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규모 240억원, 구축기간 2년 등 국내 의료IT업계 최대 사업으로 관심을 모았던 순천향대학교 중앙의료원의 ‘차세대 통합의료정보시스템’ 구축 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대형 의료기관이 첨단 시스템을 갖추게 되면서 병원의 디지털화, U-Healthcare 등이 의료서비스 질을 가늠하는 하나의 척도가 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업은 순천향대의료원의 숙원이었다.
경쟁병원 대비 정보화 수준 능력이 상당히 뒤처져 있는 의료원 산하 4개 병원으로서는 이번 사업을 통해 최신의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준비하는 등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개발업체는 약속된 기한을 이미 넘겼으며, 공정률 등에 있어 저조한 성과로 향후 사업 진행에 막대한 차질이 예상된다.
앞서 현대정보기술과 순천향대의료원은 총 240억원 규모의 차세대 통합의료정보시스템 사업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지난해 8월까지 25개월 동안 서울, 부천, 천안, 구미 등 의료원 산하 4개 병원을 대상으로 전자의무기록(EMR)을 비롯한 시스템 통합이 골자다.
특히 의료기록 활용과 분석 및 예측이 가능한 ‘임상데이터웨어하우징(CDW)’과 모든 경영자료와 원가 시스템 연계를 통해 병원 경영의 실시간 분석 및 예측을 가능(EDW)토록 했다.
이 외에도 경영층을 위한 경영자 정보시스템(EIS), 효율적 정보관리를 위한 정보자원 수명관리(ILM), 대형 포털 수준의 완벽한 환자 정보보호 체계 구축 등을 목표로 했다.
특히 구현되는 인프라는 모든 장애에도 24시간 무정지 운영이 가능토록 설계됐고, 2중·3중의 안전장치 및 백업체계도 구축토록 했다.
완벽한 모바일 진료환경 구축으로 유비쿼터스 병원을 구현해 언제 어디서든 응급, 외래, 재원 환자의 진료 및 검사, 처방 기록도 가능토록 한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현대정보기술, 구축기한 5개월 넘도록 지체
계획대로라면 이번 사업은 지난해 8월 완료됐어야 했다. 하지만 현재 4개병원 통합의료정보시스템은 구축되지 못했고, 아직도 부천병원에서 개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사업에서 요구되던 많은 기능 중 대부분은 완성되지 못했고, 일부 분야는 아예 구축을 포기하거나 축소하는 등 사업 범위를 좁혔다. 계약 종료일을 반년 가까이 넘기고 있지만 더 이상의 진척도 없는 상태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관련 업계에서는 현대정보기술이 사업에 필요한 적절한 인력규모 등을 감안하지 않고 사업을 강행한데서 비롯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아울러 초기 사업계약조건 외에 추가적인 기능을 요구한 의료원 측에도 원인의 단초가 있다고 보는 견해도 제기된다.
먼저 현대정보기술의 효과적인 사업관리 능력의 부재가 드러나고 있다. 4개 병원에 대한 통합시스템을 개발하는 사업인 만큼, 기술적인 부분과 함께 인력관리에 대해서도 많은 세심함이 필요하다.
하지만 개발팀을 구성하면서 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던 인력을 이번 구축사업에 투입시켰다. 개발진의 누적된 업무 피로도에 의료원 측의 새로운 요구들이 더해졌다.
첨단시스템을 공개한 삼성서울병원이나 분당서울대병원 구축사례를 지켜본 의료진의 눈높이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업무 고충을 토로한 개발자들의 잦은 퇴사도 문제였다. 초기 개발인력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않고, 개발진의 개편이 사업의 전(全) 단계에 걸쳐 이뤄지게 됐다.
이에 따라 사용자 요구사항을 반영한 개발이 어려워지고, 의료원과 개발팀 간의 의사소통이 어려워지면서, 개발인력의 퇴사가 발생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업 후반기에는 상당수의 업무를 외주직원 등으로 채워지면서 현재로서는 사업의 지속적인 진행은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의료정보시스템 구축을 진행하다 보면 요구사항이 바뀌는 경우가 물론 많이 있다. 하지만 개발PM이 고객과 협의하여 조정하고 사업수행능력 범위 내에서 추진했어야 했는데 현대정보기술은 그렇치 못했다”고 지적했다.
책임론 불거지면서 사업지속 여부 ‘미지수’
이에 따라 이번 사업을 주관한 순천향대 의료재단은 더 이상의 추진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정보 측에 지체보상금 등 배상을 언급하면서 사업파트너로서의 신뢰도 사라졌다.
하지만 의료원의 입장은 조금 다른 것으로 관측된다. 외부에 사업실패로 인해 의료원내 시스템이 타 병원에 비해 낙후되고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고 알려지는 부분을 경계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정보기술과 협상을 통해 원만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주요 대학병원들이 각종 정보화사업을 통해 최신 의료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는 것에 비해 현재 순천향대의료원 산하 4개 병원의 정보화 수준은 많이 떨어져 있다. 이번 사업을 통해 최신의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던 의료원으로서는 향후 사업에 막대한 차질이 예상되고 있다.
부천병원 쪽에선 이번 사업에 대해 '롤백(Rollback)'이라는 극단적인 방법도 제시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내부에선 “3년 동안 준비하고 노력했는데 첨단 유비쿼터스병원은 커녕 겨우 처방전달시스템(OCS)의 질을 높이는 선에서 만족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순천향대의료원 관계자는 “의료정보시스템 구축 작업이 순조롭지 못하면서 내부 의견이 분분한 것은 맞다. 하지만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 외엔 어떠한 사실도 확인시켜 줄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현대정보기술도 추가개발 여력이 없는 만큼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를 원하는 모습이다. 현대정보기술의 임원이 순천향대 서울병원에서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계속 개발업무와 협상을 진행 중이다.
재단 측에서 사업비 반환과 함께 상당한 지체보상금을 요구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현대정보기술은 연결재무제표 기준 올해 3분기 누적기준 매출액 1041억 원, 영업손실 83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2% 감소했고, 영업손실 규모는 57억원 가량 늘었다.
현대정보기술을 인수한 롯데정보통신은 수익성은 낮으면서 위험성이 큰 사업부문 해체를 언급하고 있는 만큼 상황도 급박해졌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현대정보가 통합의료정보시스템 구축 실패 책임이 의료원에도 있다는 사실을 거듭 피력하고 있다”며 “만약 타협이 어렵다면 소송도 불사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에 현대정보기술 관계자는 “기간 내 구축 작업을 완료치 못한 것은 맞지만 배상을 해야 한다거나, 사업을 접으려 한다는 소문은 사실과 다르다”고 일축했다.
그는 “시스템 구축을 위한 재계약 방안을 의료원 측과 논의 중”이라며 “협상이 마무리 되는대로 다시 구축작업에 매진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