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벌제 등 돌파…학회들 '법인전환' 변신
2011.10.28 03:15 댓글쓰기
대한의학회 산하 학회들이 들썩이고 있다. 공정경쟁규약과 더불어 쌍벌제 시행 이후 갈수록 운신의 폭이 줄어들면서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자 활로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학회들이 이구동성 해법으로 내놓고 있는 방안은 바로 ‘법인전환.’ 학회의 존재 이유이자 사명인 연구 활동까지 위축될 것이란 위기감마저 엄습하자 그동안 독야청청하던 학회들도 하나 둘씩 변신의 대열에 들어서고 있다.

학회들 법인전환 하는 까닭?
축제의 장이라고 할 수 있는 추계 학술대회를 앞둔 학회들은 울상이다. 이미 해외 참가자, 행사장 규모 등 줄일 수 있는 것은 죄다 줄였지만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긴 탓이다. 올해 춘계 학술대회를 치렀던 병리학회의 경우 기초의학회와 함께 아예 해외 연자를 공동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병리학회 이건국 총무이사는 “이례적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느냐. 특히 기초학문을 하는 병리학회의 경우에는 그나마 지원 자체도 적어 더욱 힘든 게 사실”이라며 “다음부터는 대학 강당을 빌려 하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판”이라고 어려운 현실을 토로했다.

긴축경영과 함께 재정확충을 위해 등록비를 올렸지만 좌불안석이긴 매한가지다. 데일리메디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공정경쟁규약으로 자기부담 20% 원칙이 적용되자 등록비 인상을 단행한 곳이 수두룩했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곳 중 하나인 심장학회의 경우 거듭된 논의 끝에 ▲전문의 및 교수 3만원 ▲전공의 및 기타 1만원이었던 등록비를 각각 6만원, 4만원으로 올렸다. 대한당뇨병학회 역시 많게는 2.5배까지 등록비 인상을 결정했다.

그럼에도 답은 보이지 않고 있다. 외부환경이 더욱 더 척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회들의 학술활동을 지원해왔던 제약사들이 최근 공정경쟁규약을 한층 강화시키며 이를 부추기고 있는 것. 특히 학술대회 기간 중 부스를 설치한 제약사에게 별도의 등록비를 납부 받아왔던 학회들 입장에서는 숨통이 막힐 판이다.

지난 춘계 학술대회에서 등록자 이외의 학회장 출입을 제한했던 대한암학회 노성훈 이사장은 “제약사 직원들 역시 학회장에서 좋은 내용의 강연을 듣고 의사들과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한 정책”이라고 설명했지만 유명무실해질 판이다.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해왔던 학회들 입장에서는 불투명한 미래를 끌어안고 근근이 버텨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인 셈이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이다.

법인전환 러시 가속화
이러한 분위기 속에 학회들이 재단법인 또는 사단법인으로 전환을 검토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기부금 등을 통해 부족한 학회예산을 메우고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학술진흥 활동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다. 이미 대한의학회에 소속된 정회원 학회 가운데 24곳이 전환을 마친 상태다.<표1 참조>

이들 학회의 면면을 살펴보면 학회의 대외 활동을 위한 기구로 출범했다 주객이 전도됐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재단의 기능과 권한이 대폭 강화된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 1992년 일찌감치 한국내과학연구지원재단을 세운 대한내과학회의 경우 공익성 지정기부금 위탁 지정을 계기로 완전히 궤도에 올라섰다. 대한당뇨병학회 역시 마찬가지로 지난 2006년 당뇨병학 연구재단을 설립하고 연구는 물론 봉사활동 지원 등 학회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부분까지 소화해내고 있다.

지난해 창립 30주년을 맞이했던 대한류마티스학회는 2008년 등록한 류마티스학 연구재단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류마티스학회측은 “창립 30주년을 계기로 재단을 통해 연구학술 지원체계를 확립하기로 했다”면서 “기초 및 임상연구를 지원해 신진 류마티스학자들의 연구 능력을 배가하고, 이러한 결과를 사회에 환원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대한응급의학회와 대한간학회가 법인전환 대열에 동참하면서 이러한 포부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추계 학술대회 기간 중 사단법인 형태로 새로 태어난 대한응급의학회의 서길준 초대 이사장(서울대의대)은 “공정경쟁거래규약 등 학회 전반의 투명화를 위해 법인화 작업을 추진해 왔다”며 “이를 계기로 응급의학 분야의 학술, 교육, 연구 및 제도의 발전을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백척간두에 선 학회의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각오다.

대한간학회 역시 올해 초 설립등기를 마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면서 개척정신으로 똘똘 뭉쳤다. 대한간학회 백승운 총무이사(삼성서울병원)는 “그동안 학회가 맡아 온 대국민 홍보 사업의 일부와 유관단체와의 학술연구 지원을 재단에서 맡을 예정”이라며 “운신의 폭이 보다 넓어진 만큼 학회활동과 시너지 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주요 학회들이 속속 재단 또는 사단법인을 주축으로 운영방침을 변경하자 다른 학회들도 너나 할 것 없이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역시 이들 학회가 세운 법인들을 통해 학회운영의 실상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반기고 있는 형편인 만큼 분위기도 무르익고 있다.

실제로 데일리메디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재 법인전환을 추진 중이거나 검토하고 있는 학회는 비공식적 의사를 표명한 곳까지 합해 현재 10곳 안팎에 달한다.<표2 참조> 전체 150여개 달하는 학회와 준회원 학회 등을 모두 합치면 아직은 적은 숫자지만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이 가운데 가장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곳은 대한외과학회다. 외과학회는 앞서 법인전환에 성공했던 학회들과 마찬가지로 활동영역 확대와 더불어 재정수입의 확충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김종석 이사장을 필두로 올해 안으로 법인 신청을 마치겠다는 내부적인 계획을 세워두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김종석 이사장이 “임기 안에 법인전환을 목표로 뛰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더욱이 외과학회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법인 전환에 따른 부가적인 효과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외과 전공의 급감에 따른 대체인력으로 전문간호사(PA)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이들에 대한 교육을 법인화된 학회에서 맡겠다는 구상이다. 김 이사장은 “의사의 고유 영역을 넘지 않은 선에서 전문 간호사들이 양지로 나올 수 있도록 학회 차원에서 관리하고 교육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재단설립에 따라 이들에 대한 인증과 교육까지도 맡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법인전환 신중히 선택해야
이처럼 법인전환에 따른 이점이 분명한 만큼 관심을 나타내는 학회들이 늘고 있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출범 초기야 학회의 공신력을 바탕으로 한숨 돌릴 수 있을지 몰라도 이후를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법인전환에 따른 규제와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실제로 민법상 재단 또는 사단법인의 경우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만큼 수익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즉 같은 성격을 지난 법인 산하 의료기관과 달리 자체 수입원이 없는 학회 입장으로서 제약사나 의료기기 등 관련 업체의 후원에만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일부 학회가 법인전환을 하면 과거와 같은 시절을 누릴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그 반대”라며 “지금도 자금줄을 쥔 제약사 등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으로 역전돼 버린 마당에 자본에 의존하는 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익재단 특성상 투명한 회계처리를 위해 감사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도 학회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이를 결산 보고해야 하는 것은 물론 운영하는 데 있어 관리감독 기관인 복지부 등 정부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원로교수는 “지금도 학회가 너무 많아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너도나도 법인전환을 하겠다고 하면 또 어떤 풍파가 일지 뻔하다”며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정 탓에 재단 전환에 관심을 나타내는 학회들은 많지만 저울질만 할 뿐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곳도 적지 않다. 학회 재정건전성을 비롯해 향후 사업계획 등을 세우기까지 난관에 부딪히면서 중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대한간학회 역시 숱한 실패 끝에 겨우 한국간재단을 설립하고 운영에 들어갔을 정도로 법인전환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보여줬다. 간학회 한 관계자는 “비전만 가지고는 재단을 전환하기 어렵다”며 “향후 사업계획 등 분명한 목표와 구체적인 실행전략을 제시하지 않으면 법인 전환이 힘든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법인전환를 검토했다 현재 답보상태에 빠진 학회들 역시 마찬가지 목소리를 냈다. 내과계 한 학회 관계자는 “어려운 학회 사정을 타개하고 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이려고 준비했지만 이 역시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정부의 인가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재단 설립 후 속빈 강정이 될까하는 우려가 커 결국 주변여건이 성숙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내과계 학회 역시 “법인전환을 하나의 돌파구로 보고 이를 원하는 목소리가 회원들 사이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판단이 들었다”며 “일단 학회 스스로 자립도를 높이지 않으면 법인화시킨다고 하더라도 성공하기 힘들기 때문에 아직은 관망세를 취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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