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인문학적 토양 길러야 노벨상 가능'
이혜연 교수 '질문 가능 환경·인프라 구축 및 일관성 있는 연구지원정책 절실'
2016.01.06 12:00 댓글쓰기

[기획 5-특별기고]겨울이 되면 케이블TV에서 감동적인 동계올림픽 관련 영화를 다시 방영하곤 한다.


입양됐던 한국계 미국인이 국가대표가 되려는 사연과 함께 참가하는 선수들의 어설픔이 잔재미를 주며,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급조됐을 뿐이라는 사실은 모른 채 노력을 하는 스키선수들의 사연에 울컥하게 만드는 ‘국가대표’라는 영화와 함께 대비되는 자메이카 봅슬레이 선수들의 이야기인 ‘쿨러닝“이다.


자메이카 육상선수인 주인공이 올림픽 예선에서 탈락하자, 자신이 유리한 동계스포츠인 봅슬레이에 도전하겠다고 동료들을 모아 지상훈련 후 캘거리로 가서 중고썰매를 구입해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내용으로 꾸려진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두 영화를 비교하면 씁쓸하다. 내가 뭔가 즐거워서 하며 잘 할 수 있는 것을 개발해 세계무대에 도전하고, 실패해도 즐겁게 웃는 것이 우리사회에서 가능한가를 생각해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올림픽 메달 수로 국력이 드러낸다고 생각해 일상의 삶에서 접할 수 없는 분야의 운동들이 메달을 위해 정책적으로 길러진다.


일반국민들의 실제 생활에서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학생도 없을뿐더러, 일상적인 삶을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체육시설도 국제대회 상위권 국가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의대 특특특 상위자 10명 등 집중관리하면 수상? 


노벨상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중국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으니 어떻게 하면 우리도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대책이나 의견을 요구하는 주문이 쇄도한다.


대한민국 과학인재의 상위 1%가 모두 의과대학에 진학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주문과 질문이 의학계로 몰려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과연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 이 인재들 중 ‘특특특 상위자’ 10명만 모아서 특별 교육을 시키고 노벨생리의학상 꿈나무로 성장하도록 초초영재대학원이나 연구소라도 만들어 장기적으로 관리할 것인가?


하지만 이러한 특별지원 관리 정책으로는 노벨상을 받는 것이 가능하지 않음을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다.
노벨상은 그 나라나 기관이 어떠한 과학적, 인문학적 인프라를 가지고 얼마나 장기적으로 유지했는가를 간접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에게 질문을 권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무런 질문이 없다. 학생들 사이의 유행인 ‘공부 다했음을 은근히 드러내는 멋져 보이는 질문’이 가능하지 않은 곳이 의과대학이기도 하지만 모르는 것, 진짜 궁금한 것도 물어보는 것을 민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혹시나 교수님 심기를 건드려 나쁜 성적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좋은 성적을 유지한 이 학생들은 정답만을 말하고, 예의바른 태도를 보여 수업시간에 좋은 평가를 받도록 훈련돼 있다.


심지어는 선생이 원하는 바를 빠르게 인식하고 잘 맞춘다. 궁금해도 물어보지 않고, 내가 뭘 모르는지도 표현하지 않도록 훈련된 것이다. 이들은 과연 과학으로서의 의학을 공부할 준비가 돼 있는 것일까?


의과대학생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질병은 인간 개개인의 현상이기도 하지만 그 발병 원인에 지역적, 기후적, 사회적, 경제적 요인들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질병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또한 자신과 사회에 대해 관찰하고 설명할 수 있는 서술적 쓰기 능력이 필요하다. 의학은 생물학의 한 분야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상구조와 기능을 바탕으로 병적의 현상을 분석하고 치료법을 고민하며, 치료의 결과를 관찰하고 기록해 만들어진 학문이다.


규칙대로 돌아가는 수학과 물리학과는 달리, 관찰돼 정립된 생물학적 특성도 개개인마다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의사들이 환자를 볼 때마다 매번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은 개별적 특성을 파악해야 치료의 중심방향을 정한 후에도 환자 특성에 맞도록 세부사항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배운 학문의 프로토콜에만 얽매인다면 기계적인 치료만 하게 될 것이다. 경험이 오래 될수록 예술과도 같은 지식세계를 구축하게 되는 의학의 특징은 ‘관찰과 의문’이라는 능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현장은 어떠한가? 기존의 지식에 일말의 의심이나 질문도 제기할 수 없는 분위기이거나 밀려드는 환자로 인해 질문할 시간조차 없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 교육과 수련현장에서는 내일의 노벨상 후보들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노벨생리의학상 탈 수 있는 사회적 토대 마련 병행돼야


현재 정립된 학문은 끊임없는 확인과 질문에 의해 내일의 학문으로 발전해서 나타난다. 왜 이렇지? 이유가 뭘까? 답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질문이 중요한 이유이다.


따라서 대학은 학생과 젊은 연구자들이 자신들이 배우는 학문에 대해 항상 궁금해 하고 질문을 만들며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자신의 교수, 친구, 동료로부터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젊은 인재들이 그 의문점을 해결할 방법을 찾도록 연구실을 제공하고 교수들의 전문적 경험과 지식을 나눠줘야 한다.


나라의 과학적 토양이나 국력은 결국 우리 스스로 우리 다음세대를 교육해 좋은 인재를 성장시킬 능력이 있느냐에 달려있다.


국가의 학문적 경쟁력은 그 국가의 인재가 국내학부에 들어가 그 전공학문에 대해 기본적인 개념을 배우고, 그 학문에 대해 더욱 연구하고자 대학원에 가서 학문을 닦고, 연구소 등의 전문영역에서 연구자로 훈련받으면 이들이 세계수준의 차세대 연구자와 교육자가 될 수 있어야만 증명될 수 있다.


우리의 임상분야 진료영역 수련은 비교적 세계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으나 우리의 학문적 수련과정은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전히 외국에서 길러진 박사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문영역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학문의 난이도가 높아져야 하나 국내 의과대학은 본과 1학년생이 가장 열심히 공부한다는 농담이 만연한다. 


의학계의 변화만으로는 이러한 현상을 개선할 수 없으므로 사회적으로 우리의 교육시스템을 돌아봐야 할 때이다.


인재는 그저 국가의 인적자원이기 때문에 양성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이 최종 목표이고 모든 자원이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전략에 투입되는 모순이 빨리 개선돼야 한다.


학문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토양에 나라는 끊임없이 물을 붓고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닭장과 같은 대학건물에서 교수들끼리 얼굴 한번 볼 수 없는 상황에서 협력과 융합이 저절로 생겨날 것이라 기대하는 측면도 난센스다.


내가 보는 환자에 대한 공부할 시간도 부족할 만큼 진료를 과도하게 해야하는 현행 정부정책은 대학교수로서 역할을 할 수 없게 한다.  왜 이렇게 치료방향을 잡았는지를 내 전공의나 학생에게 설명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 것이다.


줏대 없이 매번 바뀌는 연구지원정책은 더욱 심각하다. 정부는 한정된 연구예산을 미래창조부와 보건복지부에 나눠 준다.


복지부는 미국과 같은 선진수준의 의료가 실현되기를 바라면서도 기초의학 중요성을 모르고 연구지원 예산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노벨생리의학상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복지부가 한국의 NIH로서 전문성과 중심을 가지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의학의 근본적 성장이 가능토록 의과대학 인재들이 기초의학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연구자들이 학문의 근간을 이룰 긴 호흡의 연구가 가능하도록 장기적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면 10년 후 우리나라에도 노벨상을 받을 토대를 가진 인재들이 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2015 송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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