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의사도 PR시대 '나를 알려야 한다'
2010.12.31 22:22 댓글쓰기
"완벽한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1년이나 걸렸어요", "대학 동기들과 PR 동영상을 만들어 취업에 성공했어요",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 조언을 얻었죠"

냉혹한 취업전선에 뛰어든 젊은 구직자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자신을 효과적이고 신뢰성 있게 알리고자 각고의 노력을 병행한다. 수 백대 일의 경쟁률이 일상화된 요즘, PR은 취업으로 이어지는 핵심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동영상을 만들거나 화려한 편집을 자랑하는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는 더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주목받기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얼마나 준비된 인재인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구직자들은 이른바 스펙(경력) 쌓기에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다. 돈이 많이 드는 어학연수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취업전쟁은 냉혹한 PR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눈물겨운 취업 환경이 의료계에도 작은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단순히 취업을 목적으로 하기보단 원하는 병원과 진료과에서 수련 받으려는 젊은 의사들의 변화상이 그것이다. 자기 PR이 젊은 의사들로부터 새롭게 주목받을 전망이다. 실제로 매년 3000명 이상의 의사가 쏟아져 나오면서 인기 진료과의 경쟁률은 더 치솟았다.

모교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는 고전적인 수련방식은 이미 희석된 지 오래다. 의과대학생과 젊은 의사를 중심으로 자신을 독특하게 어필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다만 출신학교와 성적을 여전히 핵심적인 가치로 여기는 보수적인 의료계 정서를 고려할 때 자신의 경쟁력을 담담하게 소개하는 PR이 각광받고 있다고 의료계 관계자들은 전한다.

"고치고 또 고친다" 사활 건 인턴들
자기 PR에 가장 공을 들이는 세대는 레지던트 수련을 앞둔 인턴이라는데 별다른 이견이 없다. 앞으로 어떤 진료과에서 수련하느냐가 의사 인생의 향배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특히 높은 수익과 안정적인 개원을 보장하는 인기 진료과에 들어가기 위한 인턴들의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레지던트 선발은 인턴 성적과 출신학교 등이 영향을 미치지만, 서울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지원자가 몰리면서 자소서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서울 한 대형병원 인턴은 “레지던트 수련이 앞으로 의사 인생을 결정한다는 생각에 두 달이나 자소서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며 “파격적인 내용보다는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고 어떠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지를 진솔하게 기술했다”고 말했다.

이 인턴은 “병원 규모가 클수록 지원자가 많아 자소서 작성이 매우 중요하다”며 “내가 얼마나 이 진료과를 전공하고 싶은지 정성들여 기술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인턴은 “병원마다 다를 수 있지만 일부에서는 그 비중이 작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크게 보면 지금 작성하는 글이 나의 의사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자소서를 통해 얼마나 열심히 수련생활을 할 수 있는지 알리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며 “진솔하게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외부 출신에게는 좋은 기회로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인턴 등 젊은 의사들이 작성하는 자소서는 일반 기업체와 별반 차이는 없다. 성장과정과 성격, 지원 동기 등이 핵심 기술항목이다.

다양한 의전원 출신…사진 편집 등 색다른 연출도
그동안 천편일률적인 의료계의 자기 PR은 의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되면서 일부 변화가 시작됐다. 출신 대학이 다양하다 보니 자소서에 공을 들이는 경향이 많아졌다.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의전원을 졸업하고 인턴과 레지던트에 지원하는 비율이 전체의 60%에 달한다. 병원에 따르면 자신을 효과적으로 소개하고자 다양한 사진을 편집해 눈길을 끄는 경우가 있다.

내과를 지원하는 경우 원서나 자소서 밑바탕에 오장육부 그림을 그려 놓거나 메스를 형상화한 경우가 있다. 지원한 진료과의 앞글자로 시작하는 자소서도 눈에 띈다.
자신의 성장과정과 학창시절을 사진으로 설명하면서 교수들과 선배의 눈길을 끄는 노력도 많아졌다. 해당 교수의 특성을 파악해 취미를 동일시하는 것은 애교에 속한다.

인문학이나 공과대학, 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지원자들이 자신의 경험과 의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김재중 교육수련부장은 “표면적으로 너무 튀거나 화려한 경우는 없지만 자신을 알리려는 노력은 엿보인다”며 “사진을 멋있게 편집해 눈길을 끌려는 지원서를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재중 교육수련부장은 “의전원 출신이 많아지면서 의료계가 다양화된 점은 좋은 현상”이라면서 “이러한 의료계 변화상이 일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일부지만 미국 병원 취업이 젊은 의사들로부터 각광받자, 영문으로 자소서를 작성하거나 면접을 교육받는 사례도 많아졌다.

미국의 경우 면접 비중이 높아 수개월의 준비가 필요하다. 주목할 점은 미국 의료기관의 경우 전공지식을 묻기보다는 개인의 성장과정에 더 주목한다. 그만큼 자소서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다.

자신의 성격과 장·단점, 지원동기 등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당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지원 경험이 있는 한 개원의사는 “미국 병원에 원서를 접수하려면 원어민의 감수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신의 성장배경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보수적 의사 사회…“깔끔하고 진정성 있게 PR하라”
의학전문대학원 출신 의사들의 진출, 효과적인 자기 PR이 각광받고 있지만 의사 사회는 여전히 보수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때문에 상상력을 동원해 독특한 자소서를 작성하기보다는 깔끔한 이미지, 그리고 자신의 강점을 성실하게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자신을 알리겠다는 목적으로 과도한 자기 PR을 할 경우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조언도 있었다. 교수 출신의 한 개원의는 “젊은 의사들이 자신을 효과적으로 알리고 싶은 것은 당연하지만 의사 사회는 여전히 보수적”이라며 “눈에 잘 띄고 간결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무리하게 튀거나 현란한 색으로 작성하는 것은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한다”며 “얼마나 이 진료과에 관심이 많은지를 정성껏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원칙론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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