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속 빈곤' 기형적 의사 인력시장
2008.12.30 21:50 댓글쓰기
[기획 2]경남 진주에 소재한 300병상 규모의 한 중소병원. 명색이 종합병원이지만 실제 운영되는 진료과는 손가락에 꼽힌다. 몇해 전 영상의학과 의사가 다른 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것을 시작으로 최근 3년 간 무려 20명이 넘는 의사가 사직서를 던지고 훌쩍 떠나 버린 탓에 이 병원은 그야말로 반쪽짜리 종합병원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지역 신문과 전문지 등에 1년 동안 구인광고를 내고 원장까지 나서 의사들 영입에 나섰지만 떠나는 의사 수를 메우기는 역부족이었다. 언론지상에 의사의 과잉배출 문제가 연일 보도되지만 막상 의사를 구하려는 병원들에게는 ‘하늘의 별 따기’와도 같은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천 소재 의대를 졸업하고 인근 대학병원에서 인턴과 전공의 시절을 거쳐 산부인과 보드를 딴 이 모씨. 개원을 하자니 이미 포화상태로 실패 위험이 크다며 주위에서 만류하고 학교에 남자니 불투명한 미래가 걱정돼 봉직의의 길을 결심했다. 하지만 이 씨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취업 준비중이다. 학교에서 나올 당시만 하더라도 취업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막상취업을 하려니 마땅한 병원을 찾기 힘들었다. 지방병원의 경우 조건은 좋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내키지 않았고 수도권은 낮은 보수에 전공의 시절 지겹게 하던 당직까지 서야 한다는 말에 발길 돌리기를 십 수번. 이 씨는 ‘자발적 실업자’란 명문 하에 혹독한 취업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최근 ‘의사의 과잉배출’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부 병원들이 의사 기근현상에 시달리는 등 의료인력 수급 불균형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실제 의과대학에서 배출하는 의대생의 증가로 말미암아 지난 60년 동안 우리나라 의사수는 무려 21배나 증가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면허의사는 1949년 4375명에 불과했으나 점차 그 수가 증가해 2007년에는 9만 1475명으로 늘어났다.

면허의사는 지난 1993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병원이 많아야 모든 국민들에게 의료 혜택이 주어질 수 있다고 판단, 공약으로 지역별 거점 병원 등을 내세워 의료 보급화를 외친 바 있다.

지역 곳곳에 병원을 세우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의사들이 대거 필요했고 문민정부는 의과대학의 신설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이러한 국가적 지원에 힘입어 신설된 의과대학은 강원대, 제주대, 건양대, 관동대, 서남대, 성균관대(수원), 을지의과대, 포천중문의대 등 무려 8곳에 이른다.

대략 2853명이었던 기존 의과대학 입학 정원 또한 3213명으로 증가, 해마다 360여명의 의대생들이 늘어나게 됐다.

문민정부 이후 현재까지 신설된 의대가 가천의대(98년) 1곳임을 감안한다면 이는 급격한 증가이다.

어디 의사 없나요?

이 같은 의사수 증가는 곧 의료계 내부의 과잉경쟁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최근에는 생존경쟁이라는 단어까지 일반화 되고 있는 상황이다.

‘개원=돈’이라는 공식이 깨진지 오래고 대학병원에 남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녹록찮다.

과잉경쟁으로 경영난에 시달리는 개원가 현실과 대학병원의 업무 스트레스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중압감에서 벗어나려는 분위기가 맞물리면서 의사 인력이 대거 FA(Free Agent system)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처럼 봉직시장에 뛰어드는 의사가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선 병원들은 의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기현상이 연출되고 있다.

특히 우수 의료인력들의 대도시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더욱 심해지면서 중소병원들, 특히 지방에 있는 병의원들의 의사 인력난이 심각한 상황이다.

이에 이들 병원은 의사 모집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지원자들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는 실정이다.

지방의 한 중소병원장은 “1년 내내 채용공고를 내고 있지만 지원자가 없다”며 “의사가 없어 폐쇄한 진료과도 있다”고 토로했다.

다른 지역의 중소병원 원장은 “연봉을 상당폭 인상하며 채용에 나서고 있지만 입사지원서를 받아 본지 오래”라며 “지방은 이미 의사들 씨가 마른 상태”라고 푸념했다.

이 같은 지방 병원들의 의사 구인난은 대형병원들의 잇단 신증축과 우후죽순(雨後竹筍) 격으로 생겨난 노인병원들에 기인한다.

대형병원들이 경쟁적인 몸집 불리기에 나서면서 의사 인력을 싹쓸이 해가고 노인병원들 역시 의사 모시기에 열을 올리면서 지방 중소병원들이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다.

의사 구인이 힘겨워진 지방 병원들은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연봉이 많이 올려 봤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기형적 의사 인력시장을 치료

공급과 수요의 동반 증가에도 불구하고 양쪽 모두 구직과 구인에 어려움을 겪는 작금의 사태를 풀어줄 해결사로 최근 의사 헤드헌팅 업체가 주목받고 있다.

이들 헤드헌팅 업체는 취업에 뜻은 있지만 마땅한 병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의사들에게 최적의 조건을 제시하며 취업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의사 헤드헌터들은 당사자와 충분한 교감을 형성하고 이직이나 취업에 고려할 사항을 파악한 후 입맛에 맞는 자리를 제시한다.

의사들은 제시받은 자리가 맘에 들지 않으면 고사하고 맘에 드는 자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헤드헌팅 업체에 회원으로 등록한 소아과 전문의는 “이직을 결정했지만 어찌할 줄 몰라 고민이 많았는데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헤드헌팅 업체는 수년째 의사 구인에 목이 마른 병원들에게도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최근 병원계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인맥을 통하거나 신문 구인광고를 전전긍긍하던 병원들로서는 헤드헌팅 등장이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

최근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 의사를 채용한 중소병원 L원장은 “왜 진작 이런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쉬울 뿐”이라며 “앞으로는 의사를 구하지 못해 노심초사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8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