년 받아야 하는 연수평점을 위해 병원문을 닫고 학회에 참석하는 것도 문제"라고 토로했다.

올 들어 10월까지 의료 관련 법규 개정은 30여 건에 달했으며 이중 병원 경영에 실제적으로 적용된 것만도 절반 이상에 달했다. 병원급 의료기관과는 달리 별도의 사무팀이 구성돼 있지 않은 의원급 의료기관들은 바뀐 의료법을 숙지하지 못해 자기도 모르게 불법 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의사라면 누구나 한해 동안 일정 점수의 연수평점을 이수해야 하는데 연구논문으로 평점을 이수하는 대형병원의 의사들과는 달리 개원의의 경우 비교적 평점을 받기 쉬운 학회 행사 참석으로 대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의료계는 진료일수가 줄어들어 생기는 소득감소를 만회하기 위해 개원의의 대부분이 주51시간 이상을 근무하거나 토요일 진료는 물론 일요일까지 진료하고 있어 피로로 인한 오진도 우려된다. 최근 한 인터넷 취업 사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 86개사의 대졸 초임 연봉이 평균 3038만원이며 업종별로는 금융업체가 3700만원으로 최고를 기록했다. 이에 비해 산부인과와 소아과 의원을 운영하는 개원의 연평균 순이익은 각각 5000만원대인 것으로 알려져 월평균 가처분 소득은 300만원대를 초과하기 어려워 실제적으로 대졸 초임 연봉보다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수가 원가보존율 80%대…"보상" 한목소리

이에 의료계는 의료보험 진료수가는 최소한 진료원가 보상은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양대병원 소화기내과의 한 교수는 "정부를 비롯한 각 기관, 단체에서 시행한 원가수지분석결과 현재의 보험수가는 원가의 85~90%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으므로 최소한 원가의 100%는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형수술 등 비급여 수입, 병원의 주차장, 영안실, 편의점의 수입까지 산입해 분석한 경영수지 분석으로 의료보험 수가를 정하는 것은 원가 계산의 기본적 원리 및 시장 경제 질서에 위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병원계는 "대부분의 행위가 의료보험에 포함되는 외과계열 및 소아과, 산부인과의 경우 원가에 미달하는 불합리한 의료보험 수가 때문에 인력난을 시작으로 국민 건강에 위험 요인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가에 미달하는 보험 수가 때문에 의료기관의 경영이 계속 악화되고 있으며 2003년의 경우 의료기관 수입은 2002년에 비해 평균 11% 감소했다. 비공개의 자의적인 기준에 의한 진료비 삭감, 처방만하고 보상받지 못하는 처방 약제비를 위법하게 진찰료에서 삭감하는 행위, 법을 부당하게 확대 해석해 관계 당국이 진료 중인 의료기관을 무단 방문해 진료비 환수를 강요하는 행위 등은 수차례 도마 위에 올랐다.

병원계 한 인사는 "심사지침에 어긋난다며 부당진료로 간주해 청구액의 5배를 강제 징수하거나 일반적인 사회 질서에 어긋나게 평일 8시 이후 토요일 3시 이후에만 야간근무가산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야간, 휴일 가산료 제도 등을 조속한 시일 내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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