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의사 임신 축하도 못해주는 '서글픈 현실'
주 100시간 이상 근무하는 전공의 등 과도한 업무로딩에 부담 백배
2013.10.10 12:12 댓글쓰기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2010년 이후 3년 연속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젊은 여자의사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여전히 멀고도 험한 일로 나타났다.

 

과도한 업무로 잠깐 눈 붙일 시간도 부족한 전공의 수련환경은 의료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온 지 오래다.

 

지난 3월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가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제작한  ‘2013 대전협 캠페인’ 포스터 6종에도 전공의들의 고단함이 묻어 나온다. 방전된 배터리 그림과 함께 ‘잠깐만.. 눈 좀 붙이면 안될까요?’라는 문구 속 졸고 있는 전공의 포스터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공의 10명 중 4명은 주당 100시간 이상을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수련환경은 출산을 앞두고 있는 여자전공의들에게는 더욱 가혹하다. 임신을 했다고 해서 자신에게 할당된 로딩을 줄일 수도 없고, 당직 등의 시간외 근무에서 빠질 수 있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공의 수련환경이 바뀌지 않는 이상 젊은 여자의사들의 출산·육아 등의 모성권리는 보호되지 못한다는 것이 의료계 공통된 의견이다.

 

임신 여성전공의 무리한 업무로 유산·조산 빈발

 

현재 임신 중인 여자전공의들은 임신한 몸으로 견디기 힘든 수련과정에서 신체적인 한계를 느낀다고 호소했다.

 

서울 소재 A대학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4년차 여성전공의 B씨는 현재 임신 16주째로 접어든 산모다. 그는 “임신으로 몸이 너무 힘든데 사무직처럼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일도 아니고 하루 종일 서서 뛰어야 한다. 임신을 했다고 해서 업무 로딩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임신에 따르는 신체변화 때문에 쉽게 피로해지고, 때때로 잠이 쏟아지지만 하루 종일 긴장을 늦추지 못한고 업무에 임해야 한다. 산모와 근로자이기에 앞서 대학병원에서 수련중인 전공의이기 때문이다.

 

B씨가 출·퇴근시간을 아껴 잠을 자기 위해 대부분 병원 숙소에서 잠을 청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가족의 돌봄과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하는 임산부인 A씨가 집에 들어가는 횟수는 고작 2~3회다.

 

이 같이 신체에 따르는 무리 때문에 유산 또는 조산을 하는 여성전공의도 있다. B씨 역시 앞서 유산을 한 아픈 기억이 있다. 그는 “지금은 안정이 됐지만 임신 초기에는 또 다시 유산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가슴을 많이 졸였다”고 전했다.

 

B씨와 같이 임상에서 조산, 유산 등을 겪는 여자전공의들이 늘어나자 여자전공의들의 출산에 수련환경이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는 연구가 시행되기도 했다.

 

지난 4월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발표한 ‘출산에 따른 여성전공의 수련환경 실태와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여의사 8명을 심층 면접한 결과, 이 가운데 3명이 전공의 시절 조산이나 유산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소재 C대학병원에 근무 중인 또 다른 여성전공의 역시 동료 전공의가 임신했던 시기의 어려움을 전했다.

 

그는 “임신 9개월이 지난 이후에는 힘든 업무로 인해 자궁 수축이 오는데 업무시간에 일을 내려놓을 수는 없어, 점심시간마다 산부인과 병실에 누워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동료 임신’ 축복해 줄 수 없는 현실 비참

 

임신한 여성전공의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이 같은 신체적 한계로 끝나지 않는다. 본인의 임신으로 인해 동료들에게 돌아갈 업무 부담감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실제 동료의 임신 소식에 마냥 기뻐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이 전공의들의 목소리다.

 

서울소재 C대학병원 가정의학과에 근무하고 있는 한 전공의는 “출산휴가 등으로 자리를 비울 경우 본인이 맡고 있었던 업무를 동료들이 나눠서 해야 하는데, 서로 말은 못하지만 ‘왜 하필 지금 임신을 했나’라는 속마음은 동일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익명으로 설문조사를 한다면 여자전공의들 역시 전공의 시절의 임신에 대해 반대할 것”이라며 “여자동료들끼리도 임신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임신을 한 것이냐’며 싫어하는 분위기”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이미 전공의들이 과도한 업무 로딩을 받고 있어 동료를 위해 추가적인 업무로딩을 감내할 수 있는 여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현재 임신 8개월에 접어든 서울소재 D대학병원에서 근무 중인 전공의 E씨는 “다행히 출산 휴가에 갈 시기 이전에 수련기간이 끝난다. 만약 수련기간 중에 출산 휴가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처럼 동료조차 임신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 때문에 실제 법적으로 보장된 90일의 출산 휴가마저 다 쉬지 못하고 1~2주 앞서 업무에 복귀하는 것이 전반적인 분위기”라고 전했다.

 

2회이상 출산 女전공의 추가 수련기간 부여

 

여자전공의들이 겪고 있는 출산에 따르는 부담감은 실질적인 제약으로 나타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대한병원협회가 2009년 제정·공포한 ‘전공의 수련규칙’에 ‘2회 이상 출산을 한 전공의 경우 첫 출산 휴가 기간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만큼 추가수련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됐기 때문이다.

 

출산 휴가는 법적으로 보장해야 하지만, 여자전공의는 피교육자라는 점을 감안해 2회 이상 출산으로 인해 수련기간이 줄어드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이 같은 수련규칙에 일부 전공의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국가인권위원회는 출산 휴가 사용 시 추가수련을 요구하는 것을 금지하고, 2회 이상 출산 휴가를 사용한 전공의에 대해서는 추가수련 기간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의료계 내에서는 ‘2회 이상 출산 휴가에 따른 추가 수련기간’문제를 두고 추가 수련기간 동안 실질적인 교육이 이뤄지는가의 실효성, 남자전공의와의 형평성 문제 등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또한 여자전공의들이 임신과 수련을 병행하면서 경험하는 문제를 대외적으로 지적하기 힘들다는 것도 드러났다.
인권위 관계자는 “‘2회 이상 출산휴가에 따른 추가 수련기간’ 이외에도 여자전공의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를 공개적으로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앞서 출산 휴가 90일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음을 지적했던 전공의 E씨 역시 “현실적으로 출산 휴가마저 눈치를 보며 사용해야 하고, 육아휴직은 말도 꺼낼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런 문제들을 공론화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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