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분만 기능 무너지고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법제이사
2012.10.21 22:00 댓글쓰기

2006년 8월 분만 중이었던 32세 일본 여성이 뇌출혈로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다. 19개의 병원에 대해 환자 후송을 문의했으나 거절당하고 가까스로 후송될 병원이 결정된 이후 후송되는 과정에서 산모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후송한 나라현의 병원은 결국 산과를 휴진하고 말았다. 또한 몇 년 전에는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조산 증상으로 위급한 상황에 있던 임산부가 도쿄 시내 병원들로부터 25차례에 걸쳐 진료를 거부당하고 결국에는 사망했던 상황까지 발생하였다.

 

이와 같이 일본에서는 분만의사 감소로 인한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으며 산부인과가 아예 없는 지방 소도시가 많아지자, 임산부들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른 도시의 병원을 찾는 이른바 ‘출산 난민’들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의 분만 시설은 1994년부터 2004년까지 10년 동안 26.5% 감소하였다. 불규칙한 근무 시간 및 소송 위험이 높다는 문제로 인하여 산부인과 의사가 분만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 산부인과의 현실과 매우 흡사하다.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전국에 설치된 산부인과 3668개 중 분만실이 있는 곳은 808개(22%)에 불과하다. 2000년 1570개에 비해 808개로 줄었으니 11년 만에 50% 가까이 줄어들었다. 일본이 1996년에서 2005년까지 10년에 25% 줄어든 것에 비해 분만 체계의 붕괴가 한국에선 더욱 빨리 다가 오고 있는 것이다.

 

실제 작년 230개 시군구지역 중 분만병원 없는 지역이 49곳에 이르고 있다. 분만 중 발생한 의료사고는 과실 유무의 판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재판 혹은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일본은 이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2009년 1월부터 뇌성마비에 대한 산과 무과실 보상 제도를 시작하게 돼다. 뇌성마비에서 의료진의 과실이 5% 내외인 점을 감안, 일본 정부는 과실 여부와 상관없이 국가가 배상을 해주고 있다.

 

반면 2011년 4월 우리나라 국회를 통과한 의료분쟁조정법 중 제46조는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해 의사에게 50% 비용을 부담토록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가뜩이나 어려운 산부인과의 진료기능을 위축시키고 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가 없는 무과실 의료에 책임을 지우는 것에 학회와 분만병원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은 사회안전망의 일환으로 국가가 전적으로 부담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이런 사회보장 차원의 보상과 더불어 원인과 재발방지를 위한 분석을 정부와 학계가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일본의 경우 ‘산과 무과실 국가 보상제도’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이미 붕괴된 산부인과의 분만 기능이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일본의 산부인과 병원은 17년째 감소하고 있는 것이 그 증표이다.  과실까지 보상하는 제도에 힘입어 일본의 분만병원은 제도가 시행 후 더 이상의 감소는 보이지 않고 있으나, 한번 감소한 병원 수는 쉽게 증가되지 않고 있다.(2008년 2845개에서 2011년 2894개)

 

가까운 일본의 예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올바른 정책 결정을 해야 한다. 임산부들이 다른 지역이나 외국으로까지 나가서 분만을 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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