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큰 '차등수가제' 폐지 현실화될까
국회서도 비합리성·비형평성 등 지속적 제기…복지부 '개선 방향 모색'
2015.01.05 20:05 댓글쓰기

봇물 터진 듯 쏟아졌다. 새누리당 박윤옥(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이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차등수가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작은 구멍을 뚫었다면,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 곳곳에서 뒤이어 나온 폐지 요구는 큰 물줄기를 형성했다.

 

사실 차등수가제 문제점은 꾸준히 제기됐지만,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과 진료과별 이해관계 탓에 개선되지 못했다. 과연 이번에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차등수가제는 의사 1인당 1일 75명을 적정진료 건수로 설정, 진찰료를 차등지급하는 것이다. 진찰 건수가 75건 이하의 경우 진찰료를 100% 지급하고, 100건까지는 90%, 150건 까지는 75%, 150건을 초과하면 50%로 줄여 지급하고 있다.


2001년 ‘5·31 건강보험재정안정화대책’의 일환으로 이 제도는 의약분업 후 환자 증가로 인한 의료서비스 질 저하를 막고, 서비스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환자 분산과 건강보험 재정절감 등을 위해 시행됐다.

 

■신뢰도 떨어지는 ‘75명’ : 차등수가는 75명을 적정진료 수준으로 산정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낮은 신뢰도는 의료계의 불만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 기준은 보건산업진흥원의 ‘차등수가제도 도입방안 연구’를 토대로 산출됐다. 해당 연구에서는 건강보험 진료비 청구자료를 적용해 의료 1인당 1일 누적 2/3 수준의 진료건수 74명을 적정한 진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한계치로 설정했다.


문제는 이 수치의 산출 기준이 지난 2001년 1월 한달분 외래진료 자료만을 가지고 분석한 결과라는 점이다. 특히 진료과목별, 지역별, 계절적 요인 등이 고려되지 않아 신뢰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증명안된 의료서비스 질 향상 : 정부가 내놓은 차등수가제의 가장 큰 목적은 의료서비스 질 향상이지만, 그 효과성은 입증되지 못했다.


보건복지부 의뢰로 2009년 작성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의 ‘진찰료 차등수가제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에서는 ‘차등수가제가 진료의 질을 높였다는 결론을 도출하기 어렵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는 의료계가 아닌 보사연 연구결과여서 더욱 객관성 있게 받아들여졌다.

 

■특정 진료과 희생 강요 : 차등수가제 영향을 많이 받는 진료과의 차등지급액을 보면 28개 과목 중 이비인후과·내과·소아청소년과 등 3개 과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60%가 넘는다.


이비인후과·내과·소아과·정형외과·일반과 등 급성질환을 진료하는 과가 특성상 환자 수가 많고 계절적으로 환자가 급증하는 시기가 존재한다. 질 낮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진료과목 특성상 진찰시간이 짧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성형외과, 피부과 등은 진료특성상 차등수가제 해당사항이 없다. 즉, 차등수가제로 정부가 특정 과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환자 분산 기능 사실상 실패 : 적정수준의 환자를 진료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차등수가제 목적 중 하나지만, 그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우리나라는 의료기관 선택권이 전적으로 환자에게 맡겨져 있기 때문에 의사가 찾아오는 환자를 조정하는 것은 애초 불가능하다.


또한 의사가 적정진료를 위해 환자 진료를 거부하는 것은 의료법 제15조(진료 거부 금지) 등에 위반된다. 환자가 많이 찾는 의사는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의료기관 종별 비형평성 : 차등수가제가 의원급 의료기관에만 적용되는 것 역시 대표적인 문제점이다. 사실 짧은 진료시간에 따른 의료서비스 질 악화는 의원급 보다는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문제다. 그럼에도 의원급 의료기관에만 차등수가제를 적용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또한 재정 안정을 위한 부담을 의원급에서만 지고 있는 현재의 구조 역시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특히, 의원급 의료기관은 진찰료 수입이 총수입의 60% 정도를 차지한다. 일차의료기관 활성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차등수가제는 의원급 의료기관을 더욱 옥죄는 제도라는 분석이다.

 

한정된 ‘건보재정’ 때문에 복지부는 소극적

차등수가제에 대한 의료계 불만은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정작 보건복지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이유는 역시나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 탓이다.


차등수가제 적용으로 인한 차등지급액은 2010년 781억6900만원, 2011년 555억1600만원, 2012년 630억5900만원 규모다. 차등수가가 폐지되면 이 액수만큼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데, 재원 확충을 위한 뾰족한 방안이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복지부는 차등수가제 폐지에 소극적으로 접근해왔다. 실제 지난 2009년 보사연은 차등수가제 폐지에 무게를 두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연구결과에서는 차등수가제 폐지, 야간진료 시 차등수가제 예외적용, 기준 환자 수 ‘75명 4단계 → 110명 2단계’ 변경 등 3가지 안을 정부에 제시했다. 그 중 복지부는 야간진료 시 차등수가제 예외 적용만을 받아들이며 성난 의료계 민심을 달랬다.

또한 같은 해 11월 신종플루 환자가 급증해 대응력을 높이고자 차등수가제 잠정 중단을 검토했지만 결국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은 올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박윤옥 의원 지적에 “차등수가제의 유효성이나 형평성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보겠다. 그리고 불필요한 제도개선이나 또는 더 좋은 대안이 있는지 한번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이후 복지부는 차등수가제 개선 방향을 논의 중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내부 자료를 검토 중이다. 박윤옥 의원은 차등수가제 폐지를 주장했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최동익 의원은 서면질의를 통해 진료과별 특성을 반영한 개선안을 주문했다. 이 같은 사안 모두를 종합해 개선 방향을 설계할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복지부는 차등수가제 기능 중 하나인 적정 진료시간 확보를 위한 방안 마련에 집중할 계획이다.


그는 “차등수가제를 폐지하든 보완하든 적정 진료시간 확보를 위한 기전 마련에 초점을 둘 것이다. 다만, 건강보험 재정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건정심 의결이 필요하다. 복지부가 단독으로 다룰 문제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또 “하루 건수 별 자료를 분석하다보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개선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의지를 내비쳤다.

 

의료계 상충된 이해관계 극복도 과제

 

진료과별 다른 이해관계 역시 차등수가 폐지를 주장하는 의료계의 화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은 한정돼 있고 차등수가제가 폐지돼 이비인후과 등에 더 많은 재원이 투입되면 다른 진료과 수가 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현재 의원급 의료기관이 매우 어려운 실정인데, 차등수가제로 피해를 입는 이비인후과나 소아과 등이 위기 상황은 아니다. 차등수가제가 폐지되고 재원이 이비인후과 등에 더 많이 투입되면 간적접으로 다른 과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전했다.


실제, 지난 2009년 대한의사협회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3.5%만이 차등수가제 폐지를 찬성했다. 나머지 38.3%는 현행 제도를 유지하고 기준 이하의 진찰비를 올리는 체증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의료계 목소리가 갈렸다.


이는 진료과별 각기 다른 계산법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다. 체증제 도입으로 재정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진료과와 체감제로 손해를 보는 진료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즉, 체감제로 손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비인후과 등의 문제점은 그대로 남고, 성형외과나 정신과 등에게는 추가적 재정 지원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는 체감제로 아낀 재정을 체증제로 투입한다는 논리를 구성해 차등수가제 폐지론의 명분을 잃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우려 탓에 복지부는 차등수가제로 아낀 재원을 일차의료기관 살리기에 쓰기 위한 방안 마련을 의료계와 협의 중이다. 그러나 진료과별 이해관계가 달라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 다른 의협 관계자는 “차등수가제가 진단과 처방이 잘못된 제도라는 것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다만, 폐지 후 보완책으로 도입될 제도와 재정 재분배에 대한 불확실성 탓에 입장이 갈리는 것 같다”며 “폐지 후 도입할 보완책이 제시되면 또 다른 구도가 형성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송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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